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군과 한국군은 인천 시내에서 시가지 전투를 벌이고 북한군을 제압한다.아직 안심할 수는 없었다.북한군 증원군이 오면 상황이 급변할 수 있었다.서울을 가기 위해 가장 먼저 김포공항을 확보해야 했다.상륙작전이 끝나자 이제 육군과 해병대가 나설 차례였다.10군단장 알몬드는 성격이 급했다.북한군의 지원이 오기전에 재빨리 서울로 들어간다라고 하며 군을 독려한다.미해병 1사단장 스미스는 완전히 준비되지 않으면 못간다가 버틴다.포를 내려야 하는데 아직 무거워서 하역중이였다.게다가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다르게 부대들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조금씩 상륙하고 있었다.스미스 사단장은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를 졸업했다.조용하고 학자적 성격이 강했다.오죽하면 교수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다.




스미스가 버텨도 알몬드 10군단장 말을 안들을 수는 없었다.드디어 해병대에 중장비가 투입되게 된다.해병대는 항상 최신 장비의 보급이 늦었다고 한다.하지만 6.25 실전을 앞두고 최신예 전차인 M26 퍼싱이 지급된다.해병대원 중에 이를 몰아본 부대원이 없었다.그나마 1해병대 1전차대대 A중대의 10대 탱크만 낙동강 전투에서 싸워본 경험이 있었다.나머지 전차병들은 속성으로 전차 운용을 습득하게 된다.










M26에 맞써는 북한군 전차는 T-34였다.2차대전 때 소련을 독일로 부터 구한 전차라는 평을 받는 탱크였다.독일군은 2차대전 초반 연합군보다 성능이 처지는 탱크를 운용했으나 전투 경험을 쌓으면서 우수한 탱크들을 내놓게 된다.독일이 4호 전차를 내놓자 T-34는 고전하게 된다.이렇게 되자 소련은 T-34 주포를 기존 76mm 에서 85mm 로 교체 파괴력을 높인다.T-34는 2차 대전 당시 무려 57000여대나 생산한다.미군은 2차대전 때 M4 셔먼을 몰고 유럽전선에 참전하게 된다.하지만 독일의 tiger 전차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미군은 독일의 맹수 전차를 잡기위해 M26 퍼싱을 만들고 주포를 90mm 로 만들게 된다.장갑도 두껍게 만든다.이에 반해 T-34의 장갑은 빈약했다.내부는 더 열악했다.그러니까 이 전차는 인체 공학적 설계 다 무시하고 오직 돌파용으로 만든 전차였다.생산은 쉬웠으나 조준장치도 부실했다.더군다나 방향 틀려면 운전대가 잘 안움직여 괴력이 필요했다.소련의 최신 전차 시리즈 IS 는 북한은 구경도 못한다.



1950년 8월 31일 낙동강 전선에서 M26 퍼싱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난다.낙동강 전선 거점을 방어하던 M26 퍼싱 전차 2대에 북한군 1개 대대 이상의 수가 덤비게 된다.2대 중 1대는 고장났고 1대는 부대 철수를 엄호하기 위해 남게 된다.당시 전차장이 어니스트 코우마 였다.모든 중화기를 동원했지만 북한군은 한 대의 퍼싱이 지키는 곳을 뚫지 못하고 250명이 전사하게 된다.코우마는 이 공으로 명예훈장을 받게 된다.










상륙부대가 차례로 상륙하고 서울 진격을 마치게 된다.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인천을 접수한 후 김포공항을 먹고 서울로 들어가야 했다.북한군 수뇌부는 상륙군을 저지하기 위해 제42기계화 연대의 T-34 6대를 증파한다.9월 16일 아침 F4U 콜세어가 이를 보고 로켓탄을 퍼붓게 된다.네이팜탄도 떨어뜨린다.유폭이 일어나 3대가 작살이 난다.그 와중에 북한의 대공사격에 콜세어 한대도 추락한다.이제는 M26 퍼싱이 나서게 된다.현재의 간석오거리에서 전차전이 벌어지고 북한군 나머지 전차도 파괴된다.










북한은 반격을 위해 보전합동공격을 준비하게 된다.미군은 원통이 고개 옆으로 해병을 매복시킨다.이들은 전차를 잡을 수있는 대전차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날이 밝자 북한군이 해병 매복지로 굴러들어 오게 된다.M26퍼싱과 대전차포로 인해 북한군 전차 부대는 궤멸된다.적의 공격을 막았으니 이제 역공을 해야 할 차례였다.하지만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






높으신 분들이 원통이 고개 전투의 성과를 직접 보러 오게 된다.맥아더는 부서진 북한군 전차를 보며 잘했다며 칭찬하고 병사들을 독려하게 된다.미군은 그대로 부평으로 군을 이동시키게 된다.미군에게 부평은 상징성이 큰 동네였다.해방 후 이곳을 미군 기지로 만들고 애스컴시티라고 부르게 된다.군정기에는 미24군단의 군수지원사령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지금도 미군에게 여기는 부평이 아니라 애스컴시티로 표기된다고 한다.미군은 거의 무혈로 입성하고 이곳에 있던 군수물자를 접수하게 된다.북한군이 손 쓸 틈도 없이 접수를 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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