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한다.초기에는 유럽인들이 자국에서 사용하는 화폐를 가져와서 쓰다가 점점 영국의 금화와 은화를 사용하게 된다.인구가 늘고 경제활동이 활발해 지면서 돈 자체가 부족해 진다.방법은 상품을 팔아서 영국돈을 벌어들이면 되지만 신생국 미국은 오히려 영국에서 수입하는 물건들이 더 많았다.미국은 자체적 돈을 만들려 하나 영국은 이에 딴지를 건다.화폐는 국가 고유 권한이였다.식민지 미국에게 이런 권한을 줄 수 없었다.
영국이 미국에 돈 찍는 것을 거부한 것은 위조지폐 문제도 있었다.사람들이 금과 은을 얻기 위해 동전의 테두리를 깍거나 훼손해 버린 것이다.이렇게 되다 보니 화폐의 가치가 떨어져 버렸다.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은 뉴턴을 조폐국장 자리에 앉힌다.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던 뉴턴은 머리를 굴리다가 묘책을 생각해 낸다. 훼손을 막기 위해 동전 테두리를 톱니모양으로 만든 것이다.이게 흠집이 가면 위폐인 것이다.동전에 톱니가 있다보니 위폐를 만들기가 매우 까다로웠다.
미국은 부족한 돈을 위해 스페인 주화를 사용하게 된다.그리고 약속 어음도 발행한다.메틸랜드 주에서 발생한 종이 어음 내용은 만일 이 증서를 가지고 오면 영국의 금화나 은화 4실링으로 바꾸어 주겠다는 내용이 담기게 된다.이 증서가 지폐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이런 증서들이 미국 각 주마다 따로 있었다.그러다가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이 발생하고 미국과 영국은 전쟁에 돌입한다.
전쟁을 하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게 각 주의 대표들은 모여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게 된다.그 결과 최초의 통일 지폐인 콘티넨털 노트가 탄생하게 된다.돈이 많이 필요하니까 마구 찍어내고 결국 이 노트는 휴지조각이 되버린다.영국은 미국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위조지폐를 대량으로 유통시키게 된다.물가는 급상승했고 사람들은 화폐 받는 것을 꺼리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1781년 10월 미국은 영국으로 부터 항복을 받아내고 독립하게 된다.영국 식민지 시절 못했던 은행을 설립하게 된다.
미 연방정부는 알렉산더 헤밀턴을 초대 재무 장관으로 임명한다.그는 박살난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중앙은행 설립,국채 발행으로 연방정부 수입 확보,통일된 화폐발행을 주장한다.하지만 이렇게 되면 연방정부 권한이 너무 세져서 주 정부 권한이 약화될 것을 우려해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헤밀턴은 끈질지게 의회를 설득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다.그리하여 제1 미국은행이 설립된다.한계도 있었다.20년 한시적 운영이라는 전제를 단 것이다.우여곡절 끝에 중앙은행 격인 제1 미국은행에서 통일된 화폐를 발행하게 된다.
하지만 20년이 흘러 제 1미국은행은 주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이유로 날아간다.민간은행이 미국 전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1860년대에 이르러 민간은행만 1500여개에 이르고 은행이 발행하는 은행권만 9000여 종이였다.사람들은 재무상태가 좋은 은행의 은행권을 선호하게 되고 이 때문에 각 은행끼리 은행권의 교환 비율이 정해지게 된다.이를 잡지에서 알려주기도 한다.상황이 이렇다보니 위폐도 많아 이를 감별하는 법도 잡지에 실리기도 한다.어느 한 은행권도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화폐 무법 시대가 펼쳐지게 된다.이보다 앞서 1816년에 제2 미국은행도 설립되나 제1 미국은행 처럼 흐지부지 되어 15년 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1861년 4월 남북전쟁이 발발하게 된다.북부는 막대한 돈이 필요하자 그린백을 발행한다.위조를 막기위해 최신 위조 방지 기술인 녹색 잉크를 쓰게 된다.더 자세한 내용은 이 블로그 역전다방 => 남북전쟁에 다루고 있다.전쟁은 북부의 승리로 끝나게 되고 정부는 막대하게 풀린 그린백을 회수하기 시작한다.미국은 전후 금은본위제로 돌아가게 된다.금과 은을 화폐로 쓰겠다는 것이다.때마침 1848년 쯤 미국 서부에 골드러시가 일어나면서 금의 공급도 많아진 터였다.그러다가 1900년 세계적 추세가 금으로 가자 은을 버리고 금본위제로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