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영국 땅이었고 매우 요새화되어 있었다.
과거 일본은 1차대전 당시 칭다오에서 해군으로 항구를 정면에서 공격했다가 큰 피해를 본다.
그래서 육군으로 하여금 뒤로 돌아가 항구를 쳐서 무너뜨렸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싱가포르를 육로를 통해 치기로 한다.
말레이 반도 전역에 일본군 15 사단, 8 사단, 근위 사단 및 직할부대를 동원된다.
진주만 공습 1시간전 일본군은 태국령인 싱고라,파티니에 상륙해서 서쪽경로를 통해 싱가포르로 진군한다.
일본군 1진은 말레이 반도에 직접 상륙하여 동쪽경로를 통해 싱가포르로 간다.
영국은 일본 침략할 경우를 위해 투우사 작전을 수립한다.
영국 수상 처칠은 일본의 군사력을 그다지 강하게 보지 않았다.
숙련도 좋은 군인은 전부 유럽전선에 투입되었고 아시아에는 2진급 병령만 있었다.
말레이 반도가 도로는 열악하지만 기반은 좀 있어서 차량이 많았다. 하지만 중요한 전차는 없었다.
침공을 갑자기 당하자 1941년 12월 8일 17시 10분 영국은 황급히 전함 2척으로 상륙을 저지하려 한다.
원래는 항모와 같이 가야하는 데 운이 없게도 항모가 수리중 이였다.
결국 일본 해군 전투기들의 공격을 받고 2척 다 박살난다.
당시로써는 영국이 자랑하는 최신예 함이었는데 속절없이 박살난 것이다.
후에 처칠은 회고록에서 이 사건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당시 일본 기술력은 서양 열강에 비해 좋지 않았다.
해군 전투기인 제로전투기는 2차 대전 내내 활약한다.전함 야마토는 세계 최대 구경 함포(18.1인치)를 갖추었다.
야마토 1척 건조 비용은 일본 정부 예산의 3~4%에 달하는 1.4억엔 정도 였다.
이 두 무기는 당시 일본의 군사 기술의 상징이다.
호리코시 지로라는 일본 사람이 제로 전투기를 만든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이 분다] 애니메이션 실제 모델이 이 사람이다.
동경제대 항공학과 수석 졸업한 인재였고 항공기술 선진국으로 유학도 간다.미쓰비시 내연기제조 회사에서 일한다.
항공기 제조 기술이 없었던 일본은 리버스 엔진니어링을 통해 제로 전투기를 만든다.
후대에 제로전투기가 영국의 글로스터와 외형의 유사성을 따졌더니 15점 만점중 15점이 나온다.
일본 해군의 전투기 요구 사항은 항송거리 3000km,선회능력,20mm 기관포 등의 능력을 갖춘 전투기를 원했다.
해군의 요구는 거의 불가능해서 설계팀은 수퍼 두랄루민이라는 소재에 주목한다.
이 수퍼 두랄루민을 더 경량화해 엑스트라수퍼 두랄루민을 만든다.
제로 전투기 개발당시 항공기 엔진은 1000마력 수준이어서 더 가볍게 만들어야 했다.
결국 조종석 보호용 갑판도 떼고 뼈대에 구멍도 내서 무게를 줄인다.
1943년 후 미군의 전투기는 그루먼 헬캣을 투입하는데 얘는 엔진이 2000마력이다.
엔진이 강하다 보니 무장력도 뛰어나고 장갑도 두꺼웠다.
제로 전투기가 기관포로 그루먼을 공격해 구멍이 뚫려도 그루먼은 장갑이 두꺼워 날아다닐 수 있었다.
반면 제로 전투기는 맞으면 그냥 추락이다.
제로 전투기는 너무 가볍게 하다보니 내구성이 약했다. 이는 항모 탑재에도 문제가 된다. 항모에는 많은 전투기를 넣어야 한다. 날개를 접어서 수납 공간을 최소화 해야 하는데 내구성이 약해 잘못 접었다가 날개가 부러질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 미국 전투기는 내구성이 강하다보니 날개를 힘껏 당겨도 접히는 부분에 무리가 안간다. 전투기를 많이 수납할 수 있다.
내구성 문제는 무장에도 영향을 준다. 기관총 발사 속도가 빠르면 제로 전투기는 비행기가 흔들릴 정도가 된다.
말레이 반도에 영국군 전투기는 F2A 버팔로 였다.
이 전투기는 표에도 나오지만 일본 육군항공대 하야부사와 일본 해군의 제로 전투기에 성능이 못미친다.
영국은 일본을 강하게 보지 않았고 적당한 성능의 전투기로 일본을 방어할 생각을 하게 된다.
조종사의 숙련도는 일본이 월등했다. 결국 말레이 반도에서 제공권을 일본에게 완전히 내준다.
상륙지점으로 부터 싱가포르까지는 1100km 이다.
말레이 반도는 지형상 종으로는 산맥이고 횡으로는 강이 있고 곳곳에 늪지가 있는 땅이다.
그러나 비포장 도로는 잘 되있었다.
일본은 사전에 첩자를 통해 이를 잘 알고 자전거를 이용해 진격하기로 결정한다.
중국,일본에서 출발할 때 민간인 자전거를 많이 징발한다. 현지 말레이 반도에서도 엄청 징발한다.
1936년 일본 수출품 1위가 자전거였고 이는 대부분 동남아로 수출되서 말레이 반도에도 자전거가 많았다.
장거리를 달리다 보니 자전거 펑크도 많이 났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민간인 수리업자도 데리고 갔다.
말레이 반도는 고무가 많이 나오므로 이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국 공병대는 일본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강의 다리를 폭파한다.
일본은 자전거를 들고 강을 건너기도 하고 임시 가교를 만들어 도하를 한다. 2차대전 독일이 전차로 진격전을 펼쳤다면 일본은 자전거로 그에 못지 않은 진격을 펼친다. 허벅지 터졌겠다.
부대 이동에 자전거를 쓰는 것은 일본의 기발한 발상이 아니라 유럽에서 보고 배운 것이였다.
네덜란드는 국토가 좁고 도로망이 발달되어서 자전거 부대를 적극 운영한다.
독일은 자전거 부대를 활용해 수색을 한다.
당시 유럽 여러나라는 자전거를 군에 이용했고 자전거 문화또한 활성화되어 있었다.
말레이 반도에서 일본이 이런 자전거 진격전을 펼칠지 영국은 알지 못했다.
1920년대 일본은 영국,프랑스 전차를 수입해서 운용한다. 중일 전쟁 당시에는 1931년 자체 생산된 89식 전차를 운용한다.여기에 개량을 하여 95식 97식 전차를 만든다.
일본이 만든 전차는 보병을 깨기 위한 전차였다. 말레이 반도 침공시 자전거 부대 뒤로 이들 전차가 따라 다녔다.
영국은 전차가 없어서 경전차도 충분히 위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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