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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6.25 전쟁

육군의 성장

by senamu 2025.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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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말 부터 정전회담이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조중연합군은 힘을 축적하기 시작한다.유엔군의 폭격에 대비하기 위해 방공망을 강화하고 상륙작전에 대한 대비도 시작하게 된다.진지도 강화되고 포병화력도 몰라보게 강화된다.하루 사격량이 8000여발이였는데 43000여발로 대폭 강화된다.병력도 거의 100만에 이르는 대군이 되게 된다.유엔군은 이 사이 남쪽에 남아있는잔당들을 소탕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밴플리트는 전선이 소강상태에 이르자 한국군을 강화하기로 한다.밴플리트는 미육군성에 한국군 재편성 기획서를 제출하고 주한미군 군사 고문단이 그 역할을 하게 된다.1951년 8월 1일 한국군을 양성하는 교육 사령부가 잇달아 창설된다.1952년 1월 포병과 통신 그리고 보병 학교를 통합 상무대를 만들게 된다.지금 상무대는 전남 장성에 위치한다.1951년 11월에는 제주도에 있는 1신병훈련소를 모델로 2신병훈련소가 논산에 개소된다.여기서 민간인이 군사교육을 받고 전방에 투입되게 된다.신병 양성을 체계적으로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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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단위 훈련을 위해 1951년 부평에 제1야전훈련소를 개소한다.한국군 9사단이 처음 입학하여 훈련을 받고 이런 훈련소를 점차 늘려가게 된다.동시에 장교도 양성하기 시작한다.21개 과정 2000여명을 미국 본토로 보내 장교로 육성시킨다.한국군 장교단이 본격적으로 양성된다.육군대학 즉 육군사관학교도  탄생하게 된다.영관급 고급 장교를 목표로 인재 양성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한국군은 적으로도 성장하게 된다.1952년 5월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취임하는데 그는 한국군을 대폭 증강하기로 한다.목표는 20개 사단에 병력 70만명을 목표로 하게 된다.한국군을 키워 미군을 대체하겠다는 구상이였다.맷집은 점점 불어나게 된다.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은 한국군의 확대를 최종 승인하게 된다.무장도 세진다.1개 보병 사단에 105mm 18문이였던 포를 3배 늘리게 된다.여기에 미군 포병까지 붙어 전투력은 배가 된다. 1951년 하반기부터 요새가 강화되면서 이거를 부수려면 더 큰 포가 필요했다. 1952년에는 105mm 보다 구경이 큰 155mm 대구경 포까지 들어오면서 파괴력은 더 커지게 된다.

전차부대도 창설된다.전차부대도 늘어 각 군단별로 1개 전차대대가 들어가게 된다.미군은 M36을 한국군에게 주면서 한국군의 기동전 능력을 향상시키게 된다.원래 미군은 보병을 지원하는 전차와 적전차를 상대하는 전차를 따로 만들게 된다.2차대전 당시 독일군은 88mm 대공포를 맹수전차에 붙여 적 전차를 부수고 다닌다.미군은 이를 보고 90mm 대공포를 셔먼 전차에 달게 된다.문제가 생긴다.셔면 전차는 가벼운 전차였는데 포가 너무 무거웠던 것이다.그리하여 M36이 탄생하게 되고 한국군은 이를 적절히 써먹게 된다.한국 육군은 성장해 강군이 된다.미군은 남베트남군도 한국처럼 육성하려 했으나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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