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은 폭격기에서 정밀 폭격을 위한 테스트를 계속 실시한다.
폭격기에서 폭탄을 떨어뜨릴 때 중력과 공기저항 그리고 항공기 속도도 고려해야 했다.
속도도 바꾸고 고도도 바꾸어 가며 계속 실험한다.
그러던 중 엘머 스페리라는 사람이 튀어 나온다.
엘머 스페리는 항해 장비 업체를 설립한다.
그는 에디슨 다음 가는 발명가라 불릴 정도로 많은 발명을 하고 그 아들도 이를 계승한다.
그러던 중 자이로스코프를 이용한 폭격조준기 개발을 고민한다.
스페리 회사에서 일하던 네덜란드계 엔진니어 칼 노든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노든은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 졸업후 미국으로 이민왔다.
1911년 스레리에 입사해 자이로 안정기를 개발 연구 했다.
퇴사 후 기술 컨설팅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중 미 해군 의뢰를 받고 폭격 조준기 마크 15(노든 조준기)를 개발한다.
미해군은 노든 조준기를 시험했는데 그 성능에 매우 만족한다.
폭격기 명중률을 기존보다 2.5배 상승시켰다.
육군항공대도 이 사실을 듣고 테스트를 하는데 육군항공대도 만족한 결과를 얻는다.
폭격조준기의 조준경 보는 훈련을 시작한다.
노든 조준기는 자이로스코프가 내장되어 있어 흔들려도 한 번 세팅한 지점이 변하지 않았다.
기체가 좌우로 떨리는 피치와 앞뒤로 떨리는 롤을 잡아 주었다.
풍향과 풍속에 맞게 보정하는 장치도 들어 있었다.
기계식 계산기가 들어있어서 투하지점과 타이밍을 측정했다.
게다가 노든 조준기에 자동조종장치가 연동되어 있었다.
폭격위치에 가면 일정한 고도,속도로 항공기가 날아가 살포시 폭탄을 투하한다.
당시 장거리 출격에는 항법사가 탔다.
GPS가 없던 시절 폭격 위치로 가기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였다.
1970년대까지 여객기에 이 항법사가 탔다.
항법사와 노드 조준기로 장거리 정밀 폭격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미국은 노든 조준기가 정밀 폭격을 실현시켜줄 것이라 믿었다.
다른 나라가 알까봐 철저하게 이 조준기를 비밀로 한다. 관리도 엄격히 한다.
노든 조준기를 실전 배치하고 실제 폭격에 써보니 황당한 결과가 나온다.
폭격 명중률이 형편없었다.
노든조준기는 안정된 사막같은데서 실험을 했으나 유럽의 날씨는 변화 무쌍했다.
상층부 기압 배치와 하층부 기압 배치도 다른 경우가 있었다.
폭격기 위치에서 계산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아주 안정된 날씨에만 명중률이 좋았다.
그래도 아주 없는 것 보다는 나았다
결국 후반부로 갈수록 노든 조준기 보안등급이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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