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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6.25 전쟁

도쿄 긴급 회의

by senamu 2025.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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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1월 28일 전황이 급박한데 맥아더는 야전 사령관과 참모진을 도쿄로 불러들인다.알몬드와 워커까지 불러들인다.이들은 군용기를 타고 황급히 도쿄로 가게 된다.맥아더는 3일전만해도 북으로 밀고 들어가는게 쉬울 줄 알았다며 이게 뭔일이냐며 상황 파악에 나선다.애초 보고에 7만인데 왜 갑자기 20만으로 적군이 불어났냐 부터 심상치 않은 논의들이 오고 간다.서부 전선에 우측방이 뚫리고 있다는데 저기 원산에 미 3사단은 뭐하냐며 질책한다.하지만 그게 말이 그렇지 잘뚫린 도로가 아니고 산으로 겹겹히 둘러쌓인 곳이였다.워커는 방어진을 구축해야 한다고 하고 알몬드는 우린 무조건 북으로 가겠다 주장하게 된다.도쿄 회의는 소득 없이 끝나고 일단 불끄고 다시 집합하기로 한다.

도쿄회의를 마차고 워커는 11월 29일 아침에 서부전선에 워커는 복귀한다.상황은 더 나빠졌다.중국군이 밤사이 공격을 감행 방어선을 더 내려야 했다.청천강 이북 방어도 이 시기 너무 늦어 버렸다.이제 방어선을 청천강 아래로 한참 내려야 했다.미군은 넓은 길로 중장비들과 함께 철수를 하게 된다.큰 길로 가다보니 철수 부대를 엄호하면서 내려와야 하는 부대가 생기게 된다. 그부대가 미 2사단이다.각 부대들은 부대 단위로 대규모 철수를 알아서 하게 된다.한편 중국군 42군은 더 강한 레프트 훅을 날려 미군의 퇴를 끊어 미8군 전체를 궤멸시키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하지만 미 1 기병사단이 이를 저지하게 된다.위험한 곳은 미 2사단 지역이였다.마지막까지 엄호하느라 적진 한가운데 놓여져 버린 것이다.미 2사단 퇴로는 2개 였다. 군우리 에서 안주를 거쳐 숙천으로 가거나 군우리에서 순천으로 가는 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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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2사단은 순천 가는 방향으로 철수로를 정하게 된다.위력 정찰을 가보니 적이 없었고 반대쪽 퇴로는 많은 부대들이 이동 중이라 교통 정체에 걸릴 수 가 있었다.그리고 그 밑에 영연방 27여단이 있어 이들과 연계 작전도 할 수 있다며 이리로 퇴각하게 된다.하지만 이는 중국군 함정이였다.교통로 양쪽에 여기저기에 중국군을 촘촘히 박아 놓은 것이였다.겨우 10km 를 빠져 나오는 동안 7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그나마 이런 피해에 안도해야 했다.막강한 포병 지원과 항공 화력이 없었으면 전멸할 수도 있었다.이 패배를 미국에서는 인디언 태형을 받았다고 칭하게 된다.

 2사단 23연대는 가장 후미에 있었다.마지막 까지 병력을 엄호하고 철수 해야 했다.2사단이 인디언 태형으로 두둘겨 맞자 저기로 들어갔다가는 사지라며 철수로를 변경해 버린다.23연대장은 프리먼이였는데 이 결정으로 엄호 역활을 제대로 수행 못했다며 비판을 받게 된다.중국군의 2차 공세로 국군 2군단,튀르키예 여단,미2사단은 어마무시한 피해를 입게 된다.게다가 전선은 평양 인근 까지 밀려나 버리게 된다.중국군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중국군의 피해는 중국군 입장에서 무시해도 좋은 것이였다.전체 단위의 승리만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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