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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미국 남북 전쟁

밥은 어떻게 먹지

by senamu 2024.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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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야전에 밥차가 보급되어 편하게 병사들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남북전쟁에서는 병사들이 식기를 들고 다니면서 직접 요리를 해먹어야 했다. 남부 남자들은 요리를 터부시해서 흑인 노예가 해주는 음식만 받아 먹는다. 남자들끼리 있다보니 요리하기가 참 어려웠다. 단백질이 부족해 다람쥐도 잡아 먹는다. 이 시기 건빵도 보급된다. 썩을 까봐 수분을 싹 뺀 하드택이 보급된다. 지금 건빵은 크기가 손가락 한마디 정도지만  그 당시에는 손바닥 만했다. 수분이 없어 돌처럼 딱딱해 치아분쇄기라는 별명이 붙는다. 병사들은 인근 농가에서 포도주를 구해와 하드택과 포도주 설탕을 넣어 요리를 해 먹기 시작한다.

남북전쟁에 PX 도 있었다. 그 이전 부터 셔틀러라는 종군상인이 운영되고 있었다. 이 셔틀러가 남북전쟁 시기에도 있었는데 전시라서 값이 매우 비쌌다. 거의 10배 뻥튀기는 기본이였다. 북군은 지휘관 승인 아래 관리위원회 추천에 따라 전쟁장관이 셔틀러를 직접 임명했다.안파는 물건이 없었다. 음식,의복,문구도 팔고 심지어 과일과 굴도 팔았다고 한다. 물론 가격은 매우 비쌌다. 사람 장사도 한다. 동네 처녀들 불러 모으고 파티장을 연다. 하필이면 군인 월급날에 파티를 열어 군인들을 빈털털이로 만들었다. 점점 폭리를 취하는 상인도 늘어나고 물건도 자꾸 질이 떨어지는 쪽으로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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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군 수뇌부도 이런 비리를 잘 알아서 직접 나서서 통제하기로 한다 병참감실을 만들고 셔틀러를 관리 감독한다. 잘 운영되었으면 좋으련만 이 병참감실도 비리에 발 벗고 나선다. 병참감실에 있으면 집 두채는 기본이였다. 셔틀러와 결탁해 폭리를 취하는 것을 눈감아 주고 뇌물을 받는 것이였다..

미국은 보스턴 차 사건 이후 홍차대신 커피를 애용한다. 미군에게도 커피가 군용품으로 보급된다.북군은 생두를 그냥 지급하여 알아서 끓여먹으라고 한다. 처음에는 개머리판으로 부순 후 주전자에 끓여 먹다가 개머리 판에 다는 커피 그라인더가 생기게 된다. 남군은 뉴올리언스가 함락된 후 원두 수입이 막혔다. 커피는 안 마실 수 없어서 치커리로 커피를 만든다. 이 커피는 카페인이 없다. 무척 쓰다고 한다. 커피와 함께 달달히 먹으라고 연유도 지급된다.

남부는 시간이 갈 수록 군의 보급 사항이 열악해진다. 남부는 징발법을 발의해 민간인의 농산물과 가축을 강제 징발한다. 이런 상황이 대도시로 확대되고 남부주민들은 불만이 쌓이게 된다. 한 지역 신문은 이런 상황을 이제 남부는 쥐를 잡아먹어야 할 정도라며 개탄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상인들이 생선이나 밀가루를 창고에 쟁여 놓고 비싼 가격에 팔기 시작한다. 1863년 4월 2일 여성들이 못 살겠다며 폭동을 일으킨다. 제퍼슨 데이비스 남부 대통령은 이 모두가 북부 양키들 탓이라며 비난의 화살을 북부에 돌린다. 남부는 민심을 달래 줄 대비책도 찾아야 했고 군에서도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위기에 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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