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대전이 끝나고 세계는 냉전시대에 돌입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48년에 1차 이스라엘과 아랍연맹의 전쟁이 발발한다.위기감을 느낀 아랍국가들은 동맹을 맺고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다.1956년에는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이집트의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 해버리는 사건이 일어난다.여기에 이스라엘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이집트를 밟기 위해 침공한다.여기에 자신들의 이익이 걸린 영국과 프랑스도 참가하려 했지만 이스라엘 혼자서 이집트를 압사시킨다.여기에 3차 중동전쟁도 계속일어나면서 중동은 격랑의 소용돌이에 들어가게 된다.하지만 미국과 소련 두 거대 강대국이 이 지역을 컨트롤하면서 커다란 전쟁으로 번지는 것을 뒤에서 막고 있었다.
중동정세가 격랑에 요동치는 동안 이라크도 시끄러웠다.이라크에서는 영국이 세운 허수아비 왕정으로 복귀를 반대한다.이라크 군부는 급진적 개혁을 추구하는데 이것이 범아랍민족주의 운동이다.아랍끼리 뭉쳐허 미국과 같은 합중국을 목표로 내건 운동이다.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이를 기조로 삼은 바트(아랍부흥사회)당이 창당되게 된다.1958년 이라크에서는 압둘카림 카심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과 왕족 그외 방해세력을 살해하고 정권을 잡는다.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 했던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는 범 아랍주의를 내세워 아랍을 뭉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이집트하고 시리아가 먼저 아랍연합공화국을 수립한다.이라크의 바트당도 여기에 동참하려했으나 정권을 잡은 이라크 카심은 초심을 잃고 그거 꼭 해야만 하니라며 반대한다.카심은 나세르와 연합을 거부하고 공산당과 결탁한다.바트당이 추구하는 것은 강력한 리더쉽에 의한 아랍의 연대와 통일 그리고 자칭 아랍식 사회주의를 내세웠다.얘네들은 정권을 폭력으로 잡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주의자들이였다 결국 카심의 이런 움직임에 1963년 바트주의를 신봉하는 장교들이 다시 쿠테타를 일으키고 카심은 축출된다.압둘 살람 아리프는 정권을 잡고 연립정권을 수립한다.정권을 잡고보니 바트주의자가 너무 과격하다며 이들을 숙청한다.
카심장군이 정권을 잡고 있던 시절 후세인은 카심 암살작전에 가담하게 된다. 여기서 암살은 실패하고 총상을 입은 후 이집트로 도망간다.카심이 후에 살해당하고 아리프가 정권을 잡자 귀국한다.1964년 미셀 아플라크는 바트당에서 후세인을 발탁한다.후세인은 이집트 나세르를 롤모델로 삼았다고 한다.여기서 그는 물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후세인은 권모술수에 능하고 정보를 다루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바트주의자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후세인에게 궂은 일을 많이 맡기고 후세인은 이를 성실히 수행한다.음지에서 피를 묻히며 묵묵히 일한 후세인이 바트당 권력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아리프가 바트주의자들을 숙청하자 바트주의자들은 아리프를 몰아내고 알바르크가 정권을 잡게 된다.알바르크 휘하에서 후세인은 비밀 경찰을 지휘하게 된다.우리나라 중앙정보부 쯤 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바트당이 이라크 정권을 잡자 권력의 정점에 오른 이들은 아랍을 꼭 통일해야 되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뭔가 이라크 국민들을 뭉쳐서 단결시킬 필요성이 있었다.그래서 나온 것이 이라크 민족주의 였다.이라크는 찬란한 역사를 가진 나라라는 것이다. 이라크는 민족으로 통일하자니 쿠르드족 등 여러 족이 있어서 걸리고 종료로 하자지 수니파,시아파로 갈라져 있었다.찾다찾다 찾은 것이 이라크 지역은 예전에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 였던 것이다.이라크인들은 이 자랑스런 바빌로니아의 후예라며 단결을 강조한다.알바르크의 총애로 후세인은 더욱더 많은 정보를 쥐게되고 권력이 점점 커진다. 후세인은 권력을 이용해 주변을 자기 사람으로 채우기 시작한다.마침내 1979년 때가 오게 된다.알바르크가 건강이 악화되자 후세인은 대통령에게 말년을 편히 쉬라며 사임을 강요한다.결국 후세인은 대통령이 된다.대통령이 된 후세인은 그동안 비밀경찰을 하면서 쌓아놓은 정적리스트를 이용 살생부를 작성하고 반대파를 숙청해 나간다.후세인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 시기에 우상화 작업을 본격화 한다.자신이 함무라비 후손이라고 칭한다.후세인은 군 경험도 없지만 옷에 훈장을 엄청 달고 다니기 시작한다.게다가 이라크 하심 왕조의 적통이라며 요르단 국왕을 형이라 부른다. 사실은 둘은 아무 사이도 아니다.여기에 그치지 않고 종교 지도자까지로 자신을 격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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