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 12월 사우스 캐롤라이나주가 연방을 탈퇴한다.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연방군 시설을 장악하려 하고 민병대는 무력을 쓰기 전에 잔류 연방군을 나가라고 한다.
물트리 연방수비대 사령관 로버트 앤더슨은 물트리 요새에서 섬터 요새로 몰래 이동한다.
남부에 항복하지 않고 저항한다는 것이였다.
1861년 1월 뷰캐넌 정부는 섬터요새에 보급을 할 계획이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민병대 포격을 받고 퇴각한다.
원래 사우스 캐롤라이나 민병대와 찰스턴 연방군은 같은 지역 이웃이였다.
정치적 이유로 분단된다.
링컨 대통령 취임 하루 전 1861년 3월 1일 남부 연합 사령관 P.G.T. 보우리가드가 이 지역으로 온다.
로버트 앤더슨과 보우리가드는 사이가 좋은 사제지간이였는데 찰스턴에서 적이 되어 만난다.
1832년 미국과 아메리카 원주민과 블랙호크 전쟁이 벌어진다.
일리노이주에서 민병대를 모집하고 여기에 링컨이 참전한다.
링컨은 여기서 투표로 중대장이 된다. 입대하자마자 대위가 된 것이다.
이 때 원주민을 이끌던 대장이 블랙호크 추장이였다.
이를 호송한 장교 중 한 명이 훗날 남부연합 대통령이 되는 제퍼슨 데이비스이다.
이 때 일리노이주 지휘관이 로버트 앤더슨이다.
로버트 앤더슨은 북부 대통령과 남부 대통령을 부하로 둔 셈이다.
보우리가드는 프랑스계로 프랑스 토지주의 아들이였다.
윈필드 스콧 휘하에서 공병장교로 이름을 떨친다.
남부연합이 설립하자 남군을 지원하게 되어 찰스턴으로 오게 된다.
보우리가드는 스승인 로버트 앤더슨을 섬터에서 나오라고 회유한다.
로버트 앤더슨의 연방군과 남부연합군은 4개월 동안 대치한다.
남부연합 입장에서는 목에 가시같은 섬터 요새의 연방군을 치워야 했다.
남부연합은 이 찰스턴항은 유럽과의 무역에 매우 중요한 항구였다.
서로 북부와 남부가 눈치를 본다.
먼저 공격하는 쪽이 전쟁의 책임까지 떠안는 아주 곤란한 상황이 된다.
북부에서는 국무장관 윌리엄 수어드, 남북 전쟁 북군 총사령관 윈필드 스콧, 해군장관 기드온 웰스가 섬터 요새 지원을 반대한다. 전략적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링컨은 섬터요새를 포기할 수 없다고 보고 지원을 결정한다.
링컨은 다음과 같은 말로 반대파를 설득한다
이솝우화 [사랑에 빠진 사자]를 예로 든다.
사자는 나무꾼 딸을 사랑해 딸을 달라고 나무꾼에게 말한다. 나무꾼은 이빨이 날카로워서 안된다 한다.
사자는 이빨을 뽑고 다시 딸을 달라고 하고 이번에 나무꾼은 발톱이 날카로워 안된다고 한다.
사자는 발톱도 뺀다. 다시 딸을 달라고 한다. 그러나 이빨도 발톱도 없는 사자는 좃밥이였다.
나무꾼은 사자를 내쫒는다.
그러니까 링컨은 남부 요구를 계속 들어주다 보면 힘없는 사자가 된다는 것이다.
링컨은 전함이 안닌 호위함으로 섬터 요새를 지원하기로 한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지사에게 지원 사실을 알린다.
링컨이 이를 주지사에게 알리고 남부연합 제퍼슨 데이비스에게 안 알린 이유가 있다.
남부연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섬터 요새를 공격하면 연방에 대한 반란이라는 것을 경고한 것이다.
데이비스는 이런 링컨의 정치적 의도를 간파한다.
이러자 제퍼슨 데이비스는 보급선 도착 전에 섬터요새를 굴복시키라고 명령한다.
남부연합은 7개 주로 아직 단합이 덜 된 상태였다.
데이비스는 섬터요새 공격으로 남부를 단합시키려 한 것이다.
또한 데이비스는 아직 애매한 경계주를 우리편으로 만드려는 의도도 있었다.
남부의 힘을 보여주는 기회로 생각한다.
쇼맨십으로 화끈한 공격을 보여주기로 한다.
선제 공격을 북부와의 유리한 협상 카드로 이용하려 한다.
'역전다방 > 미국 남북 전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섬터 요새 포격전 (0) | 2024.03.17 |
---|---|
섬터 요새 대포 (0) | 2024.03.17 |
섬터 요새 건설 (0) | 2024.03.09 |
하퍼스 페리에서 또 존 브라운 (0) | 2024.03.08 |
아메리카 연합국의 탄생 (0) | 2024.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