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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6.25 전쟁

미주리호와 스미스 능선

by senamu 2025.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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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해병 1연대는 남쪽의 산들을 넘어오느라 진격이 더디게 된다.영등포를 빨리 먹어야 하는데 알몬드는 이들을 닥달하게 된다.지휘계통을 무시하고 일선의 지휘관들을 찾아다니며 갈구기 시작한다.해병대 사령관이 스미스인데 스미스가 이러면 있을 이유가 없었다.이 둘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1950년 9월 20일 미해병 5연는 용왕산을 점령하게 된다.여기는 현재 목동과 염창동 사이에 있는 자그마한 산이다.미해병대는 여기를 기점으로 다음날 영등포 공격을 감행하게 된다.이보다 남쪽인 지금의 경인선 줄기에서 고척교 부근에서도 미해병대는 공격을 시작한다.북한군은 영등포는 내줄 수 없다는 일념으로 안양천에서 필사적 저항을 하게 된다.여기를 뚫기 위해 해병 1개 대대를 더 투입하는 강수를 두게 된다.하지만 전황은 교착상태로 빠지게 된다. 이 와중에 영웅이 탄생한다.로버트 배로 였다.배로는 기회를 보다가 오목교의 빈틈을 노리고 여기를 건너서 진격한다.북한군은 전차로 이들을 막으려 했으나 바주카포의 역공으로 전차 3대를 잃고 퇴각하게 된다.그대로 자리를 깔고 앉아 영등포 샛강을 사수하게 된다.북한군이 여기 다시 뺏으려 여러차례 공격하나 실패한다.후에 배로는 미해병 총사령관 자리까지 가게 된다.1950년 9월 22일 영등포가 미군 손에 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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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드디어 강북 서울을 감제할 수 있는 영등포라는 큰 고지를 얻게 된다.미해병대는 영등포까지 오면서 기계회 부대의 도움을 별로 받지 못하고 알보병으로 싸우게 된다.알게 모르게 고지가 많아 장비가 더디게 들어오고 있었다.하지만 전함 미주리호가 있었다.6.25전쟁 당시 유일하게 참가한 전함이였다.나머지 전함들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이 전함은 나중에 걸프전까지 등판하게 된다.노퍽에서 출발한 미주리호는 동해안 두들기다가 낙동강 방어에도 투입된다.USS 헬레나를 도와 형산강에 북한군을 괴롭히게 된다.정비할 겨를도 없이 인천으로 간다.9월 19일 인천 앞바다에 눌러 앉아 수원과 안양에 포격을 가해 증원군을 차단하게 된다.

인천상륙작전과 동시에 미8군 사령부는 북한을 밀고 올라갈 계획을 세우게 된다.북한은 거세게 저항한다.한국군 1사단은 다부동에서 북한군을 무너뜨리고 된다.9월 16일 17일은 날씨가 좋지 않아 항공 지원을 할 수 없었으나 날이 좋은 18일에 포위망이 풀리기 시작한다.북한군은 조이기를 풀어야 했다.1950년 9월 23일 김일성은 북한군 총 퇴각 명령을 내리게 된다.미군은 추격전을 벌이게 된다.공격 핵심은 미 1군단이였다 그 중에 미 1 기병사단 태스크 포스 777이 선봉에 나서게 된다.미군은 드디어 오산을 손에 넣게 된다.그다음 재빨리 서울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북한군 퇴로를 틀어막아야 했으나 산악 지형과 서울 수복이 늦어지면서 실패하게 된다.도망못간 북한군은 남아서 게릴라전을 벌이게 된다.

서울 수복은 생각보다 어려웠다.서쪽에 병풍같은 산들이 가로 막고 있었다.반대로 북한군이 방어하기에는 너무 좋았다.미군은 신속히 종로로 가야 했다.그러려면 스미스 능선을 돌파해야 했다.한국군 해병대는 일단 104고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한다.스미스 능선 가는 시작길을 열게 된다.북한은 안산에 계속 병력을 투입하며 스미스 능선 사수에 사활을 걸게 된다.한미해병대는 스미스 능선을 동시에 때리는 전술을 구사하게 된다.4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의령 터널까지 진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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