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민권법이 통과된다.여기서 속지주의가 나온다.출생지에 태어난 사람에게 시민권을 준다는 것이다. 즉 미국에서 태어난 흑인들에게 시민권을 주기위한 법인 것이다.참고로 우리나라는 속민주의 즉 혈통을 중시한다. 다른 민족이면 국적을 취득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구조로 되어있다. 앤드루 존슨은 이에 거부권을 행사했으나 1866년 선거로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 급진파는 재투표하여 이를 강행처리 한다.앤드루 존슨은 전쟁장관을 경질 시도하나 의회 다수를 차지하는 공화당에 의해 저지된다.공화당 급진파는 한 술 더 떠 관직보유법을 만들어 정당한 사유없이 장관을 마음대로 목아지를 칠 수 없는 법을 만든다.이 법으로 인해 미국 장관의 명줄은 꽤 길어진다.마찰을 빚은 대통령과 의회는 결국 1868년 2월 24일 미국 최초로 대통령 탄핵안 표결이 하원을 통과하게 된다.하지만 상원에서 1표가 부족해 부결되고 다시 탄핵을 추진하나 무산된다.존슨은 탄핵은 면했으나 식물 대통령이 되고 만다.1868년 7월 9일에는 미국 수정 헌번 14조가 비준된다.내용은 미국 시민의 특권을 축소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즉 민권법과 이 14조에 따르면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정당한 시민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즉 흑인의 후손이 이 법의 적용을 받는 것이다.
1869년 3월 4일 존슨은 물러나고 새 대통령으로 전쟁 영웅 그랜트가 당선된다.수정헌법 15조가 그랜트 시절에 통과되게 된다. 1869년 2월 26일에 상정되어 1870년 2월 3일에 비준된다.시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할 때 그 시민의 인종, 피부색 또는 이전의 예속상태(노예)에 근거하여 부여를 거부하여서는 안된다는 내용이다.이로써 흑인은 점점 정치적 힘이 세지고 있었고 남부 백인들은 상대적으로 소외가 가속화 된다.법무부도 설립하여 이를 이용하여 당시 백인우월주의자 KKK도 적극적으로 잡아들인다.하지만 정치는 전쟁과는 달랐다.전쟁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집단인 군대를 잘 통제하면 되었지만 정치는 여러 이익을 가진 집단을 통제를 잘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측근들이 너도 나도 무리를 일으켜 그랜트는 나락에 빠지게 된다.
흑인들의 정치적 입지는 강화되고 있었지만 삶은 어땠을까? 1865년 1월 셔먼은 흑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약 5만평의 땅을 주는 특별 야전 명령 15로를 발표한다.먼저 셔먼 휘하 흑인 병사에게 나누어 주려한다.하지만 남부에 흑인은 거의 400만명이였고 가난한 남부 백인들은 이게 뭔 역차별이나며 반대한다.결국 백지화된다.링컨도 같은 고민을 한다. 흑인에게 자유를 줘도 먹고 살 기반을 만들어 주어야 했다.1865년 3월 링컨의 승인으로 프리먼드 부서(해방 흑인국)을 만들어서 난민수용소를 운영하고 교육및 의료를 전반적으로 지원해 준다.후에 은행도 생기는데 이 은행이 프리먼드 저축은행이다.흑인들이 모은 돈을 여기에 저축했다.흑인들은 돈을 어떻게 모을까?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백인 농장주하고 계약을 맺는다. 농장주가 땅을 빌려주고 농산물을 수확하면 몇대몇으로 나누는 것이다.이게 바로 소작제이다.이렇게 모은 돈을 프리먼드 은행에 넣은 것이다.사실 의회를 장악한 급진 공화당은 반란을 주도한 지주 땅을 모조리 몰수해 재분배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남부 백인의 저항으로 입법은 무산된다.
남북전쟁 이후 재건사업이 터지면서 경제는 대호황이였다. 돈이 넘쳐나고 경제적 이권이 커지면서 검은 세력들이 판치고 그랜트 측근들도 여기에 연루된다.여기에다 임시 방편으로 전쟁을 위해 발행했던 그린백도 회수해야 했다.그랜트 정부는 긴축정책을 펼친다. 투기과열에 갑자기 돈 줄이 경색되자 1873년 공황이 발생한다. 같은 시기 유럽도 경제 위기가 발생한다.이 불황은 이 후 6년이나 계속된다. 이 여파로 프리먼드 은행은 1874년 파산하고 흑인들이 저축했던 돈도 같이 날아가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 그랜트는 1876년 놀랍게도 3번째 대선에 도전한다.
1876년 대선 직전 남부에서는 어느 정도 남부 백인들이 권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KKK단이 날뛰며 흑인 남성을 위협하여 유권자 등록도 차단한다.백인들이 자신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주정부를 자신들 입맛대로 구성하게 된다.그랜트는 이들에 대해 온화적 태도를 취한다. 남부 주 제어를 최소화한 것이다.역설적으로 이 시기 수정헌법 13,14,15조 통과로 이전 까지 보호받던 흑인도 그냥 동등한 시민이므로 특별히 봐주지 않게 된다. 게다가 북부인들은 서부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판세에 1876년 대선이 실시된다.박빙이였고 부정투표니 흑인 유권자 투표를 방해 했다느니 아주 시끄러웠다.결국 특별선거위원회가 만들어진다. 상원 5명, 하원 5명, 대법관 5명으로 구성되었고 성향은 민주당 7명 , 공화당 7명 ,마지막 1명은 양당 합의로 대법관 1명 중도 성향이였다.여기서 두 당은 야합을 한다. 대통령은 공화당 리더퍼드 헤이스가 되고 대신에 남부 성향의 민주당에게 선물을 준다.남부 주 재건체제를 종식하고 연방군도 철수하기로 한다.남부 주의 자치권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1877년 타협으로 남부는 남북전쟁 이전으로 회귀한다. 흑인 차별법을 제정하게 된다. 이 일련의 흑인 차별법이 짐크로우 법이다. 연방의 수정헌법 13,14,15주를 어기지 않으면서 교묘한 수법으로 흑인을 차별 대우하게 한다. 논리는 분리되어 있지만 평등하다는 것이다.흑인의 투표권도 제한한다. 문맹률이 높은 흑인을 겨냥해 일정 수준 문자를 해독해야 하고 재산도 일정 수준 되야 투표할 수 있게 된다.이런 차별은 거의 100년 가까이 이루어진다. 지금도 미국의 일부 주는 투표권을 제한하는 조치가 있다고 한다.
흑인 차별은 계속되다가 입지적 인물이 출현한다.케네디 대통령은 인권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이였다.케네디는 남다른 통찰력으로 인도(india)를 공화당의 반대를 물리치고 지원하는 법을 만든다. 인도와 협력해야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당시 미소 냉전 구도속에서 인도는 비동맹국 리더국이였다.오늘날 세계 구도를 보면 이 식견은 탁월했다.1964년 민권법을 만들게 된다. 게다가 마틴 루터 킹이라는 흑인 목사가 나타나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캠페인을 벌이게 된다. 결국 존슨 대통령이 민권법에 서명함으로써 100년이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야 흑인차별법은 공식적으로 철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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