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련은 6.25 전 중소우호동맹상호 원조 조약을 체결한다.허약한 중국 공군력을 보완하기 위해 상하이에 106전투 항공 사단을 파견 중국 공군을 양성하는데 도움을 준다.여기에 39대의 최신 MIG-25 기를 배치하게 된다.6.25 무렵에 소련은 만주에 공군력을 집결 시키고 조용히 출동을 기다리게 된다.주변의 2개 공군 연대를 전진 배치 시키고 1개 사단도 선양과 단둥에 위치하게 된다.







중국이 참전을 공식화하자 MIG-15를 124대로 늘리고 만반의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1950년 11월 1일 정오 RF-30 정찰기가 신의주 근처를 정찰하다가 비행장에 전투기들을 발견하게 된다.미5공군 사령관은 이 곳의 비행기를 몰살시키기 위해 F-80C 슈팅스타를 출격시킨다.열심히 공격하고 있는데 못보던 전투기와 조우하게 된다.바로 MIG-15 였다.여기서 미공군은 MIG-15기를 보고 깜짝 놀란다.공중전에서 밀린 것이다.미군은 소련군이 공식 참전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중국군이나 북한군이 소련 전투기를 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실체는 소련군 조종사가 모는 전투기였다.이들은 의사소통을 중국말이나 북한말로 해서 참전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극동에 있던 F-80C,F-84 모두를 압도하는 전투기가 MIG-15였다.미국의 최신 전투기는 극동에 배치가 되지는 않았다.MIG-15는 11월 9일 RB-29(B-29 정찰기 버전)를 공격해서 치명상을 입힌다.그 후로 B-29 폭격기를 노리면서 상공을 휘젖게 된다.






MIG-15기는 당대의 최신 기술을 많이 집약시킨 기체 였다.영국의 항공엔진에 항공역학적 설계가 더해진다.음속을 돌파하면 바람의 저항을 만만치 않게 부딪히게 된다.직선인에 비해 후퇴익으로 하면 이 저항을 줄일 수 있었다.후퇴익도 마냥 유리한 것은 아니였다.날개 끝단에 와류가 생겨서 난기류가 생겨 비행기가 흔들리게 된다.전투기는 기체를 좌우로 틀려면 에일러론이라는 장치가 필요한데 이게 끝단의 와류로 인해 제대로 제어가 안될 수 가 있어다.이를 항공역학 적으로 극복한 것이다.미공군은 패닉에 빠진다.이러다가 주간 폭격을 못하는 거 아니냐며 우려한다.하지만 소련도 확전을 피하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였다.국경지대에만 조심스럽게 항공지원을 하게 된다.북한 지역 내에서 여전히 미공군은 하늘을 휘젖고 있었다.11월말 까지 압록강에 대한 폭격은 이루어지나 겨울이 오자 이는 무의미하게 된다.압록강이 얼면서 이제 아무곳이나 다 넘어올 수 있게 된다.


1950년 10월 25일 부터 11월 5일 까지 중국군 1차 공세(운산전투 등)에 혼줄이 난 유엔군은 중국군을 평가하는 자료집을 내게 된다.중국군 공격 전술이 후방에 별동대를 투입해 혼란을 빠뜨린 후 전면 공격에 나서는 패턴이라고 분석한다.방어에서는 길을 따라오는 적의 전면과 후면을 쳐서 싹뚝 자른후 중앙에 집중 공격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하지만 중국군 병력은 적어서 우리가 잘 이길 수 있다는 희망회로를 돌리고 있었다.중군군도 미군을 분석하게 된다.미군은 낮에만 공격한다.화력이 어마 무시무시하다.그러나 보병이 약하다.보급로를 끊으면 전의를 상실한다.이런 결론을 낸다.한국군도 분석한다.미군보다 동기 부여는 있었으나 한국군이 미군 전투력에 1/3도 못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약한 고리인 한국군을 노리면서 공세를 펼치면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게 된다.








미군은 크리스마스 오기전에 공세를 펼쳐서 중국군을 섬멸하기로 한다.워커 미 8군 사령관은 고심하게 된다.보급이 발목을 잡게 된다.하루 필요량은 4000여톤이였지만 11월 경 그 절반인 2000여톤만 가능한 실정이였다.동부전선도 여의치 않았다.서부전선과 동부전선의 간극이 벌어진 것이다.중간에 누군가가 여기를 틀어막아야 했다.한국군 2군단도 문제였다.일전의 전투에서 어마무시한 피해를 입었는데 사용을 안할 수는 없었다.2군단의 진격 루트는 험난했다.말 그대로 첩첩산중이였다. 새로 투입되는 미9군단이 희망이였다.9군단 예하 미2사단은 미8군 가운데 전차나 이런 장비 수준에서 최강의 부대였다.하지만 이동시간이 문제였다.맥아더는 빨리 진격하라 독촉하나 워커는 이런 현실적 이유로 공격을 미룬다.결국 11월 24일에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진격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이렇게 늦어진 시각에 중국군은 칼을 더욱 다듬고 있었다.











중국군은 유엔군의 북진을 예상하고 치밀히 준비한다.일전에 공세를 하다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있었다.적을 깊숙히 끌어들이려 한 것이다.펑더화이는 마오쩌둥에게 적을 유인해서 섬멸하겠다는 야심찬 작전을 전달하고 마오쩌둥은 이를 승인한다.중국은 이런 전술이 맞았다.공세를 더하고 싶어도 보급이 문제였다.트럭이 아니라 당나귀로 보급을 해야 하니 아무래도 보급선을 길게 가져 갈 수 없었다.식량도 문제였다.알보병에게 차오멘 주고 버티라는 것이였다.이렇게 하면 버틸 수 있는 기간은 한 일주일 되었다.다 떨어지면 후퇴했다가 다시 식량받고 전투에 들어가야 했다.중국군은 2차 공세에 들어가기 전 펑더화이는 이런 말을 한다.제나라 시절 3판 2승제였던 전차 경주가 있었다.말과 기사의 실력에 따라 이를 상중하로 나눈다.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적하고 대적할때 상은 상끼리 중은 중끼리 하는 하끼리 하면 될 것 같지만 이러면 확률이 낮다.상에게 하를 던져주고 상은 중을 상대하고 중을 하랑 상대하게 하면 2승으로 이긴다는 것이다.펑더화이는 강인 미군 9군단을 비워두고 하 인 한국군 2군단을 섬멸해 활로를 만들 작전을 구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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