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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독소전쟁

무너진 폴란드

by senamu 2026.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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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동부 폴란드를 그대로 남기면 독일이 애 좀 먹겠는 걸 하면서 파병을 주저하게 된다.히틀러는 내심 지금 잘되고 있으니 소련이 굳이 폴란드에 들어와야 하나라고 생각한다.빨리 진격해 다 먹어버리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스탈린은 주판을 굴리다가 참전하자며 동폴란드로 소련군을 움직이게 된다.폴란드에 막타를 때리러 온 것이다.폴란드군은 서쪽 독일을 피해 왔더니 동쪽의 소련군과 마주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그대로 폴란드는 붕괴된다.

폴란드는 나라가 무너진 후에도 항전을 계속 한다.정치인들은 파리와 런던으로 건너가 임시정부를 세운다.살아남은 폴란드군 9만명 가량은 탈출해 연합군에 가담하게 된다.나중에 영국과 독일이 항공전을 펼치는데 이 때 조종사가 많이 부족하게 된다.이 부족분을 폴란드 조종사가 메우게 된다.폴란드군은 이탈리아와도 싸우고 영국의 공수부대에도 들어가 활약하게 된다.

동부의 폴란드는 카틴숲에서 대학살이 일어나게 된다.스탈린은 폴란드 힘을 빼야 한다며 지식인과 고급 장교를 집단 학살하게 된다.후에 독일이 동폴란드를 먹은 후 이 시체들을 발견하고 학살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하지만 소련은 이를 부인한다.2차대전이 끝나고 소련이 승전국이 되면서 이 사건은 묻히고 만다.냉전이 끝나고 고르바초프가 이를 인정하게 된다.고르바초프는 카틴숲학살에 대해 사죄하게 된다.

서부의 독일과 소련은 브레스트-리톱스크에서 딱 만나게 된다.이곳은 독일과 러시아가 1차대전 종전 협정을 맺은 역사적 장소였다.양측 군부는 만나며 악수하고 부대 사열식을 진행하게 된다.폴란드를 점령한 후 독일의 피해는 심각했다.전차가 2700여대 투입되었는데 그 중 25%가 작살난 것이다.독일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다음 수를 두어야 하는데 수가 보이지 않게 된다.잘못하다가 영국,프랑스의 역습을 받을 것을 걱정하는 처지가 된다.

소련은 상대적으로 독일보다 피해가 적었다.폴란드 침공에 거의 숟가락만 놓은 꼴이였다.소련은 그대로 군을 몰아 발트 3국을 병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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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은 주기적으로 사람들을 내보내며  인적쇄신을 하고 있었다.당원들을 다시 재조사해 불순분자들을 걸러내는 작업을 시행한 것이다.1930년부터 이런 작업은 계속되어왔다.이 작업에 숙청 (肅淸)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붙이게 된다.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몸에 낀 노폐물을 빼낸다는 의미이다.스탈린은 대숙청이라는 미명아래 자기 권위에 도전하는 놈들을 바깥으로 치워버리거나 죽여버린다.후에 역사학자들은 스탈린 권력이 세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으나 다른 의견도 있다.스탈린에게 대드는 놈이 많아서 그랬다는 것이다.권력 기반이 튼튼하면 시스템적으로 걸러냈을 텐데 이게 제대로 동작을 안해서 대가리 굵은 놈들이 들고 일어났다는 것이다.

군부에서도 숙청이 이루어진다.투하쳅스키는 소련군을 기계화해야 한다며 스탈린에게 거듭 주장하고 있었다.스탈린은 이런 투하쳅스크 생각이 과하다고 생각한다.예산도 문제이고 지금 소련 공업화가 시급한데 여기에 국력을 낭비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 것이다.게다가 군이 커지면 자신의 권위를 넘보는거 아니냐며 경계심도 가지게 된다.둘은 균열이 생기고 독일은 이간책을 쓴다.투하쳅스키가 스파이라는 정보를 흘려주자 스탈린은 투하쳅스키를 숙청한다.그 외 여러 고급 장교가 숙청당한다.별들은 우수수 쏟아지고 영관급도 많이 투옥된다.숙청 대상자는 보로실로프가 작성한다.이 양반은 1969년까지 살면서 천수를 누리게 된다.스탈린과 보로실로프는 끈끈했다.둘의 이름을 딴 전차가 나올 정도였다.소련군은 양적으로는 팽창하고 있었지만 이를 운영할 장교들 수준은 대숙청영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정치지도위원의 힘이 일선 장교보다 큰 힘을 가지게 된다.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군을 키울 수 없음에도 꾸역꾸역 병력을 모아갔다.국가방위대 수장 한스 폰 젝트 장군은 독일군은 언제가 부활할 것이라며 장교 교육에 힘쓰게 된다.베르사유 조약은 장교를 4000여명만 보유하게 했는데 한스 장군은 이 규정을 지키며 1명 뽑을 때 굉장히 심여를 기울였다.로테이션도 수행한다.4000여명을 전역시키고 다시 한명 한명 소중히 뽑으면서 장교 훈련 받은 인원을 늘려갔다.장교가 어마어마하게 양성되고 이들은 독일군이 양적 팽창했을 때 고급 지휘관으로 군을 지휘하게 된다.물론 독일도 이런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하지만 폴란드전과 스페인내전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고 바꾸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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