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턴항에서는 해군끼리 계속 소규모 전투가 이어진다. 남부는 봉쇄를 풀려고 CSS 버지니아 후속의 작은 버전 CSS 애틀란타를 투입한다. 그런데 변수가 생긴다. 북부가 후속 모니터함에 11인치 포대신 화력이 강한 15인치 포를 장착한다. 이 포로 남군 철갑함 철갑에 구멍이 뚫리게 된다. 포격으로 여기저기 거덜단 CSS 애틀란타는 북군에 나포되고 남군 군함은 북군 군함 USS 애틀란타가 된다.남군은 이대로는 안된다며 대안으로 어뢰정 카드를 꺼낸다. 어뢰정 앞에 장대를 달고 장대 끝에 폭탄을 다는 것이다. 적함을 향해 몰래 장대 길이만큼 다가가 폭탄을 꽂고 터트리는 것이다. 사실상 어뢰의 시초이다. 요즈음 같이 어뢰를 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어뢰를 장대에 꽂아 쓴 것이라 보면 된다.
남부 해군은 어뢰정 CSS 데이비드를 만들고 실전에 투입한다. 어둠 속에서 몰래 USS 뉴아이언사이즈를 공격한다. 장대를 꼿는데 성공한다. USS 뉴아이언사이즈 군인들이 미리 발견을 했으나 이미 포격할 수 없게 가까운 거리였고 북군은 급한대로 소총 사격을 가한다. 군함이 쪼개지면 좋았겠지만 군함에 구멍만 뚫린다. 당시 어뢰정이 폭탄을 터트리는 방법은 두가지였다. 기뢰 끝에 충격신관을 장착 꽂는 즉시 눌리면서 터트리는 방법 그리고 전기로 뇌관을 기폭하는 방법이 있었다. 둘 다 기술완성도가 높지 않아 결과가 폭파가 될지 말지는 복불복이였다.
참고로 500톤 이하를 잠수정이라하고 500톤 초과하는 것을 잠수함이라고 한다. 사실 남북전쟁 이전에도 잠수정 아이디어가 있었다. 영국에서 아이디어가 나오고 러시아 표트르 대제가 첫 군용 잠수정을 건조한다. 프로토타입은 만들었으나 상용화되지는 못한다. 미국 독립 전쟁당시 1인용 잠수정이 제작된다. 이 잠수정은 문제가 컸다. 1인이 타다보니 모든 것을 혼자해야 했다. 적함에 접근하기 위해 운전도 해야하고 동력은 사람의 두다리로 했다. 적함에 접근하기전에 탈진부터 하기 일쑤였다. 영국군함을 공격하려다 탈진하여 실패한다. 후에 증기선이 발명되고 프랑스에서 최초 잠수정 노틸러스를 개발한다. 이렇듯 유럽에서는 잠수정을 개발하려고 안간 힘을 썼다. 미래 해전이 잠수함이 좌우할 것이라는 책도 쓰여 진다. 그러나 실전에 투입되어 전투다운 전투는 치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북군은 USS 앨리게이터라는 잠수정을 만든다. 선체가 길어져 여러명이 탈 수 있었다. 그러나 수동으로 조작해야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잠수정이 되려면 일단 가라앉기 위해 탱크에 물을 채우고 뜨기 위해서는 물을 퍼내고 공기를 넣어야 했다. 이런 것은 당시 쉽지 않았다. 방수 기술이 일단 어려웠고 물을 채우는 것은 뭐 그렇다 쳐도 다시 빼내려면 전력을 다해야 했다. 살려면 죽을 힘을 써야 했다. USS 앨리게이터를 실전에 투입하기 위해 군함에 밧줄을 묶어 USS 앨리게이터를 끌고 간다. 그러나 운반 도중 택배 사고가 난다. 예인줄이 끊어지면서 USS 앨리게이터가 유실된 것이다. 이 작전은 원래 비밀이였으나 입이 간지러운 북부 신문은 이 사고를 대서특필한다. 남군도 이 소식을 신문을 통해 접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CSS 헌리를 만든다. 개발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첫 시험에 방수가 안되어 5명이 사망하더니 두번째 시험에서는 설계자 헌리가 사망한다. 간신히 CSS 헌리를 인양하고 찰스턴 방어 사령관 보우리가드는 완전 잠수하지 말고 반잠수만 해서 운영하라는 명을 내린다.
1864년 2월 17일 북부 봉쇄를 풀려고 CSS 헌리가 출격한다. 야간에 북부 해군 USS 후사토닉을 공격한다. 9m 장대를 꽂은 후 어뢰까지 성공으로 기폭된다. 이 공격은 제대로 먹힌다. USS 후사토닉은 그대로 격침당한다.이것이 세계 최초로 잠수정이 군함을 격파한 첫 사건이다.CSS 헌리는 어뢰 꽂은 후 후진을 하려 하나 폭발이 너무 세서 그 충격으로 자기도 선체에 손상을 입는다. 그대로 가라앉게 된다.골과 자살골을 동시에 넣고 장렬히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런 역사적인 잠수정은 1990년대에 발견되고 2000년대에 미해군이 인양한다.잠수정 안에 공기도 안통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 힘으로 적함에 정확히 접근하고 어뢰를 꽂고 적함을 격침하다니 생각을 해보면 쉽지 않은 일이였다. 이런 일을 보급도 열악한 남군이 해내다니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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