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전쟁을 윤리 도덕 따지지 말고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길이라 주장한다.
미국은 전쟁 수행시 민간인 피해를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은 18세기 중반부터 외교정책을 고립주의를 택한다.
유럽국가간에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간섭하지 않겠다는 자칭 영예로운 고립을 선택한다.
전쟁이 벌어지면 영국의 강력한 해군력으로 적지상군을 저지하고 해상봉쇄를 통해 장기전을 한다는 구상이였다.
이 과정에서 육군은 소수정예로 하여 본토방어에만 집중시킨다.
수세적 입장에서 영국이 유일하게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은 항공기 였다.
게다가 영국은 많은 식민지를 통치하기 위해 항공기를 활용하기로 한다.
영국은 유럽대륙과 가깝기 때문에 자국이 곧 항모였다.
영국은 이런 특수 상황 속에 공군도 먼저 창설하고 폭격기 사령부도 만든다.
독일은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급강하 폭격기로 목표물을 정밀 폭격하는 전술폭격에 집중한다.
런던및 주요도시 16곳을 Ju-87슈투가로 전술폭격을 하나 영국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연합국은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목표를 독일의 무조건 항복으로 삼는다.
전략폭격을 통해 독일의 전쟁 수행 의지를 꺽으려 한다.
영국은 2차대전동안 폭격기 출격 횟수가 무려 364,514회나 달하고 조종사는 12만 5천명 정도였다.
1943년 1월 카사블랑카 회담에서 연합군 유럽 상륙을 연기한다.
독일에 전략폭격을 하기로 영국과 미국이 합의한다.
미국은 미 제8공군을 투입하기로 한다.
미 제8공군은 오늘날 B-52,B1B,B-2같은 첨단 폭격기로 구성된 세계 최강의 폭격기 부대이다.
처음에는 독일의 방공망이 막강하므로 야간에 고고도에서 폭격하기로 한다.
항법기술이 열악해 표적을 찾으려면 밤에 물과 땅의 경계가 보이므로 그것을 이용해 목표물을 찾아갔다.
문제는 약 166평의 표적을 맞추려면 거의 9000발을 써야 했다.
명중률이 낮다보니 폭격기가 여러대 모여 간격을 유지하면서 폭탄을 대량 투하하는 방법으로 바뀐다.
영국은 폭격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연구도 한다.
폭격을 극대화 하려면 파이어스톰(불폭풍)을 일으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산발적인 불이 점점 합쳐져서 거대한 불이 된다.
이 불이 주변 산소를 빨아들여 바람이 점점강해지고 불길은 점점커진다.
열폭풍이 생기면서 상공에 차가운 공기가 닿아 구름도 생긴다.
이 효과를 폭격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기로 한다.
이제 폭격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는 길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