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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태평양 전쟁

미드웨이 해전 1

by senamu 2024.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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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와 워게임

 

미드웨이는 태평양 한 가운데 작은 섬이고 하와이를 공격할 수 있는 전초기지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둘리틀 공습으로 충격먹은 일본은 여기를 치기로 결심한다.

미국은 1938년 12월에 제출된 헵번 보고서에 따라 미드웨이에 해군기지를 건설한다. 1941년 2월 14일에는 루즈벨트 행정명령 8682호에 따라 미드웨이를 해군 방어 해역으로 정한다.

일본은 미드웨이를 공격하기 전 연합함대 지휘관이 모여 워게임을 실시한다. 4일간 진행했고 작전에 따라 일본군과 미군 움직임을 시뮬레이션 했다. 중요 전투 결과는 확률게임 이므로 주사위를 던져서 결정했다.

 

1942년 5월 1일 워게임 시작날 게임을 진행하다 미군 폭격기 공격을 받고 일본 항모 아카기가 격침되는 결과가 나온다.

당시 참모장이였던 우가키 마토에는 이를 무르고 다시 워게임을 진행한다.

어찌되었든 워게임이 끝나자 핵심 참모들이 다시 모여 계획을 점검한다. 워게임 결과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허점이 너무 많았다.

무슨 확신인지 몰라도 당시 연합함대 사령관 이소로쿠는 이 전투는 완벽한 기습으로 우리가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으로 미드웨이 공격을 몰아붙인다. 이 짤은 너무 유명해 만화로도 등장한다.

 

미국과 일본의 전력

 

남방작전의 성공과 진주만 기습,산호해전 등 미군과 싸워본 일본은 자신감이 붙어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한다.

일본이 자랑하는 항공모함 4척을 미드웨이 공격에 투입하기로 한다. 파일럿도 최정예만 모아서 출격한다.

일본의 계산에 의하면 일본 항모는 4척 미군이 투입할 수 있는 항모는 2척이였다.

수적으로 2대1 상황이라서 압도가 예상되었다.

미국의 태평양 사령관은 산호해전 때 박살난 요크타운호를 수리하라 명령한다. 니미츠는 병사들의 애국심을 자극하며 군인들을 달래고 그 결과 72시간 만에 요크타운호를 항해 가능 수준으로 만들고 미드웨이로 간다.

가면서도 수리는 계속한다.

 

이렇게 되자 항모수가 4대3이 되어 일본으로써도 완벽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일본이 고려 안한게 있었으니 미드웨이섬 자체 있는 항공기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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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 해전

 

1942년 6월 4일 새벽 4시 45분 일본 함재기가 출격 미드웨이를 공격한다. 미군 비행장에는 비행기가 보이지 않았다.

미군 뇌격기가 출동해 반격에 나섰으나 일본 제로 전투기의 엄호와 요격으로 실패한다.

미드웨이를 2차 공격하기 위해 갑판위 함재기를 어뢰대신 폭탄으로 변경하고 이 때 다시 미군 급강하 폭격기가 날아와 히류를 공격하나 실패한다.

오전 8시 30분 일본 정찰기가 미 항모 호넷을 확인한다. 이를 보고 받자 연합함대는 공격 목표를 미드웨이에서 항모로 바꾸고 함재기의 무장을 폭탄에서 어뢰로 바꾼다.

오전 9시부터 10시 미군 호넷,엔터프라이즈,요크타운에서 뇌격기 출격하여 일본 항모를 공격하나 실패한다.

그러나 오전 10시 22분 무렵 엔터프라이즈,요크타운에서 급강하 폭격대가 출격했고 뇌격기 상대하느라 바로 위 대공망이 뚫리면서 그대로 급강하 폭격기의 공격을 받는다. 뇌격기는 수평 공격하는 전투기이고 급강하 폭격기는 수직으로 공격하는 폭격기이다. 뇌격기의 희생으로 급강하 폭격기가 그 틈을 노리고 공격한 것이다.

이 공격으로 5분 동안 아카기,카가,소류 항모가 침몰한다.

살아남은 히류가 반격에 나서 요크타운 항모를 침몰시키나 히류 역시 공격을 받고 침몰한다.

일본이 자랑하는 기동함대는 완전 박살이 난다.

 

 

일본은 미드웨이를 치기전에 하와이를 정찰하려 한다.

일본잠수함과 정찰기가 만나 급유를 시도하나 미군 잠수함에 발각되어 정찰에 실패한다.

이 때 미군 레이먼드 스프루언스의 태평양 함대 16기동 부대가 진주만으로 이동 중이였다.

이것이 정찰되었다면 아마 미드웨이 해전은 취소 되었을 수도 있다.

우가키 마토에 참모장은 하와이 지역 무선통신을 감청해 미군이 일본 연합함대에 대비하고 있음을 알아채나 보고하지는 않는다.

나구모 제독이 탄 아카기 항모에는 감청장비가 없었다. 이 문제를 일본도 알고는 있었으나 나구모는 무슨 믿음 인지 미드웨이가 무방비 상태일 거라 확신한다. 소통이 안되는게 지금도 그렇지만 참 문제다.

미국은 이미 미드웨이 공격을 알고 있었고 이에 대비해 항공전력을 엄청 갖다 놓는다.

니미츠가 이를 알고 요크타운도 서둘러 수리한 것이다.

특히 미군의 급강하 폭격기는 일본의 2배였고 이 폭격기가 일본 항모를 부수는 1등 공신이 된다.

 

정보전 1

 

일본은 1939년 6월 1일에 해군 암호인 D암호를 사용한다. 해군 통신의 약 75%가 사용한다.

원리는 평문에 코드표에다가 난수표의 특정 페이지,특정 행에 열의 숫자를 더해서 나온 결과를 송신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태평양 전쟁 전부터 이를 해독하려 무진장 노력하고 전담 인력도 2만명이나 된다.

1942년 5월 미드웨이 해전 전에 암호 전문의 약 40%정도를 해독한다.

 

정보전 2

 

원래는 영국이나 미국이 따로 일본에 정보전을 했으나 대서양 헌장을 계기로 서로의 정보를 교환한다.

1943년 5월 영미 통신보안 협정이 맺어지고 이는 오늘날 [파이브 아이즈]의 모태가 된다.

일본이 주고 받는 무선 통신을 통해 전파가 오는 방향을 계산하고 이를 삼각 측량하면 출처를 어딘지 알 수 있다. 이 정보에 주고 받은 암호 전문등을 조합하여 하나씩 해독하기 시작한다.

이 방법의 맹점은 코드북(부호집,난수표)를 자주 바꾸면 무용지물이다.

일본 해군은 원래 3개월마다 교체하려했으나 배포가 너무 어려워 6개월 넘게 안바꾼다.

미드웨이 공격전 일본은 코드북을 바꾸나 미국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미국은 일본의 다음 타겟이 AF(미드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확신을 가지기 위해 미군은 미드웨이 담수화 시설이 고장났다는 거짓 정보를 흘린다.

일본은 이 거짓 정보를 받아 무선 통신으로 이를 알린다. 여기저기서 AF 가 난무한다.

결국 미국은 정보의 확신을 가지고 전력을 미드웨이에 집중시킨다.

일본은 종전까지 미군의 암호 해독을 알지 못한다. 정보를 등한시 하고 오로지 작전만 중시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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