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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미국 남북 전쟁

섬터 요새 포격전

by senamu 2024.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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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의 첫 전투 장소가 섬터 요새가된다.

링컨이 보낸 보급선이 보이자 1861년 4월 12일 오전 4시30분 남군의 포격이 시작된다.

이 포격을 찰스턴 주민들이 모여서 구경한다.

당시 유럽같은 데서는 전장을 보는 것이 귀족들의 특권이였다.

오전 7시가 된자 연방군도 대응 사격을 시작한다.

뻥뻥 소리 나고 화염나고 주민들은 재미있는 구경을 하게 된다.

일방적 남군의 포격이 계속되고 이 때 물트리 요새에 날아온 핫샷이 나무 막사에 떨어진다.

섬터 요새 외벽은 벽돌로 되있어서 화재에 강하지만 안 쪽은 나무 건물이 많았다.

이 핫샷으로 불이 났고 가뜩이나 포격하느라 바쁜 북군은 화재진압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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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터 요새 포탄이 고갈나기 시작한다.

로버트 앤더슨은 결국 항복한다.

34시간 동안 포탄 3000 발을 주고 받았는데 사상자는 나오지 않는다.

보우리가드의 목표는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화려한 포격쇼로 전의를 불태우기 위함이였다.

남북전쟁이 이 전과 다른점이 있다면 사진이 등장해서 당시 많은 것들이 흑백사진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로버트 앤더슨은 연방주의 신념이 확고한 사람이였다.

항복의식을 치뤄달라고 보우리가드에게 요청한다.

성조기에 경례의식을 한다. 예포도 발사한다.

귀족 기사들이 싸운 프랑스 혁명 이전 전쟁에서 귀족들간에 존재한 항복의식이 있다.

무기가 없음을 의미하는 거수 경례가 있다.

그리고 경례할 때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유는 나의 명예를 존중해 달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항복의식에서 예포가 시작되었다.

함대간 교전이 끝난 후 포탄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남은 포탄을 허공에 날리는 것이다.

이것이 발전하여 오늘날에 국빈방분이나 주요행사에서 예포를 발사한다.

남부도 사실 북부와 싸우기를 바란 것은 아니다.

단지 남부의 목표는 남부연합의 국가 인정이다.

항복의식을 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북군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담긴것 이다.

운이 없게도 마지막 예포 발사 때 탄약통이 폭발한다.

병사 1명이 즉사하고 부상자 4명이 발생한다. 이것이 이번 전투 유일한 사상자였다.

섬터 요새 항복 후 뉴욕으로 건너간 로버트 앤더슨은 북부의 영웅이 된다.

이 섬터 요새 전투 후 북부여론이 달라진다.

민주당원들도 애국적 분노에 동참한다.

심지어 링컨의 정치적 라이벌인 스티븐 더글러스도 북부의 단결을 호소한다.

이제 남부와 북부는 본격적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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