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치권에서는 6.25전쟁이 길어진다며 중지할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중국도 전쟁을 그만하고 싶어한다.병력 손실이 10만이 넘었고 들어간 돈도 만만치 않았다.신생국가로써 들어갈 돈도 많은데 전비로 너무 많은 돈을 쓴 것이다.게다가 야심차게 소련제 무기로 무장해서 치고나간 춘계공세에서 많은 피해를 보자 충격에 빠지게 된다.밴플리트는 더 공세를 계속해서 평양과 원산라인을 확보하자는 제안을 리지웨이에게 건의하게 된다.필요하면 상륙전도 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리지웨이는 모두 거부하게 된다.정전회담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와이오밍-캔자스선에서 진격하지 말라고 공식적으로 명령을 내리게 된다.





밴플리트는 위력 정찰을 해보니 평강 지역이 비었다며 지금 쭉 밀면 평양-원산은 그냥 밀수 있다고 장담하나 이 역시 먹히지 않게 된다.미군도 전쟁이 1년이 되가다 보니 많은 군인이 죽었고 돈도 밑빠진 독처럼 빠져나가고 있었다.여론도 악화되고 있었다.국방예산이 1년 전보다 3배나 늘어난 것이다.거의 450억달러였다.현재가치로 300조이고 이는 지금 한국의 정부예산 1년치 657조의 반이였다.이 비용은 그 당시 한국 정부 예산의 150년치였다.게다가 미국은 한반도 뿐만아니라 유럽의 공산화도 막아야 했는데 여기에 올인할 수는 없었다.


마오쩌둥은 스탈린에게 전쟁 피해가 막대하다며 어떡하냐고 묻게 된다.김일성은 무슨일이 있어도 남으로 가야 한다며 우기고 있었다.마오쩌둥은 김일성에게 지금 상황은 그럴 수가 없다며 스탈린에게 조언을 구해보자고 달래게 된다.1951년 6월 13일 스탈린은 정전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낸다.그러면서 스탈린은 우리가 먼저 정전 제안을 하면 안되고 반드시 미국이 제안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명하게 된다.자칫해서 먼저 제안을 하면 군사적 패배를 자인하는 꼴이라는 것이다.정 미국이 제안을 안하면 소련이 나서겠다고 언질을 주게 된다.


미국이 먼저 움직이게 된다.1951년 6월 1일 휴전안이 제안되고 미국은 소련과 물밑 협상에 들어가게 된다.소련이 영향력을 행사하면 중국과 북한이 따를 것이라 본 것이다.공산진영의 속내는 아직까지도 잘 알 수가 없다.학자마다 다른 의견이 많다고 한다.틀림없는 사실은 정전회담 자체를 이용해 보자는 것이다.





1951년 7월 8일 정전회담을 위한 실무진 접촉이 일어나게 된다.7월 10일 개성에서 정전회담이 시작되게 된다.공산진영에서는 정전회담도 회담이지만 이 기회에 힘을 다시 축척해 남으로 갈 생각도 하게 된다.일종의 시간 벌기 였다.회담은 신경전 양상이였다.자유진영 즉 유엔측에서는 회담을 낙관하고 있었다.양쪽 모두 지쳤기 때문이다.자유진영은 정전을 원했지만 공산진영은 정전은 옵션 중 하나였다.결국 회담과 정회가 반복되게 된다.







공산진영의 수석대표는 남일이였다.남일은 강건과 김책이 사망하자 북한군 3대 총참모장에 오른 인물이였다.남일은 독소전쟁에도 참가한 베테랑으로 알려져 있었다.나중에 조사해보니 남일은 군인이였던 적이 없었다.고려인 출신으로 대학교 졸업 후 우즈베키스탄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교사였다.교사 생활 중 독소전쟁이 터지게 되고 남일은 교육 공무원이 되며 승승장구하게 된다.소련이 2차대전후 북한으로 들어가자 북한을 지원할 인력이 필요했는데 이 때 남일이 자원하게 된다.아내와 딸을 소련에 두고 북한에 가게 된다. 여기서 김일성의 신임을 얻게 되고 교육 관료가 하루 아침에 총참모장이 된 것이다.





유엔군은 사전 합의 대로 백기를 꽂고 회담장에 가게 되는데 북한은 이를 보고 유엔군이 항복한다며 선전하게 된다.황당한 일은 계속된다.일부러 유엔군 의자를 낮추고 의제도 빙빙 돌리게 된다.유엔군과 공산 진영은 계속 말싸움을 주고 받게 된다.이런 상황에서 회담은 결렬되게 된다.회담장에 나오게 하려면 군사적 압박뿐이였다.그렇다고 확 밀 수는 없었다.희생도 희생이지만 회담을 깰 수는 없었다.결국 테이블에서는 설전이 벌어지고 밖에서는 잽만 날리는 소모전이 지속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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