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전다방/미국 남북 전쟁

채터누가 전투와 맥아더의 등장

by senamu 2024. 4. 28.
728x90
반응형

남북전쟁 주요 전장은 3개로 나눌 수 있다. 북부 수도(워싱턴 D.C.) 과 남부 수도 (리치먼드)를 중심으로 한 동부 전역과 미시시피 전역의 서쪽 그리고 채터누가를 중심으로 한 중부 지역이다. 채터누가는 미시시피의 주요도시인 빅스버그와 남부 수도 리치먼드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 매우 중요한 곳이였다.이 지역은 로즈 크랜스가 지휘하는 북군 컴벌랜드 7만과 브래그가 지휘하는 남군 테네시군 3만명이 대치하고 있었다. 쪽수로 북군이 훨씬 우위였으나 대치만 하는 상황이 계속된다.그러다가 빅스버그포위전이 잠잠해질 무렵 링컨은 컴벌랜드군에게 진군 명령을 내린다. 1863년 7월 컴벌랜드군은 공격을 감행한다. 정면으로 밀어도 될 것 같지만 안전하게 후방 여러 곳의 병참선을 박살내며 남군을 몰아내게 된다.

남부는 채터누가 까지 밀리면 보급로가 동서로 쪼개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곳을 사수하기로 하고 게티즈버그에서도 활약한 롱스트리트를 급파하기로 한다. 로버트 리가 반대했으나 남부 대통령 데이비스는 이를 묵살한다. 리에게는 명분이 없었다.게티즈버그에서 참패해서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롱스트리는 기차로 이동하고 테네시군과 롱스트리군은 합류한다. 여기 지명을 보면 채터누가 또 들어가는 길목은 치커모가 크리크라고 하는데 이 곳 지명은 아메리카 원주민 체로키 부족의 이름과 그들이 부르는 산지명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지역은 애팔래치아 산맥 끝자락이다. 1863년 9월 19일 남군의 공세가 시작된다. 롱스트리트가 북부 우측을 밀고 들어가 북부 전열이 무너지게 된다. 북군은 채터누가를 남군에게 넘겨준다. 이 전투에서 북군은 16000여명 남군은 18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하지만 전력적으로 남군이 북군을 밀어내고 도리어 포위까지 하는 형국에 이른다.

728x90

 

북군의 위기 속에 이를 타파하는 장군이 튀어나온다. 바로 조지 토머스 였다. 남군에게 포위당해 섬멸할 위기에 놓인 북군을 끝까지 방어한다. 여기에서는 그는 치커모가의 바위라는 별명을 얻는다. 하지만 북군은 아직 위기를 벗어난 것은 아니였다. 이 때 그랜트가 등판한다.서부지역 총사령관이 된 그랜트는 빅스버그에서 전투로 부상이였지만 상황의 급박함으로 이곳으로 간다.더불어 포토맥군도 차출한다.포토맥군 전 사령관 후커가 증원군을 이끌고 기차를 타고 와서 그랜트에 합류한다.가장 먼저 그랜트는 로즈 크랜스를 해임한다. 그리고 전투에서 활약한 토머스를 컴벌랜드 군 사령관으로 임명한다. 보급로가 막히자 남군 대포 사정거리 밖에서 보급선을 구축한다. 이 라인이 건빵라인(크래커 라인)이라 불린다.

어느 정도 보급이 됬다고 생각한 그랜트는 총공세를 계획한다.남군 진영 좌우를 잇달아 공격한다. 하지만 남군의 저항은 강했고 롱스트리는 방어를 잘하고 있었다. 그랜트는 남군의 좌우가 강함을 깨닫고 정찰을 보내 중앙 방어 라인을 정찰한다.예상대로 중앙이 약함을 확인하자 중앙 공격을 시도하게 된다.1863년 11월 24일 중앙을 포함 전면 공격을 감행한다.재아무리 롱스트리트라 해도 모든 전장을 카바할 수는 없었다.중앙 공격을 미셔너리 리지 돌격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영웅이 나온다. 이 전투에 선두로 용감하게 적진을 돌파한 18세의 소위가 있었다.이 사람은 이 공을 인정받아 미역사상 최연소 명예 대령이 된다. 명예 대령이란 미국 의회가 주는 최고 혼장이다.남군 진영을 돌파한 후 가장 먼저 깃발을 고지에 꽂는다. 이 사람은 1880년에 득남을 하게 되고 이 아들이 바로 맥아더이다. 앞으로 펼쳐질 1,2차 세계 대전과 6.25전쟁에서 우리나라를 구하는 영웅이 된다.   

링컨은 크게 기뻐한다.승리는 북군이 하고 있어도 뭔가 시원한 맛이 없었는데 그랜트가 답답한 속을 뚫어준다. 링컨은 재선도 얼마 남지 않아 시원한 승리를 학수고대하던 중이였다. 그랜트를 보니 정치적 야심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랜트는 나중에 대선에 출마한다. 당시 미군 계급은 소장 즉 투스타까지 밖에 없었다. 독립전쟁 영웅 조지 워싱턴과 미국-멕시코 전쟁 영웅 윈필드 스콧이 명예 중장이였다. 이런 반열에 현역으로 그랜트는 중장계급을 부여 받는다. 링컨은 기존에 있던 할렉 총사령관을 행정업무를 보게끔 하고 그랜트에게는 실질적으로 군을 통솔하는 역할을 준다. 1864년 3월 그랜트는 총사령관에 취임하게 된다. 남북 전쟁 양대 산맥 북부 그랜트와 남부 로버트 리의   빅매치가 점차 다가오게 된다.

728x90

'역전다방 > 미국 남북 전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군의 총공세  (0) 2024.04.29
뉴욕 징집 거부와 기관총  (1) 2024.04.28
최초의 잠수정 실전  (0) 2024.04.25
와그너 요새 전투  (0) 2024.04.25
54 보병연대와 찰스턴 공략  (1) 2024.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