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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미국 남북 전쟁

맥클레런 해임과 번사이드 실책

by senamu 2024.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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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의 링컨은 앤티텀 전투가  승리로 끝나자 선언문을 발표한다. 강한 어조로 1863년 1월 1일 까지 탈퇴한 남부주들이 연방에 복귀하라고 한 것이다. 기한 내에 복구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문구도 포함시킨다. 링컨이 군 통수권자로 반란군의 항복을 권유하고 경계주에 대해 반란군에 붙지 말 것을 경고한다. 대외적으로는 유럽의 남부지지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문구도 포함한다. 이 선언으로 흑인들도 자유인 신분으로 군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한편 로버트 리는 아직 도망중이였고 링컨은 확실한 쐐기를 박기 위해 맥클레런에게 편지를 써서 공격을 군유한다.맥클레런은 움직이지 않고 자신은 앤티텀 전투 영웅이라며 아내에게 편지를 써서 링컨을 비난한다 맥클레런이 공격에 나서지 않는 것에 언론도 맥클레런을 비난한다. 이러자 할 수 없이 맥클레런은 군을 움직인다. 그러나 느릿느릿 움직이며 포토맥강을 건너는데 9일을 허비한다.

싸울 의지가 없음을 확인한 링컨은 맥클레런을 1862년 11월 5일 해임한다. 후임 사령관으로 번사이드가 임명된다. 맥클레런은 부대를 떠나는데 많은 장병들이 아쉬워했다고 한다. 부하들에 신임이 두터운 장군이였다. 맥클레런은 이제 내가 더 이상 너희들 안전을 제공할 수 없다며 후임 번사이드를 잘 따르라 하고 우아하게 지휘권을 넘겨주고 떠난다. 나중에 맥클레런은 대선도 출마해 링컨과 계속 부딪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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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사이드는 무언가 다름을 보여주어야 했다. 남군의 스톤월 잭슨처럼 기동전으로 남부 수도 리치먼드를 치기로 한다. 링컨에게 계획 승인을 요청하고 링컨은 11만명으로 병력을 증원해주면서 기뻐한다. 압도적 전력으로 쭉쭉 남으로 밀고 들어간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진군을 멈추게 된다. 리치먼드로 가려면 프레데릭스버그에 강을 건너야 하는데 도하를 못한 것이다. 비가 많이 오는 시기라 강물이 불어나 있었고 부교장비도 오지 않아 강 북쪽에서 대기하게 된다. 이미 기습 공격은 물건너 가데 된다.그 사이 남군은 프레데릭스버그 방어 준비를 차근차근하기 시작한다.로버트 리는 스톤월 잭슨도 불러 방어를 더욱 강화한다.1862년 12월 12일 북군 주력 부대가 도하를 시작한다. 로버트 리는 적이 다리를 통과할 때 공격하지 않고 다 건너오기를 숨죽여 기다린다. 집집마다 돌담이 있었는데 이 돌담에 병력을 숨기고 북군이 도하를 다 마치자 모든 화력을 북군에게 집중한다. 하루동안 북군은 12000여명 남군은 5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북군은 뚫기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을 하고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된다. 번사이드는 첫 전투에서 패하자 조바심을 내기 시작한다.

  번사이드 밑에 장교들이 작전 내용을 들은 후 경악한다. 부하 장교가 무모한 작전이라며 워싱턴 D.C. 로 쪼르르 달려가 일러 받친 것이다. 이 때가 겨울이여서 매우 추운 시기였다. 그냥 진군 자체도 무리였다. 번사이드는 공격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 사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할 수 없이 공격 허가가 떨어진다. 1863년 1월 20일 북군은 진격한다. 대재앙이 시작된다. 출발하자마자 겨울비와 눈이 내리고 비바람도 친다. 기동로는 진흙탕이 되고 병사들은 탈진한다. 이를 두고 볼수 없었던 링컨은 번사이드를 무리한 작전 진행 책임을 물어 해임한다. 번사이드 이 사람 기억해야 한다. 후에 전미총기협회 1대 회장이 되는 인물이다. 후임으로 조지프 후커를 등판시킨다. 후커는 앤티텀 전투때 과감하게 샤프 슈터(저격병)의 위험을 무릎 쓰고 백마를 타고 앞장서서 전투를 지휘한 대범한 장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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