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군은 2차 공세를 착실히 준비한다.미언론에서는 미군이 크리스마스 공세를 펼친다며 기사를 내게 된다.이 정보는 고스란히 중국군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중국군은 적을 깊숙히 끌어들인다음 좌익에서 쑥 밀고 들어가 유엔군 우측에 강펀치를 날리는 작전을 짜게 된다.황초령 전투에 투입된던 42군이 이 좌익에 합류하게 된다.38군과 함께 중국군 2차 공세의 주공이 된다.중국군은 적을 적절히 끌어들여 방어하고 좌익 펀치로 유엔군 퇴로를 차단하여 한 6~7개연대를 부순후 평양 진격까지 꿈꾸게 된다.




펑더화이는 용인술도 펼친다.펑더화이는 .38군이 1차공세때 제역할을 못해 포위 섬멸의 기회를 놓쳤다며 갈군다.38군은 과거 115사단이 근 전신이였다.2차 국공 내전때 혁혁한 공을 세운 부대였다.펑더화이는 38군 사령관 량싱추에게 호랑이군이아니라 쥐새끼같다며 부대 명예를 더럽혔다고 꾸짖는다.그러면서 명예를 세울 기회를 준다며 이번 2차 공세의 주공을 맡겨 버린다.38군 사령관은 각성하여 예하 사단장을 차례로 갈구게 된다.그러면서 전의를 불태우게 된다.





1950년 11월 24일 미군은 야심차게 북으로 진격한다.병력차이는 중국군이 압도적이지는 않았다.문제는 우익이였다.여기는 병력 밀도가 높았다.중국군은 확실히 약점을 간파하고 있었다.우익에 병력을 집중시켜 순간적 병력에 우위를 점한 것이다.우익에는 인해전술이 벌어지게 된다.맥아더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8군 사령관 워커는 중국군과 실제로 싸운 경험을 바탕으로 조심스러워 하고 있었다.밀번을 불러 돌다리도 두들기는 심정으로 진격하라고 당부하게 된다.새로 투입된 9군단장은 상황을 낙관하고 있었다.압도적 화력으로 조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미군과 한국군은 동시에 북으로 진격나팔을 불게 된다.진격 20km 도 못가서 좌익 곳곳에서 중국군이 공세를 펼치게 된다.11월 25일 한국군 2군단이 맡은 우익은 수적 우위의 중국군을 맞딱뜨리게 된다.한국군 2군단장은 예비대 6사단 2연대를 투입하게 된다.중국군 38연대는 7사단본부에 별동대를 투입 사단사령부를 공격하고 그대로 7사단은 무너지게 된다.8사단도 42군의 공격에 궤멸적 피해를 입게 된다.11월 26일 8사단도 무너지게 된다.2군단장은 남은 6사단을 이용해 철수를 엄호하게 된다.중국군 38군 기세를 모아 미군 우측 옆구리를 치러 들어가게 된다.




워커는 우익의 한국군 2군단이 무너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미9군단장에게 우측을 방어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이곳에서 중요한 교통의 요지가 있었는데 여기가 덕천이다.평안남도에서 아주 중요한 거점이였다.미군과 중국군 모두 이 지역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먼저 중국 38군이 덕천을 먹게 되고 대공세를 펼치게 된다.1950년 11월 27일 워커는 항공정찰을 하고 중국군 1차 공세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전황이 불리해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맥아더에게 긴급보고를 하게 된다.





미군은 중국군의 공세에 9군단을 철수하기로 결정한다.일단 방어선을 구축하고 다시 반격하기 위해 철수를 한 것이다.하지만 그러려면 우익을 방어해야 했다.영연방 27여단과 튀르키에 사단을 투입하여 무너진 한국군 자리를 매우러 가게 된다.미9군단은 철수하면서 이들을 엄호하는 임무를 미 2사단에게 부여하게 된다.워커는 아직까지는 철수해서 방어라인 다지며 다시 반격하면 전세를 뒤집을 수 있다고 희망회로를 돌리고 실제 맥아더에게도 보고를 그렇게 한다.




중국군은 기회를 잡았다고 판단한다.덕천도 먹었고 이제 더욱 큰 꿈을 꾸게 된다.처음에는 연대 몇개반 섬멸한다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전황을 시찰하더니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라며 아얘 미8군 전체를 포위 섬멸하는 작전을 구상하게 된다.1950년 11월 27일 야간에 중국군 38군 113사단은 행군을 감행한다.단독군장으로 신속히 돌파 14간만에 심소리로 들어오게 된다.이 부대가 행군한 거리는 무려 75km 정도 였다.산속을 거의 구보로 온 것이다.물론 사단 전체가 들어오지는 못한다.빨리 갈 수 있는 놈은 빨리가고 낙오할 놈은 낙오하면서 한 성과이다.중요한 것은 여기에 자리를 잡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것이다.



미9군단이 방어라인까지 철수해야 하는데 잘못하면 중국군에 둘러싸일 위기에 놓이게 된다.마오쩌둥은 승리에 감격하며 펑더화이를 극찬한다.만족하지 말고 42군을 더 남쪽으로 투입 미8군 주력 3개 사단을 섬멸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중국군은 통신 장비도 열악한데 이런 성과를 낸 것이다.목표를 정확히 주고 지휘관들은 전황을 보면서 자유롭게 군을 움직인 것이 주효했다.38군은 1차공세의 치욕을 씻고 만세군이라는 호칭을 얻게 된다.









이 38군의 진군을 막고 나름대로 선전한 부대가 바로 튀르키예 사단이였다.병력의 80%가 손실 되었지만 사흘 동안 버티면서 9군단 퇴각에 숨통을 트여주게 된다.이 막대한 피해로 미군과 튀르키예군은 책임공방을 벌이게 된다.미국과 튀르키예는 군사 지휘 방식이 매우 달랐다.튀르키예는 오스만 시절 독일군의 영향으로 임무형 지휘체계를 중요시하는 군대였다.하지만 미군은 상급 부대 판단을 그대로 하급부대가 따라야 하는 방식이였다.게다가 서로 말도 안통했다.튀르키예는 명령이 이상했다고 하고 미군은 너희가 명령을 잘 안들었다고 싸우게 된다.이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튀르키예는 미군이 차량도 제대로 지원안해줬다며 매우 서운해 한다.이 후로 여러 기록을 보면 튀르키예 여단은 미군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 일이 빈번했다고 전해진다.
'역전다방 > 6.25 전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미스와 쑹스룬 (0) | 2025.11.30 |
|---|---|
| 도쿄 긴급 회의 (1) | 2025.11.30 |
| MIG-25 출현과 중국군의 유인 작전 (0) | 2025.11.29 |
| 미군 정보부의 오판 (0) | 2025.11.27 |
| 황초령 전투 (0) | 2025.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