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민들은 반을 조직해 수시로 반별 모임 반상회를 개최한다.
일본 전역에 반(도나리구미) 약 100만개 조직이 생긴다.
반상회의 주임무는 소이탄에 의한 화재 진압이였다.
모래,양동이,빗자루를 이용해 소방훈련을 한다.
1943년 국민 방공법을 제정하여 방공호와 참호를 만들고 방화 수통도 곳곳에 설치한다.
문제는 방공호에 주민들이 빠지는 일이 많아 골절 피해가 속출한다.
방공호를 도로 메꾸는 일도 생긴다.
방화수도 문제였다. 모기가 들끓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미국 신문을 통해 신형 폭격기가 일본 본토를 공격할 것임을 알게 된다.
신형 폭격기 기지로는 중국 계림과 유주를 예상하게 된다.
일본은 66개 주요공업도시에 고사포를 배치한다.
1943년 12월 부터 방공망을 재정비한다.
일본은 유럽전선에서 활약한 독일 88mm 대공포를 모방하여 99식 8cm 고사포를 만든다.
99식 고사포는 원형인 독일 대공포보다 성능이 뒤쳐졌다.
1945년 일본은 자체 5식 15cm 고사포를 개발한다.
미군 보고서는 이 고사포가 기존 고사포보다 5배이상 효과적이라 판단한다.
야간 폭격에 대비해 탐조등도 만든다.
독일의 탐조등을 모방했으나 성능은 독일의 것에 미치지 못했다.
1944년 6월 16일 B-29가 첫 공습을 한다.
이 때 일본은 고사포 10000 여발을 쏘나 한대도 격추시키지 못한다.
독일 대공포도 성적은 처참했다.
독일 대공포 운용은 주로 소련군 포로나 독일 여성,청소년을 배치했다.
대공포 성적이 처참해도 이를 하는 이유는 화망이 구성되기 때문이다.
폭격기가 중요지역에 접근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대공포가 폭격기 옆에서 터지면 폭격기 조종사도 무서워서 접근을 못한다.
일본 대공포는 문제가 있었는데 독일과 다르게 폭격기 고도까지 포탄이 안간다는 것이였다.
대공방어를 위한 전투기 생산도 늘린다.
과달카날 전투에서 패한 후 도조 히데키는 궁지에 몰린다.
즉흥적인 명령을 많이 내리게 된다.
1943년 7월 일본 상공성은 200평이상 직물방적공장에서 비행기를 조립 생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경공업을 하던 여성 근로 정신대가 항공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1944년 항공기 생산량이 70%나 증가하나 1000대 정도 만들면 이중 400대 정도만 실전 투입이 가능했다.
미국은 1차대전말 국가 표준을 정하고 공장에 전문가를 파견하여 부품 생산 규격을 조정했다.
일본은 부품 표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