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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태평양 전쟁

미국의 대규모 반격 준비

by senamu 2024.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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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남방자원지대와 일본사이의 해상 교통로를 끊고 일본 본토를 타격할 비행기지를 확보할 계획을 세운다.
B-29폭격기 계획도 승인되고 일본 본토 공격도 논의된다. 세계최초로 핵폭탄을 싣고 떨어뜨린 폭격기이다.
1차 퀘벡회담으로 영국의 첨단기술을 전수받은 미국은 1943년 전시 대량생산체제를 가동한다.

저 사진 속의 어마어마한 비행기를 봐라.

 

 

2차대전 초반 독일 유보트가 맘대로 활개칠 수 있었던 것은 은밀한데다가 대서양이 워낙 넓어서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미국은 많은 항공기를 만들어내고 항속거리도 길어져 대서양을 커버할 수 있게 된다.
많은 초계기로 잠수함을 찾고 항공기에 적발된 잠수함은 폭격을 피할 수 없었고 그대로 가라 앉을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잠수함은 디젤이라서 충전을 위해 반드시 수면위로 올라와야 했다.

독일은 유보트가 계속 적발되자 굴뚝만 빼꼼 내놓고 충전을 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런 방식도 레이다 앞에서는 무력했다. 미국의 대량생산체제는 함선,항공기 할 것 없이 레이다가 부착되었고 유보트는 내리막길을 걷는다.
초반에 엇비슷했던 미국과 일본의 전력차는 양적이나 질적으로 거의 압사 수준으로 미국이 일본을 뛰어넘는다.

 

 

1942년 12월말 CV-9 에식스가 첫 취역한다. 만족스런 성능 시현에 곧바로 양산에 들어가고 렉싱턴,요크타운,인트레피드,호넷,와스프,프랭클린 총 6대가 1943년에 만들어 진다.
기준 배수량이 27500톤이고 만재 배수량(무기및 인원 탄약등 모두 실었을 때) 36000톤 이상인 정식항모이다. 항공기는 무려 126대나 실을 수 있다.
2차대전 동안 총 17척이 취역한다. 전후에 여러 용도로 사용하다 1991년 에식스급 CV-16 렉싱턴이 퇴역한다. 

에식스급 항모는 2차대전 동안 단 1대도 격침당하지 않는다.


영국은 항모를 만들 때 비행갑판을 두껍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독일 급강하 폭격기 폭탄이 1톤짜리로 엄청 났기 때문이다.
미국은 항모를 만들 때 비행갑판은 나무 갑판으로 만들고 갑판 밑에 엔진이나 주요 시설의 장갑을 두껍게 만들었다.
일본 함재기 폭탄은 500kg 정도로 독일보다 위력이 약했고 미국은 비행갑판이 파괴되도 이를 잘 컨트롤 할 수 있었고 갑판이 망가져도 엔진은 살아있으므로 돌아가서 그냥 수리하면 그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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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전력 강화와 일본의 보고서

 

미국은 막강한 전함인 아이오와급을 만든다 1943년 아이오와,뉴저지가 1944년에는 미주리,위스콘신이 취역한다.
아이오와급은 16인치 50구경장 함포를 장착했다. 850~1200kg까지 각종 포탄을 40km 까지 포격했다.
콰달카날에서 미국은 해병대 중요성을 깨닫고 1943년 11월 해병대를 증원했고 5사단도 편성을 시작해 군단급으로 만든다.
일본에 마쓰마에 시케요시는 해군성의 지시로 일미간의 생산량을 조사해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독일 미국 공장 견학도 가보았고 공학박사인 그는 전시생산론이라는 보고서를 만든다.
결론은 미국의 생산량을 일본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고 즉각 전쟁을 멈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보고를 받은 도조 히데키는 그 보고서를 인정할 수 없었다.
일본은 개전당시 미국 생산력을 1926년 기준으로 판단했다. 시케요시 보고서는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을 부정하는 것이였다. 히데키는 분노하고 그를 이등병으로 태평양전선으로 보낸다. 이 때 시케요시 나이가 42세였다. 아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미국에서 2차대전으로 많은 남자들이 징집되자 군수산업에 여성들이 대거 투입된다.
리벳공 로지는 1942년 발표되어 미전역에서 히트친다. 내용은 열심히 일하자 였고 여성 노동을 독려하는 노래이다.
1차대전후 제도적으로 여성 참전권이 올라갔고 2차대전을 겪고 많은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성 권리가 올라간다. 허나 전후에 남성들이 군에서 민간인으로 돌아오자 사회는 보수로 다시 회귀한다.
오히려 독일에서는 여성 인권이 급속도로 올라간다. 많은 독일 남성이 사망했고 전후 재건을 여성들이 많이 했기 때문이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 포로 약 34000여명이 캐나다로 갔다. 캐나다군은 약 45000여명이 전사한다. 

캐나다가 독일군을 보니 어차피 바다가 있어 도망도 못가고 게다가 똑똑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캐나다는 미팅도 주선해주고 아예 이들을 풀어준다. 독일군 포로 2만여명이 캐나다에 정착한다.

 

 

미국은 자유주의 나라로 전시체계 동원이 쉽지 않을 것같았지만 오히려 쉬웠다.
미국은 대공황때 국민들이 힘을 합쳐 뉴딜로 극복한 전례가 있었다. 뉴딜로 효율적인 동원 노하우를 체득한 것이다.
뉴딜하면 공공사업으로 일자리 창출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은 사회계급간의 새로운 거래이다. 노동자는 파업하지 말게하고 기업가는 고용해지 못하게 하는 약속을 국가 통제하에 한 것이다.
1930년대 뉴딜정책으로 자유시장경제에 국가가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생산위원회가 창설되고 모든 경제체제를 하나로 일원화 시킨다.
2차대전 초기만 해도 미국역시 육군과 해군이 대립했다. 조달체계도 서로 달라서 엉망이였다. 이를 전쟁생산위원회가 모든 전권을 위임받아 조달체계를 일원화한다.
가장 먼저 고무를 통제한다. 천연고무를 군용으로만 조달하고 민간 타이어는 제한한다. 과학자들에게는 천연고무를 대체할 것을 만들라 주문하고 결국 1942년 3월 석유를 주원료로 하는 합성고무를 만든다.
미국에는 간 큰 사업가도 많아 정부의 주문도 무서운 속도로 실행했다. 2차대전당시 포드사가 생산한 물량이 이탈리아 국가 전체 생산량을 능가할 정도였다.

 

미국의 주요 지휘관

 

 

이쯤에서 한번 미 주요 주요 지휘관을 알아보자.

 

윌리엄 리히 : 육군과 해군의 이해관계를 잘조율했다. 루즈벨트의 군사자문역할을 했으며 루즈벨트의 정치적 구상을 각 지휘관에게 맞게 잘 전달하였다.


조지 마셜 : 태평양에서 유럽까지 모든 전선을 신경썼고 마법사란 별명으로 불린다. 기라성 같은 장군들(드와이트 아이젠하워,조지 패튼,오마 브래들리)을 잘 관리했다.


어니스트 킹 : 성격이 괴팍하였으나 똑똑했다.


더글러스 맥아더 : 천상천하 유아독족으로 고집이 세다.


헨리 아놀드 : 오늘날 공군으로 당시에는 공군이 육군 소속이였다. 겉으로는 해피스타일이다.


윌리엄 홀시 : 별명이 황소이다. 막 밀어붙인다.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 명석하고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다.


니미츠는 3함대와 5함대를 나중에 합치고 둘을 교대로 사령관에 앉힌다. 홀시는 부하들 사기진작,강한 리더쉽,언론 홍보용 임무로 스프루언스는 반드시 성공해야하는 작전에 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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