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공군은 실전 경험을 쌓을 목적으로 스페인에 대규모 공군을 파견한다.여기에 활약한 공군 조종사들이 그대로 루프트 파페가 되어 2차대전에서 하늘을 휘젖게 된다.독일은 실전을 바탕으로 로테와 슈밤 전술을 만들어 낸다.당시 공중전은 미사일이 아니라 상대 비행기 꼬리를 물어 기관총을 난사해서 떨어뜨리는 도그 파이터 방식이였다.1대를 주력으로 1대가 뒤쫒아 다니면서 후방을 보호해주는 로테 전술을 만든다.여기에 이 로테를 2개를 붙여 만든것이 슈밤이다.주류를 이루고 있던 삼각 편대 방식을 뛰어 넘는 방식이였다.2개의 로테가 서로 다른 고도로 비행하면서 서로의 약점을 보완한 전술이였다.이 방법으로 독일은 재미를 보게 된다.나중에 연합군도 이 슈밤을 모방하게 된다.이것이 가능한 것은 무전기였다.독일은 전차도 마찬가지지만 전 비행기에 무전기를 달아 조직적으로 무기들을 움직인다.소련군이나 다른 연합군도 이 당시 이정도까지의 무전기는 갖추지 않고 있었다.




독일은 공군을 공중전 뿐아니라 지상 공격에도 투입한다.수평폭격만으로는 원하는 목표물을 타격하기 어려웠다.하지만 고도를 급격히 낮추어서 내려찍듯이 폭격하면 성공률을 80%까지 올라간다.이런 폭격이 가능한게 급강하 폭격기 슈투카였다.공화군은 대공포가 별로 없어서 슈투카의 폭격을 눈뜨고 구경만 하게 된다.슈투카는 자기 집 드나들듯이 들락날락하며 공화군 지역을 쑥대밭을 만들게 된다.









이탈리아 역시 공군력을 제공한다.이탈리아 항공 기술은 전세계 탑이였다.각종 스피드 대회를 휩쓸고 다닐 정도였다.이탈리아는 스페인에게 막대한 육군력도 제공한다.7만 병력을 보내줬을 뿐아니라 각종 야포도 지원해 준다.국민군이 단일화된 무기를 갖추게 된 것도 사실은 이탈리아가 무기를 제공해 주어서였다.돈도 보태쓰라며 막대한 지원을 해주게 된다.무솔리니 생각에는 파시즘을 퍼뜨려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스페인이 과거 로마제국 시절 영토였다며 애착을 드러내고 있었다.하지만 이탈리아군은 스페인 내전 초반 과달라하라 전투에서 졸전을 펼치게 된다.군대는 많이 파병했지만 검은 셔츠단들이 대부분이였고 전투 경험이 없는 병력이였다.이탈리아의 전투능력에 국민군은 실망하고 국민군내에서는 독일 빠들이 많았다.이렇다 보니 열매는 히틀러가 가져가게 된다.독일은 이탈리아의 전폭적 지원과 달리 공군력과 군사 고문단을 제공해 주었다.독일은 스페인의 가려운 것을 긁어 주었고 이탈리아는 별 소득 없는 노력만 열나 했지 성적은 부진한 결과를 초래한다.






공화군의 든든한 뒷배인 스탈린은 판세가 기울었다며 발을 빼고 있었다.스탈린은 중국에 신경을 써야 했다.중일전쟁에서 국민당 정부를 도와 일본을 물리쳐야 했다.일본은 소련에게 적국이였다.일본은 만주를 넘어 동부 소련에 대한 위험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스탈린은 막대한 자원을 중국에게 힘내라며 지원해 주고 있었다.스탈린은 현실주의자였다.판이 기울었다 생각한 스페인은 지원 규모를 줄이고 해볼만한 곳에 올인을 하게 된다.중일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독일이 국민당을 많이 지원했으나 독일이 일본과 편을 먹자 이 지원 바턴을 소련이 이어받은 것이다.




테루엘 점령 후 국민군은 공화군을 밀어 붙인다.아라곤 전지역을 대상으로 대규모 공세를 펼친다.1938년 비나로스에 진격하여 공화군 허리를 가르는데 성공하게 된다.공화군은 점점 힘을 잃고 있었다.공화군은 국민군과 정치적 협상을 시도하나 이미 승기를 쥔 국민군은 이를 들어줄리가 없었다.1938년 공화군은 모든 힘을 쥐어 짜 에브로 전투를 벌이게 된다.거의 자살골이였다.공화군은 완전히 붕괴되 버린다.











공화군에 소속되어 지원을 하던 국제여단은 철수가 결정된다.에브로 전투 당시 불간섭위원회에서 이들을 철수시키기로 한것이다.1938년말 이들은 해단식을 치루고 역사속에서 사라지게 된다.국제여단의 말로는 비참했다.독일 이탈리아 출신 국제여단은 국가에 반역했다는 이유로 고국행이 거부된다.미국도 국제여단이 공산주의아니냐며 의심받게 된다.소련은 가혹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다.대규모 숙청 대상이 되면서 고역을 치루게 된다.소련은 공화군을 도왔음에도 이같은 행동을 취한 것은 단순히 이들이 외국물을 먹고 들어와 공산주의 물이 빠졌다는 이유였다.프랑스 출신은 그나마 나았지만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면서 도망자 신세가 된다.




프랑스는 스페인 내전에 간섭을 이상하게 안한다.스페인을 프랑코가 먹으면 독일,이탈리아,스페인 모두 파시스트 국가가 되어 포위되는 형국인데도 이를 방관한다.이유는 여러가지 였다.좌파 정권이 프랑스를 통치하고 있었지만 프랑스는 공화군이 공산주의자 아니냐며 의심하고 있었다.게다가 영국도 가만히 있는데 우리가 왜라는 인식도 깔려 있었다.주데텐란트 사건도 일어난다.독일이 체코를 병합하려 들자 영국과 프랑스는 나서서 독일을 자제 시키려 무진장 애를 쓰게 된다.뭔가 채찍보다는 당근을 줌으로써 사태를 키운다.영국과 프랑스는 스페인 내전을 보면서 1차대전의 트라우마가 떠오르게 된다.저 불똥이 우리한테 튀면 어쩌나 하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프랑코는 공화군이 에브로전투를 통해 자살골을 넣자 골을 더 넣기 위해 더 공세를 펼친다.1939년 1월 26일 바르셀로나가 국민군 손에 들어가게 된다.공화군은 힘이 빠지고 이제 서로 너탓이라며 싸우기 시작하며 자멸하게 된다.결국 마드리드까지 무너지며 프랑코는 스페인을 먹게 되고 프랑코는 이때부터 30년 이상 스페인을 통치하게 된다.스페인 내전은 참혹했다.스페인 론다 지역에 누에바 다리라는 곳이 있다.여기서 국민군은 공화군에 협조한 사람들을 일렬히 세운 후 밀어서 죽여버린다.같은 국민임에도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여 버린 것이다.이런 백색테러는 스페인 곳곳에 일어났고 스페인 전역에 난민들이 속출하게 된다.스페인 내전은 어찌보면 반파시즘과 파시즘싸움이였는데 여기서 파시즘이 이겨버린 결과가 초래된다.






스페인 내전을 통해 독일과 이탈리아는 더더욱 밀착하게 된다.파시즘에 대항하던 소련과 프랑스,영국은 따로 놀면서 2차대전의 빌미를 주게 된다.이미 2차대전 전초전이 스페인에서 벌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독일 콘도르 군단은 베를린으로 개선하게 된다.괴링앞에서 성대한 열병식을 거행하게 된다.독일 공군은 스페인 내전에서 얻은 실전을 바탕으로 업그레이드 되있었다.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적을 부술수 있다는 자신감에 만땅되어 있었다.기갑에 대해서 스페인내전을 겪은 소련과 독일의 생각은 갈리게 된다.소련은 스페인 내전에서 왜 보병과 전차가 성과를 거두지 못했냐며 고민에 빠지게 된다.전차 무용론이 퍼지면서 기갑사단이 해체되고 책임자들은 줄줄히 숙청당한다.독일은 달랐다.기갑전에서 향후 전투의 미래를 보게 된다.기갑이 실패한 요인을 공화군의 삽질로 본 것이다.이 양국의 차이가 독일과 소련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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