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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미국 남북 전쟁

뉴욕 징집 거부와 기관총

by senamu 2024.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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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전쟁이 길어지고 사상자 수가 늘어나자 북군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지원자가 점차 줄어든 것이다. 1863년 3월 북부는 징병법을 실시하게 된다. 징집 대상자는 20세부터 45세 남성이였다.그 전까지는 같은 연대면 같은 고향 출신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를 바꾸어 인적 구성에 맞게 연대를 창설하게 된다. 그런데 이 징병법의 예외가 있었다.과부나 연로한 부모의 외아들일 경우 면제, 병역 자격이 있는 아들이 두 명 이상이면 선택이 가능했다.그 외 여러가지 면제사항히 있었다. 특히 징집 대상자가 징집을 대신할 대체자를 데려오면 면제였다. 그런데 법에 대체자에게 300달러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로 돈을 지불하면 면제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300달러는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1억 정도이다. 그러니까 1억을 내면 군에 안가도 되는 것이였다.이러면 군대 가는 사람은 돈 없고 백 없는 먹고 살기도 힘든 남성이 징집될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징집은 각 주에서 지원자를 일단 받고 할당량을 못채우면 가기로 되어 있었다.

 뉴욕이 특히 문제가 되었다. 뉴욕은 상대적으로 다른 주에 비해 빈부 격차가 컸고 징병 면제 대상이 많고 지원자는 적은 상태였다. 뉴욕에는 또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가난하고 백이 없었다. 이 들을 중심으로  징집 거부 운동을 벌이게 된다. 이 모습은 영화 [갱스 오브 뉴욕]에 잘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화가 난 군중들은 정부 건물도 공격한다. 주체할 수 없는 화는 흑인도 공격하게 만든다. 흑인이 일자리를 뺏는다고 생각해서 분풀이가 이들로도 번지게 된 것이다. 링컨은 이들을 강경진압하기로 한다 군대를 동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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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는 폭주한다. 지역의 유명한 신문사를 향해 공격을 하기로 한다. 이미 시위대는 무장도 한 상태였다. 특히 징집법을 찬양한 신문사로 폭도들이 몰리고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신문사 옥상에 무시무시한 무기를 배치한다 바로 개틀링 기관총이였다. 이 기관총은 리처드 조던 개틀링이라는 사람이 발명한다.그는 남북전쟁에서 수많은 사상자들을 치료하며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전쟁의 사상자를 줄일 수 있을까 고민에 빠진다. 그러다가 생각한 것이 병사 1명이 1000여명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도 줄어들고 전쟁도 빨리 끝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1862년 11월 개틀링건이 개발되고 특허까지 받는다. 이 후 성능 개량을 거쳐 분당 150에서 200발을 발사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지게 된다. 물론 이 총에는 약점이 있었다.기관총을 쏠려면 손잡이를 돌려야 했는데 빨리 돌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적당한 속도로 리듬을 타며 돌려야 했다. 너무 빨리 돌리면 총에 열이 너무 많이 나 고장 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값도 비쌌다. 이것이 정말 다행인지 남북전쟁에서 그리 활약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를 알아본 사람이 있었으니 벤자민 버틀러였다. 그는 사비를 들여 12정을 산다.결국 1866년 미 육군이 개틀링 건을 제식 무기로 채택하게 된다. 이 기관총의 등장으로 또 한 번 전쟁양상은 바뀌게 된다.다시 시위로 들어가서 뉴욕에서는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거의 4일동안 이런 사태가 지속된다.링컨의 강경 진압으로 120여명이 사망한다. 그러나 이는 공식적인 집계이고 추측컨데 이 유혈사태로 사망한 사람은 120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링컨은 통합을 중시하고 많은 미국인의 사랑을 받는 대통령이지만 그 이면에 이런 과감함과 독재자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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