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년 9월 17일 인천 상륙 작전 3일차 오후 6시 미군은 김포 비행장 남단에 도달하게 된다.부평부터 김포공항까지는 쭉 평야다.이쪽으로 진격하는 부대는 거침이 없었으나 남쪽 부천쪽으로 올라오는 부대들은 얕으막한 산들이 대오를 이루고 있었다.이 부대들은 다소 시간이 걸려 김포공항에 도착한다.북한은 이 김포 공항을 이용해 공군기로 함정들을 공격하고 있었다.인천 해안에 있는 연합군을 괴롭힐 목적이였다.이 비행장이 떨어지면 그나마 하던 공중 저항을 할 수 없게 된다.북한군도 중요성을 알고 저항하고 새벽에는 야습까지 감행하나 대세는 기울었다.9월 18일 김포비행장은 미군의 손에 떨어지게 된다.






김포비행장을 점령함으로써 보급이 한층 원할해 지게 된다.비행기로 병력과 보급품이 다음날 바로 들어오게 된다.전술 항공 사령부도 설치하며 공중 공격을 준비하게 된다.지상군이 요청하면 가까운 김포 비행장에서 전투기들이 날아와 폭격을 가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다.이곳을 거점으로 미군은 서울 탈환 준비를 하게 된다.





당시의 서울은 지금의 서울이 아니다.광화문일대와 종로 일대 였고 한강 남쪽에 영등포 정도만 서울 이였다.서울을 탈하는 것은 지금의 광화문까지 점령하는 것이다.미 해병 1사단 5연대와 한국군 해병 1연대가 주공을 맡고 행주산성쪽으로 가기로 한다.조공은 영등포를 거쳐 용산으로 진격하는 작전을 짜게 된다.미육군 7사단과 한국군 17연대는 인천에 상륙후 바로 안양으로 이동한다.북한군이 낙동강에서 철수하여 서울로 들어오면 서울 수복 작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였다.이를 남쪽에서 저지할 필요가 있었다.















1950년 9월 19일 미군은 서울 탈환 작전을 개시한다.지금이야 많이 개간사업을 해 아파트가 산더미처럼 들어섰지만 당시는 강폭이 들쑥날쑥했다.유속도 빨랐다.미군도 당황한다.바다 상륙은 많이 해보았지만 내륙에 이렇게 큰 강을 건너는 것은 처음이였다.고무보트에 모터를 달까 고민하게 된다.LVT 와 덕보트를 쓰기로 결정한다. 여기서 덕은 오리가 아니고 DUKW 의 약자이다.원래는 2돈1/2 트럭이였는데 여기에 보트 골조를 붙인게 덕보트였다.도하 전 안심할 수는 없었다 소수의 해병대를 보내 행주산성을 정찰하게 된다.이들은 평영으로 한강을 건너 적정을 살피게 된다.북한군이 안보이자 미군은 야간 도하를 시도한다.하지만 북한군은 있었다.은폐엄폐가 잘된것이다.1차 도하는 실패하게 된다.













1950년 9월 20일 새벽 다시 도하를 시도하게 된다.이 때는 적진지에 항공 공격과 포격을 감행하면서 강행 돌파를 하게 된다.맨처음 상륙정은 LVT 가 맡게 된다.얘는 도하하면서 공격이 가능했다.이들이 먼저 안전을 확보하자 대량의 덕보트가 주력 병력을 싣고 강을 건너게 된다.미해병대는 압도적 화력으로 덕양산 고지를 확보하게 된다.모든 병력이 강을 건너게 된다.



북한군은 서울로 들어오는 길들을 틀어막고 시가전을 준비하게 된다.중국 수뇌부 사이에서는 미군 전투력이 그다지 높지 않을 거라며 과소 평가 하고 있었다.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중국 수뇌부는 지구전으로 가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스탈린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낙동강 전선에 4개 사단을 북쪽으로 올려 퇴로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시를 내린다.그리고 김포공항이 떨어지자 소련 전투기를 평양에 배치하는 계획에 들어가게 된다.실제 파견은 이루어 지지 않게 된다.북한은 어떡하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중국을 끌어들이자니 이 경우 중국에게 떼어줘야 할 떡고물이 클 수 가 있었다.이도저도 결정을 못하고 속절없는 시간만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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