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영국은 인도,버마(미얀마),말라야(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를 가지고 있었다.
아시아에서 네덜란드는 동인도 회사를 통해 인도네시아를 가지고 있었다.
아시아에서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를 가지고 있었다.
호주는 파푸아뉴기니 북부와 나우루라는 곳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은 인도네시아를 탐낸다. 인도네시아에는 석유,석탄,주석,고무 등 자원의 보고이다.
말레이시아(주석,텅스텐 풍부) 와 싱가포르( 바다 교통 요지) 역시 중요 요충지로 일본의 타겟이 된다.
중일 전쟁 당시 연합국은 장제스 지원루트라 불리는 보급로를 만들어 중국을 지원한다.
연합국은 버마 양곤(랭군)에서 중국 윈남성 쿤밍을 잇는 간선도로 [버마-쿤밍루트] 로 물자를 지원한다.
연합국은 베트남 하이퐁에서 중국 윈남성 쿤밍을 잇는 철도 [불인루트] 로 물자를 지원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에게 동남아시아는 중요해진다.
1938년 중일전쟁을 위해 일본은 국가 총동원령을 시행한다.
일본의 정규군은 약 240만명 51개 사단이 있었고 대부분 실전 경험이 있는 군인들 이였다.
이에 반해 미군은 약 150만명의 병력이 있었다. 이 중 제대로 훈련받은 군인은 50만명 정도 되었다.
항공기는 일본이 7500대 미국은 1157대 의 항공기가 있었고 일본에는 숙련된 파일럿이 많았다.
전투함은 일본이 230척 미국이 347척 이였다. 태평양에 출력 가능한 항모는 연합국이 4척 일본이 9척이였다.
문제는 경제력이다. 일본은 GNP가 90억달러 그에 반해 미국은 1100억달러 였다.
자원 역시 미국의 압도적 우위였다. 일본은 지금 당장 군사력이 앞서니 속전속결로 태평양 전쟁을 끝내려 계획한다. 장기전으로 가면 경제력이 월등한 미국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영국과 미국은 일본이 큰 사고를 칠 것을 대비하기 시작한다.
영국의 대비
영국은 동아시아에서 일본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싱가포르에서
주력함대와 합세하여 일본을 공격할 계획을 세운다.
첫째 홍콩으로 진격한다.
둘째 타이완을 전진기지로 하여 일본 교통로를 공격한다.
셋째 오키나와 인근에서 일본 주력 함대를 박살낸다.
이 계획에서 중요한 곳은 싱가포르 였다. 이 곳에 영국의 해군기지가 있었다.
미국의 대비
미국 역시 1920년대 부터 가상전쟁계획을 세운다.
이 때 제1의 적은 놀랍게도 영국이었다.
미국은 태평양에 가장 큰 세력인 영국을 Red로 정한다.
독일은 검정 일본은 오랜지색이였다.
미국은 1924년 오랜지 플랜을 채택한다.
이 계획은 미국의 해군력으로 일본을 해상 봉쇄시켜 말라 죽이는 작전이었다.
동남아를 먹기 위해 일본 내에서는 두가지 진격 루트를 가지고 의견 충돌을 한다.
일본 육군 계획은 인도차이나를 발판으로 싱가포르로 진격하여 영국을 격파하는 것이였다.
일본 해군 계획은 타이완을 발판으로 필리핀을 장악해서 미군을 견제하는 것이였다.
이 논쟁을 1941년 8월 까지 하면서 같은 편 끼리 대립한다.
결국 육군이 이겨 싱가포르 진격이 관철되고 해군은 필리핀 대신 진주만을 공습함으로써 미군을 견제하기로 한다.
태평양 전쟁당시 작적명은 아호작전이었다.
동시 다발적 공격으로 작전코드가 필요했다. 이때 하위 작전들은 간단히 알파벳을 붙인다.
작전코드 M 은 필리핀 작전, 작전코드 E 는 영국령 말라야(말레이 반도, 싱가포르)작전 이였다.
마지막으로 작전코드 H는 네덜란드령 동인도 작전이였다. 한마디로 순식간에 동남아를 쓸어버리는 작전이다.
이런 코드명은 육군과 해군이 동시에 작전을 하는 경우에만 존재했다.
너무 세분화 계획이다 보니 전쟁 중 벌어지는 돌발상황 대처가 어려웠다.
일본은 지금 가지고 있는 전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적을 기만할 수도 있는 이 작전을 수립한다.
이 작전을 후대에는 원심공세라 부르는데 최단시간내 최대효과를 낼 수 있는 전략이다.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일본 연함 함대 사령관으로 맨 왼쪽에 있는 사람이다.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미국과 전쟁을 반대했으나 개전을 피할 수 없자 진주만 공습을 제안한다.
해군은 진주만 공습을 강행할 경우 항공모함을 잃을까봐 우려했다.
제1항공함대 사령관 나구모 주이치는 해군의 우려를 잘알고 있었다. 이소로쿠와는 반대 성향의 인물이다.
극적으로 1941년 8월,9월에 쇼카쿠급 항모 2척이 완성되어 이 둘을 합쳐 4대의 항모로 진주만 공습을 계획한다.
1941년 12월 7일 07시49분 하와이 현지 시간 미국 진주만을 일본이 공격한다.
성공암호 [도라도라도라] 를 타전하라는 명령으로 전쟁이 개시되었다.
공격 목표는 미 태평양함대 항모와 전함 이였다.
2차례에 걸친 일본 항공기의 공격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
2차례 공격 후 아직 유류 저장고와 선박 수리 시설이 남아있다는 보고를 나구모 주이치는 보고 받는다.
문제는 2차 공격 후 급강하 폭격기가 손상되어 폭격 정확도가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였다.
잘못하다가는 숙련된 조종사를 잃을 수 있고 앞으로 전쟁을 위해 전력을 온전히 보존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3차 공격은 취소하고 돌아간다.
미군은 전함 2개 격파 당하고 6대가 못쓰게 되었으나 수리 시설이 남아 있어서 이를 복구 할 수 있었다.
미군은 2300명 정도가 전사하고 민간인도 많이 죽는다.
하지만 유류고와 수리시설이 남아서 미군은 빠르게 태평양 함대를 복귀할 수 있었고 향후 반격의 발판을 마련한다.
진주만 공습이전 일본은 잠수함을 침투시키는데 발각된다.
하와이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미국이 생각했을 때 일본이 공격한다면 필리핀을 예상한다.
진주만에서 보면 적항공기가 북쪽에서 (미 본토방향) 이었으므로 대규모 항공기를 아군으로 오인한다.
진주만 공습 1시간 10분전 일본은 태국령 [싱고라]에 상륙함으로써 기만 전술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