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미국의 중재로 이집트 이스라엘이 화해하며 중동이 안정되나 싶은 찰나에 또 다시 혼란을 야기하는 사건이 일어난다.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다.원래 이란은 이 혁명이 일어나기 전 자유분방한 국가 였다.과거 사진을 보니까 잘사는 미국 베버리 힐즈 느낌이 난다.여성들도 자유로운 복장에 해수욕장에 비키니까지 입장하고 돌아다녔다.그러던 이란이 이슬람 근본주의로 돌아가자며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아랍 본연의 모습을 찾겠다며 그동안 친했던 미국을 배척한다.이 이란 혁명으로 오일쇼크가 일어나며 다시한번 중동정세는 요동치게 된다.
이란이 이렇게 근본주의로 회귀하자 이라크도 위기를 느낀다.이라크 지배세력은 수니파 였는데 이들이 다수의 시아파를 누르는 형국이였다.이란은 시아파였다.잘못하면 나라가 위태로울 수 있었다. 이라크는 시아파의 분리 움직임을 좌시할 수 없어 이들을 더 찍어 누르게 된다.그리고 이란 이라크가 이런 종교 문제말고 두가지 더 문제가 있었다. 원래 이웃 국가 끼리는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니땅 내땅 옥신각신하며 사이가 좋지 않게 된다. 이란 이라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알제협정을 맺어서 국경문제를 일단락한다.또 이란과 이라크는 민족 자체가 아얘 틀렸다.페르시아의 후예 이란과 아랍 민족인 이라크가 이웃한 것이다.
이라크에서 후세인이 정권을 잡고 이란이 혁명으로 혼란에 빠지자 이란은 국경 조약인 알제협정을 파기하고 1980년 9월 22일 이라크를 침공한다.이란은 혁명으로 많은 유능한 장교가 투옥된 상태여서 이라크 후세인 생각으로는 단기적으로 이란을 제압하고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이들 전쟁은 단순한 이웃국가 끼리의 영토 분쟁이 아니였다.시아파와 수니파 싸움으로 부각되면서 중동국가들이 자신들 구미에 맞게 전쟁에 관여하게 된다.특히 중동국가들은 왕정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은 이란을 싫어했다.중동국가 대부분이 왕정이라서 자신들 목이 위태로운 것이다.여기에 반미로 돌아선 이란에게는 반미국가들이 들러붙게 된다.미국은 자연스레 이라크를 돕기로 한다.북한도 동참한다. 이란에 붙어서 무기를 수출하게 된다.원래 이란이 혁명전에는 친미국가여서 미국으로 부터 어마어마한 무기를 사들인다.미국의 최강 전투기 톰갯을 수입한 유일한 나라였다.문제는 미사일이였다. 이라크가 스커드 미사일 보유량이 이란에 비해 많았다. 북한은 이런 이란에게 소련미사일을 복제한 R-17 을 제공해 준다.그리고 이란은 더 연구하라며 이라크 스커드 미사일 잔해를 북한에게 넘긴다. 북한은 이를 참고하여 탄도미사일을 연구하게 된다.
이라크는 1972년 소련과 조약을 맺고 소련제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이 협정에는 소련 무기 수입은 물론 기술 이전도 포항되어있었다. 하지만 소련은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았다. 더군다나 무기 납품일자도 어기기 일 쑤 였다.후세인은 울화통이 터져 서방국가에게 손을 뻗친다.무기를 여기저기서 마구 사들인다.전세계 무기 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무기가 다양하니 운용이 매우 어려워지게 된다.북한은 이런 이라크에 손을 또 뻗쳐 야포와 소화기용 탄약을 이라크에 판매한다.알게 모르게 이 전쟁으로 북한은 득을 보게 된다.
이라크의 탱크도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는다. 처음에는 소련 전차를 사들였다가 배송 지연으로 이라크는 복장이 터지는 중이였다. 이 때 중국이 등장하며 59식 전차를 들이밀며 도입을 권유한다. 하지만 중국 탱크는 적외선 탐조등, 주포 안정화 장치등 여러 기능이 빠져 있었다. 그나마 싼 맛에 도입하지만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한다. 소련 전차와 호완 된다던 중국 전차는 전혀 호환 되지 않았다. 후에 중국은 개량된 탱크를 판매하지만 2달 후 탱크가 멈추게 되고 고철이 된다.이라크는 어쩔 수없이 오리지널 소련 탱크를 도입하고 이때 또 북한이 등장한다. 소련 T-62를 개량한 천마호를 판매한 것이다.소련제보다는 못하지만 중국제보다는 좋은 수준이였다.그러면서 소련 최신 탱크인 T-72도 구매한다. 좋은 탱크이므로 이라크 최정예 군인 혁명 수비대에게 우선 공급된다.이라크 혁명 수비대란 후세인의 최정예 친위 부대로 나치의 SS 생각하면 된다.하지만 후에 벌어질 걸프전에서 T-27 포의 수명은 서방에 비해 1/5 정도로 형편 없었고 엔진수명도 서방 대비 1/3으로 형편없음이 드러나게 된다.
이라크는 승리를 위해 화학무기까지 사용하게 된다.전쟁은 이란과 이라크 모두에게 치명타였다. 누구하나 승기를 잡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태가 계속된다.서로 이익은 없고 경제는 파탄에 이르게 된다.두 나라 모두 끝내야 하는데 명분이 없었다.결국 1988년 7월 양측은 전쟁 수용에 한계를 느끼고 유엔 결의안으로 휴전하고 이란의 호메이니도 동의하면서 8년간의 전쟁은 끝나게 된다.경제는 거덜나고 군사력은 그동안 수집한 무기로 불어나 있었다.이라크는 전쟁을 하면서 많은 빚을 지게된다.이 빚을 갚으려면 석유를 팔아야 하는데 재수없게도 석유값이 떨어지기 시작한다.이 시기 절묘하게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실패하면서 소련의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중동을 컨트롤 하던 미국과 소련 중 한 개의 축이 무너진 것이다.이라크 후세인은 고민하기 시작한다.전쟁은 끝나고 불어난 군인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후세인이 정권 유지가 가능했던 것은 그나마 경제적으로 풍족해서 유지했던 측면도 있는데 이게 무너진 것이다.돌파구를 찾아야 했는데 이 때 후세인 눈에 들어온 나라가 쿠웨이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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