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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BC

알렉산드로스 대왕 2부

by senamu 2024.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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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놈이 완이 되자 동맹국 반발 하려 한다.
알렉산드로스는 스승에게 배운 수사학을 이용하여 동맹국 직접 가서 설득한다. 
이를 코린토스 동맹이라 한다.
각종 학문에 관심이 많은 알렉산드로스였다.

그러기에 코린토스에서 여러 철학자들을 나타나 그와 알현을 청한다.
그러나 그는 당시 유명한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만나기를 원했다.
알렉산드로스가 그에게 다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디오게네스 햇빛 가리지 말고 왕에게 비키라고 한다.
그의 가르침으로 알렉산드로스는  재물 모두를  부하에게 준다.
부하들이 염려하자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에게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한다.
희망으로 모든 것을 이룰수 있다며 부하들에게 말한다.
부하들 역시 희망에 동참하겠다고 뜻을 전한다.
알렉산드로스는 동쪽으로 페르시아로 눈을 돌린다.
페르시아는 기원전 490년 그리스를 침공하여 마라톤 전투를 벌인다.

그 뒤 10년후에는 두번째 전쟁이 일어난다.

육상에서는 스파르타가 막고 해상에서는 아테네가 살라미스해전으로 승리한다.

그러나 그 후 공동의 적이 사라지자 그리스는 분열된다

페르시아는 뒤에서 내전을 부추긴다.

그리스와 페르시아는 앙숙이였다.

 

 

 

알렉산드로스는 트로이에 아킬레우스 무덤에 참배하고 페르시아를 치러 간다.

알렉산드로스 배타고 페르시아에 도착한 후 내리기 전 첫 창을 던져 전쟁을 선언한다.
페르시아왕 다레이오스 애송이가 왔구먼 하고 30만(부정확) 군대를 보낸다.
당시 알렉산드로스 군은 4만명 정도였다.

폭우가 내림 밤이었다.
악조건인데도 알렉산드로스는 기습 공격을 감행한다.  
자기가 먼저 앞장선다.
알렉산드로스 유모의 남동생 클레이토스가 죽음의 위기에서 알렉산드로스를 구조한다.
피투성이인 상태에서도 계속 미친듯 싸운다.

페르시아군은 기세에 놀란다.
더군다나 소문에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얘기도 떠돌았다.
페르시아군은 대패하고 퇴각한다.

이 전투가 첫 전투인 그라니코스 전투 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레이오스는 직접 60만 대군을 이끌고 온다.

그리스군은 겁을 먹는다. 알렉산드로스가 나서서 연설한다.

"우리는 싸워야할 이유가 있다. 페르시아에게 복수하자. 저들은 노예다. 우리는 자유민이다." 

하여튼 온갖 수사를 동원해 병사들 사기를 돋운다.

알렉산드로스는 명마 부케팔로스를 타고 한 놈만 노린다.

바로 다레이오스였다.

그의 눈빛을 본 다레이오스는 쫄게 되고 도망간다.

이 전투가 이소스 전투이다.

알렉산드로스는 남부로 진군하여 지중해 패권을 장악한다.

다레이오스와 알렉산드로스는 가우가멜라 전투를 벌인다.

또 이소스 전투처럼 알렉산드로스는 다레이오스만 노린다.

상황이 급해지자 다레이오스는 자신의 땅과 딸을 줄테니 그만 전쟁을 멈추자고 한다.

알렉산드로스는 너가 와서 항복하라며 거부한다.

또 다레이오스는 도망가고 거기서 베소스 라는 신하가 다레이오스를 죽인다.

알렉산드로스는 다레이오스 시신을 수습하고 성대한 장례식을 치루어 준다.

민심 수습을 위해 배신자 베소스도 잔인하게 처형한다.

바빌로니아 수도 바빌론에 입성하고 민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가서 그는 깜짝 놀란다.

그리스가 우수한 줄 알았는데 우리보다 낫네?
그리스 문화도 전파하고 알렉산드로스는  지적 호기심으로 그들의 문명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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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가 이렇게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적을 압도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팔랑크스 전법이라고 보병들이 일렬로 서서 창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창이 길다보니 창을 옆으로 돌릴 수 가 없었다.

측면이 약했다.

측면을 헤타이로이 기병대(귀족 중심 구성된 정예 기병대)로 보강한다.

알고도 못 막는 거의 무적이였다.

알렉산드로스는 또 항복한 자에게는 자비를 베풀었다.

끝까지 저항하는 자는 무자비하게 죽였다.

마치 칭기스칸 같다.

알렉산드로스는 스스로를 신격화한다.

자신이 제우스 아들이라며 나에게 도전하는 것은 신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페르시아 정복 후 알렉산드로스는 동쪽 바다를 보자며 진군한다.
부하들은 반대한다.  
인도로 진군하여 인도왕 포루스와 싸운다.
여기서 생전 처음 보는 코끼리부대와  맞딱뜨린다.  
치열한 전투끝에 승리한다.

더 남쪽으로 간다.

이 시기 알렉산드로스를 첫 전투에서 구했던 클레이토스가 죽는다.

클레이토스가 명령에 불복하자 알렉산드로스는 격분한다.

술을 먹고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클레이토스를 죽인다.

그 후 그는 반항하는 신하들은 모두 제거했다.

기나긴 원정에 병사 지치고 병사들이 호소한다.

알렉산드로스는 병사들 성화에 복귀하기로 한다.

알렉산드로스는 도전 의식에 불타서 아무도 가지 않았던 사막으로 길을 잡는다. 
이 길은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다가 포기한 길이다.
우여곡절 끝에 바빌로니아에 온다.

거의 12년이나 지난 시점이였다.
병사들을 달래주기 위해 단체 결혼식 진행한다.
결혼을 통해 페르시아땅을 그리스 사람들로 채우기 위함이다.
그리고 평생 연인이었던 헤파이스티온의 죽는다.
알렉산드로스 연인의 죽음으로 폭음하고 심적으로 피폐해진다.
12일 끙끙 앓다가 33세에 병사한다.
죽기 전 알렉산드로스는 유언을 남긴다.
"가장 강한 자가 나의 후계자이다."

이렇게 되다 보니 서로 강하다며 후계자를 자처한다.
이를 디아도코이 라고 부른다. 이 싸움은 40년 동안이나 계속된다.
  

 

 

알렉산더로스 죽음 후 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클레오 파트라 와 안토니우스의 연합군이 

악티온 해전에서 패할 때까지를 헬레니즘 시대라고 한다.

최초로 동서양 문화교류가 이루어졌으며 동서양은 서로 영향을 주면서 문화적으로 크게 발전한다.

훗날 알렉산드로스는 카이사르,나폴레옹,루이 14세등의 롤모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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