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절 미국이 소련을 약화하기 위해 일부러 유가를 떨어뜨렸다는 설도 존재했다.이라크 후세인에게는 가슴철렁한 일이였다. 빨리 전쟁에서 회복해야 하는데 유가가 떨어지니 난리가 난다.쿠웨이트와 이라크 접경지역에 걸쳐있는 유전이 있었는데 여기도 문제가 된다.한 쪽 나라가 기름을 퍼가면 다른 한 쪽은 퍼 간 만큼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쿠웨이트는 유가에 아랑곳 않고 석유를 과잉 생산하고 있었다.이라크는 이란과 전쟁하면서 많은 부채를 지는데 쿠웨이트에게도 돈을 빌렸다.이라크는 이란과 싸우면서 아랍국가의 지원을 나름 받았다.이라크는 아랍국가들을 대신해 페르시아인 이란과 싸운다는 명분을 내세운 것이다.다른 중동국가는 그래도 이라크를 동정적으로 바라보나 이라크 옆에 자그마하게 붙은 쿠웨이트는 쌩까고 있었다.후세인은 열불이 난다.
후세인은 짱구를 굴린다. 이라크가 세계 원유 생산량의 12% 이고 쿠웨이트가 9% 니까 쿠웨이트를 먹으면 21%가 되어 사우디아라바아의 원유 생산량 25%와 대등해지게 됨을 알게 된다.석유 시장의 큰 손으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입장이 될 수 있는 것이였다.쿠웨이트를 군사적으로 압박하면서 후세인은 콩고물을 얻어먹고 아랍의 힘을 등에 업고 이스라엘을 칠 생각을 한다.실제로 요르단에 장교를 파견 지형을 정찰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미국 CIA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공격할 수 도 있다고 경고하나 미국은 아랍인들끼리 설마 전쟁을 하겠나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사우디아라비아는 쿠웨이트와 이라크가 심상치 않다고 보고 중재를 하려한다.이라크는 쿠웨이트에게 경제 원조를 바라나 쿠웨이트는 나몰라라 한다.미국 대표들도 이라크와 접촉한다.여기서 후세인은 이란-콘트라 사건을 꺼낸다. 이 사건은 미국이 이라크를 지원하면서 몰래 이란에게도 무기를 판 사건이다.레이건 행정부 당시 남미 공작 자금이 필요했던 CIA는 자금을 얻기 위해 이란에 무기를 판 것이다.무기 판 수익금으로 남미 니카라과 반란군 지원하게 된다.미국은 이라크에게 잘 지내고 싶다고 하고 중동지역 분쟁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에 된다.
미국도 개입안할 것 같고 쿠웨이트는 이웃의 어려움을 무시하고 자신들 유전에서 기름을 퍼간다고 생각하자 후세인은 결심한다.1990년 8월 2일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침공한다.10만의 병력과 전차 350여대로 일제히 쿠웨이트로 진격한다.전차 350여대중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전차는 24대 뿐이였으나 쿠웨이트군은 허약했다.속절없이 무너지게 된다.이라크군은 수도 쿠웨이트시티까지 바로 진격한다.이라크군은 특수부대까지 투입한다.쿠웨이트군은 16000여명 있었는데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못한다.쿠웨이트 공군은 이라크 침공하자 싸우러 가는 게 아니라 이웃나라로 대피한다.지도부도 사우디아라비아로 도망간다.쿠웨이트 참모 총장은 반격을 명하나 실패한다.당일에 수도를 점령하고 이라크군은 그대로 남하 쿠웨이트 영토를 손쉽게 차지한다.
쿠웨이트는 너무 안일했다. 미국과 영국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후세인은 곧바로 언론플레이를 한다.석유기술자를 아버지로 둔 스튜어트 록우드를 친절히 대하며 이를 방송으로 내보낸다.쿠웨이트에는 외국인이 상당수 체류하고 있었다. 후세인은 이들을 잘 대해주고 있다며 나름의 쇼를 한 것이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이집트가 나선다. 원래 이집트와 이라크는 사이가 좋았다.우방이라 믿었던 국가가 먼저 뒤통수를 친것이다.아랍은 뭉쳐서 이라크가 쿠웨이트에서 철군해야 한다고 압박을 가한다.서유럽국가와 일본,우리나라등도 잇달아 이라크에게 비난을 가한다.결국 UN 안보리에 상정되게 된다.미국은 이 직전에 베트남 전쟁을 치루었는데 이 때는 UN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프랑스,독일,영국등이 이 전쟁에 부정적 입장을 보여 참가를 안하게 된다.그러나 중동은 다르다. 석유가 나고 각 국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곳이였다. UN이 결의안을 통과되고 전쟁개입을 결정하자 미국은 자신있게 참전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