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세계로 힘을 뻗친 영국은 해군과 보조군의 사격술을 장려하게 된다. 그리고 스포츠로서 사격술을 보급하기위해 전영총기협회를 만든다.남북전쟁 초기 북군의 민병대는 사격술이 형편없었다.뭔가 평상시에도 사격술을 연마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남북전쟁이 끝나고 재대군인들 사이에서 총이 그리워 지게 된다. 더군다나 계속된 전쟁으로 총도 굉장히 많이 업그레이드 되어 있었다.전쟁이 끝나나 서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데 이 때 필요한 것이 총이였다.이런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여 1871년 11월 뉴욕주에서 NRA (전미총기협회)가 탄생한다. 초대 회장으로 포토맥군 2대 사령관이였던 번사이드가 낙점된다.번사이드는 패장이였지만 장비 스타일이였다. 남북전쟁 후 철도회사 대표도 하고 로드 아일랜드 주지사도 역임한다.NRA가 등장하자 남부도 열광한다. 총을 놓으면 언제 또 북부에서 남부를 잡아먹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남부는 총기를 외부로부터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수단으로 열광하게 된다.
NRA는 1934년 미국총포법(National Firearms Act, 약칭 NFA)과 1938년 총포관리법(Gun Control Act, 이하 GCA)을 적극 로비하여 통과시킨다.이들 법으로 인해 미국에서는 전과자는 총을 더 이상 소유할 수 없게 되었으며, 총포상과 총포 소유자는 정부에 등록을 해야 하며, 총과 관련된 세금이 신설되었다.놀랍게도 법개정 전 까지는 이런 규제가 전혀 없었다.NRA는 총을 옹호하는 단체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규제도 지지해서 올바른 총기 사용을 적극 장려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이 촉발한 극렬한 반전운동과 히피 문화의 대두, 플레이 보이로 대표되는 성혁명, 흑인 인권운동에 대해 탐탁지 않게 여기는 세력이 등장한다. 이들은 조상 대대로 지켜온 자신들의 위대한 미합중국을 출신 성분도 모를 천박한 흑인들이나 이상한 새끼들한테 뺏기게 생겼다는 위기감을 느낀다.이런 위기감은 신보수주의 정치운동으로 나타나고 1977년 NRA 전당대회에서 이들이 정권을 잡게 된다. 보수로 회귀되고 NRA에서는 이를 신시내티 혁명이라고 한다.이 때부터 총기 사용의 책임보다 권리가 강조되게 된다.NRA는 이 후로 더욱더 힘을 키워 회원수가 500만명에 이르게 되고 정치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게 된다.
오늘날 미국은 총기 난사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잊을 만하면 뉴스에 나온다.총기 규제 목소리가 높아지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전국민의 총을 빼앗는 것은 아니다.총기 소유 반대론자 조차도 총기 소유에 대해 보다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자는 것이지 아예 무소유하자는 것은 아니다.미국인에게서 총기는 자유를 지키는 수단이자 신념 그 자체로 여기고 있다.전부는 이해 할 수 없어도 미국 역사를 보니까 그럴 만도 한 것 같다.이런 미국의 총기에 대한 개념은 1791년에 제정된 수정헌법 2조에 잘나타나 있다.
A well 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state)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미국은 우리와 달리 헌법을 고치기가 매우 쉽다. 수정헌법으로 법조항을 추가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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