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전쟁 당시 한국군과 유엔군은 반자동 소총인 M1 개런드가 있었다.M1 개런드는 반자동 소총으로 8연발이였다.2차대전에 연합군이 써서 톡톡한 재미를 본 총이다.북한군은 M1891/30 모신나강을 사용한다.모신나강은 볼트 액션으로 한발 한발 씩 장전해서 써야 했다.이러다 보니 한번에 투사할 수 있는 총알량은 M1 개런드가 앞도적이였다.게다가 반자동이므로 한번 쏜 후 그대로 조준점을 이동하면서 드르륵 갈길 수 있었으나 모신나강은 한 발 쏘고 다시 장전하다 보니 속도도 느리고 명중률이 불리했다.문제는 겨울이였다.추운 날씨에 총이 안나가는 것이였다.유엔군은 급한대로 중국군의 모신나강과 마우저 소총을 노획해서 예비총으로 쓰게 된다.보급된 총과 노획한 총으로 많게는 3개를 휴대하고 다니게 된다.무게도 문제였다.





보병이 아닌 소대장이나 통신병 같은 경우는 휴대성이 좋은 총이 필요했다.무게도 가벼워야 했다.그래서 개발된 것이 M1 카빈이다.M1 개런드는 탄을 위에서 넣어서 불편했는데 M1 카빈은 밑에서 탄창을 끼울 수 있었다.15발을 연발로 쏠 수 있었다.2차대전에는 M1 카빈이 활약하다 그 후 개량된 M2 카빈이 나온다.탄창이 길어지고 자동식으로 바뀌게 된다.카빈 총은 인기가 매우 높아 후에 M1 개런드 생산량 550만정을 넘어 800만정이나 생산되게 된다.이 총은 6.25전쟁 뿐 아니라 베트남 전쟁에도 폭넓게 쓰이게 된다.








북한은 6.25 당시 기관총으로 PPSh-41 을 사용하게 된다.맨처음 소련은 PPD 기관총을 가지고 있었다.2차대전 때 핀란드의 수오미 기관단총을 보자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PPSh-41 을 만들게 된다.이 기관총은 T-34와 함께 독소전쟁 승리의 주역이 된다.2차대전이 끝나자 소련은 공산권 국가에 이 기관총을 공산진영국가에 보급하기에 이른다.북한은 이를 대량 생산하여 6.25전쟁에 투입하게 된다.PPSh-41은 근거리에서 적을 제압할 때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군은 2차대전때 톰슨 기관총을 사용한다.문제는 이 놈이 가공이 어려웠다.이에 반해 독일 기관단총 MP-40은 대량 생산이 용이했다.미군은 이 독일 기관총을 모델로 M3 그리스건을 만들게 된다.총알은 45구경을 사용해 묵직함을 더하게 된다.초기에는 장전 손잡이가 있었으나 개량형에는 이게 아 얘 사라지게 된다.탄창을 잡고 드르륵 갈기는 식이였다.특수부대들이 이 총을 애용하게 된다.개머리판은 슬라이드식 스톡을 채용하게 된다.이 방식은 한국군의 K-1 소총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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