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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6.25 전쟁

서울 탈환

by senamu 2025.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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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쪽으로 진격하는 것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손원일 제독은 서울 수복의 영광을 한국 해병대가 할 수 있도록 미군에게 요청한다.한국 해병이 104고지를 향하고 미군은 그 측방을 엄호하게 된다.결국 한국 해병대는 104 고지를 점령한다.북한군의 역습이 있었으나 한국 해병대는 이를 격퇴하고 다음날 연희대로 진격한다.유엔군은 스미스 능선이 아닌 다른 곳에서 북한군이 진지를 구축했다고 예상한다.하지만 북한군은 스미스 능선에서 저항을 준비하고 있었다.북한군은 25여단이 투입된다.이 여단은 교육 부대인데 급하다 보니 교보재를 끌고 서울을 방어하러 나선 것이다.중화기를 유엔군 폭격으로 부터 안전한 경의선 철길 터널속에 배치하고  연희대(지금의 연세대) 주변 참호도 깊게 파면서 막강한 방어선을 구축한 것이다

한국 해병이 수차례 공격에도 북한군 방어선을 뚫지 못하자 미해병 5연대 2대대가 이들을 보조해 주기로 한다.길이 열리지 않자 공중 폭격을 감행한다.F4U 콜세어가 스미스 능선 일대에 폭탄을 퍼붓게 된다.돌파구가 열리자 미해병 5연대 D중대가 56고지를 돌파 스미스 능선을 기어오르게 된다.이 과정에서 스미스 중대장이 북한군 기관총에 맞아 전사한다.D중대는 막대한 피해를 입고 추가 병력을 요구했으나 더 이상 지원해 줄 병력은 없었다.하지만 D중대는 고군분투하며 연희대 서쪽 고지를 점령하게 된다.이 중대의 활약에 힘입어 여기가 스미스 능선이라 이름 붙여 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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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 능선이 뚫리기 전 남쪽에서도 움직임이 일어나게 된다.9월 23일 지지부진한 진격에 마음에 안들었던 알몬드는 남쪽에 있던 미7사단 32연대를 서울로 불러올리기로 한다.여기에 인천에 있던 한국군 17연대도 합류하게 된다.남태령을 넘어 신사리(지금의 신사동)에 17연대와 32연대가 만나 도하준비를 하게 된다.이날은 안개가 껴서 도하를 들키지 않게 하게 되고 안개가 걷히자 남산 일대를 공군력으로 조지게 된다.미군은 남산을 먹게 된다.국군 17연대는 중랑천을 따라 이동하면서 서울의 동쪽이 유엔군 손에 들어오게 된다.이러면서 서울안에 북한군은 포위된다.

미해병 1사단은 북한군과 시가전을 준비하게 된다.이미 북한군은 서울을 포기하고 주력을 빼고 있었다.야간에 도주한다는 첩보를 입수 후 알몬드는 해병대에게 밤에 진격하라는 명을 내리지만 해병대 1사단장 스미스는 위험하다며 버티다가 군단장의 불호령에 마지못해 진격한다.하지만 북한군은 주력을 지키기 위해 역습을 감행하고 해병대 진격은 늦추어 진다.주력을 놓치고 다음날 9월26일 부터 남아 있는 북한군과 시간전을 벌이게 된다.북한군은 서울 시민들을 동원해 구축한 바리케이트에서 필사의 저항을 하게 된다.화염병도 마구 투척한다.북한군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소련군을 모방하고 있었다.

유엔군이 서울을 공략할 무렵 소련군 시찰단이 북한을 방문하게 된다.자하로프 중앙 정보 부장이 오게 된다.이 사람은 독소 전쟁 당시 제2 우크라이나 전선군 참모장이였고 만주 전선에서는 자바이칼군의 참모를 지낸 인물이였다.그는 북한 상황을 보더니 잘하면 폭망하겠다며 남한 사람들로 구성된 6~9개 사단을 만들 것을 주문한다.여기서 서울 포기 결정도 내려진다.소련대사 스티코프도 바빠진다.김일성과 함께 의논하여 남한에서 철수 못한 북한군에게 게릴라전을 지시하고 북한군에는 대대적 인사조치를 취하게 된다.서부전선 사령관에 최용건,동부전선 사령관에 김책,총참모장을 김웅으로 앉힌다.소련과 합의 후 중국에 좀 도와달라는 특사도 보내게 된다.

1950년 9월 27일 자정에 미군은 서울 탈환을 하게 된다.다음날 9월 28일 공식적으로 한국의 수도 서울을 탈환했다고 발표하게 된다.9월29일에는 서울 수복 기념식이 열리게 된다.이승만과 맥아더가 중앙청에서 만나게 되고 맥아더는 한국의 서울을 돌려드린다며 연설을 하게 된다.크로마이트작전(인천상륙작전)은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된다.맥아더는 후에 이 작전의 성공을 자랑하고 다닌다.이 내용은 그의 참모였던 에드워드 크로니의 회고록에 잘 나타나있다.그는 이 크로마이트 작전이 인류사의 위대한 전쟁 22번째가 될 것이라 말하게 된다.1번부터 15번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영국 에드워드 크리시가 쓴 15번의 전투가 그것이다.이는 미육군사관생도들의 필독서였다.그리고 5개 전투는 1~2차대전에서 선별된다.스탈린그라드 전투,노르망디 상륙작전이 포함된다.21번째는 놀랍게도 1920년 바르샤바 전투였다.소련이 내전을 끝내고 폴란드를 침공하는데 여기서 폴란드가 소련군을 물리친 것이다.폴란드는 이 날을 국군의 날로 정하게 된다.이 때 한국의 k-2전차와 k-9자주포도 참가하게 된다.이 다음이 인천 상륙 작전이 될 거라고 맥아더는 언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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