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3월 28일 첫 민간인을 폭격한다.
그 지역은 독일 북부 항구 도시 뤼베크였다.
이 지역은 운하로 둘러싸여서 폭격 목표물을 찾기가 쉬웠다.
무역도 활성화되어 있었고 중세풍 목조 건물도 가득했다.
소이탄 성능 실험에 최적 장소였다.
1942년 5월에는 독일 쾰른 공습에 폭격기 1000대를 동원한다.
이를 밀레니엄 작전이라 부른다.
최대 폭격기를 동원했을 때의 효과를 보고 싶은 것이였다.
그러나 석조 건물이 많고 도로가 비교적 넓어 피해가 크지는 않았다.
1943년 7월에 독일 제2도시 함부르크에 8일간 집중 폭격한다.
민간인 약5만명이 사망한다.
작전명은 고모라 로 불로 형벌을 내린다는 무시무시한 작전명이였다.
영국과 미국은 교대로 계속해서 공습을 가한다.
고폭탄을 먼저 투하해 주택 유리창을 부수어 유리파편으로 노동자들 발을 묶고 소이탄을 투하했다.
목조건물이 많았던 함부르크는 작전명대로 불지옥이 되었다.
불폭풍이 일어나자 급속한 산소 부족이 일어났고 방공호 안에도 산소가 부족하게 된다.
여기에 있던 사람은 질식사하게 된다.
독일은 1940년 베를린 공습이후 각종 방공호와 방공탑이 주요 도시 마다 있었다.
폭격전에 독일의 방공망을 교란하기위해 9200만개의 알루미늄 박편을 하늘로 뿌렸다.
이것은 오늘날 채프(chaff)의 원형이다.
이 알루미늄 박편이 폭격 당시 독일 레이다를 교란해 방공망에 혼란을 주었다.
1945년 2월 13일 연합군은 독일 드레스덴을 폭격하기 시작한다.
이 지역은 유서가 깊고 영국으로 치면 옥스포드 같은 곳이라 폭격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많은 독일 피난민이 모여들었다. 최소 20만명의 피난민이 있었다.
연합군은 3900톤의 고폭탄과 소이탄을 드레스덴에 퍼붓는다.
많은 사상자를 내고 유서깊은 건물들도 모두 파괴한다.
독일은 전 후에 이를 복구하지 않고 보존한다.
대표적인 건물이 드레스덴 성모교회이다.
독일은 통일 후 문화재를 재건하기로 결정하고 1994년 재건을 시작한다.
파괴된 돌 잔해를 이용해 퍼즐처럼 맞추면서 재건한다.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하이델베르크성 등은 폭격을 맞은 그대로 보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