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틀러 집권전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군사력을 강화할 수 없었다.독일 장교나 엔진니어가 비밀리에 소련으로 가서 기갑 훈련과 차량 테스트를 진행하게 된다.원래 기갑전에 대한 이론의 시작은 영국이였다.독일은 영국의 기갑전 이론을 적극 수용한다.독일은 전통적으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 부터 기동전에 대해 일가견이 있었다.현란한 기동으로 적을 교란시켜 승리로 이끈다는 공식이 뿌리깊었다.한스 폰 젝트는 그 시절을 상기하면서 우리가 1차대전때 참호에만 매몰되어 너무 기동전을 안했다며 미래에는 차량을 이용한 기동전이 승부를 가를 것으로 내다보게 된다.구데리안과 루츠가 이런 혁신에 힘을 실어준다.반대도 있었다.포병과 보병 중심이였던 기존 전투 방식을 깨는 것이라 성공에 대한 의구심이 든 것이다.하지만 히틀러가 기갑에 대해 알아보고 통큰 결정을 하게 된다.히틀러의 비호 아래 기갑사단은 급성장하게 된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독일은 자국산 전차를 잇달아 선보인다.1호전차가 나온다.2인승으로 작은 전차였고 오토바이보다 약간 큰 정도였다. 그 후 2호전차가 나오게 된다.2호전차는 2차대전 내내 광범위하게 쓰이게 된다.전투차량 역할을 못해도 적 정찰에는 효과가 있었다.1,2호전차까지는 독일이 전차를 처음 만들다보니 크기가 작았다.3호전차부터 비로소 전차로 부를 수 있는 물건이 나온다.3호차부터 포탑이 돌면 포수도 같이 도는 시스템이 적용된다.그리고 역할 분배도 확실히 한다.다른 열강 전차들은 탑승인원이 두명 정도 였는데 독일은 이보다 많은 승무원을 태움으로써 역할을 전문화한 것이다.이 후 4호전차가 탄생한다.그리고 애매한 포지션의 돌격포가 탄생한다.돌격포는 보병과 함께 다니면서 보병 진지인 토치가 같은 것을 때려 부수는 역할을 하게 된다.구데리안은 돌격포도 기갑에 넣으려 했으나 돌격포는 포병 병과였다.포병이 돌격포까지 내주면 자신들 밥그릇이 없어진다며 절대 사수한다.1,2호전차는 훈련용,정찰용이였고 3호 전차는 대전차용 4호전차는 다목적용도로 쓰게 된다.또한 독일전은 대규모 기동전을 펼치기 위해 기갑차량끼리의 통신을 매우 중요시한다.작은 전차라도 무전기는 무조건 탑재한다.
















영국은 전차를 이상한 방식으로 개발한다.단계적으로 버전을 업그레이드 하는게 아니라 목적에 맞게 전차를 따로 만들게 된다.발렌타인 전차는 보병 상대용으로 만든 전차였다.유럽전선에서 죽쓰자 일본군 상대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게 된다.일본군을 상대로는 대활약하게 된다.순항전차도 만든다.빠르게 적 후방으로 침투 교란 목적으로 만든 전차였다.정찰이나 간단한 경비를 위한 경전차도 따로 만들게 된다.풀러는 1차대전 당시 플랜 1919를 짜게 된다.한꺼번에 전차 4500대를 투입 일거에 적을 패닉에 빠뜨리고 전차가 돌진하면 전차보다 빠른 항공기까지 동원 적 참호를 돌파하는 구상을 한다.이 꿈이 실현되기전 1차대전은 끝난다.풀러는 자신의 꿈을 책으로 내고 이 책은 독일과 소련에 큰 감동을 준다.정작 영국은 풀러의 구상과 반대로 간다.군축으로 전차를 퇴역시키고 전차부대를 줄이는 작업을 한다.항공기 같은 것에 더 투자를 하느라 전차에 예산이 덜들어간다.그리고 기존 군수뇌부들은 여전히 보병과 포병으로 군을 운용해야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프랑스는 혁신 전차로 꼽히는 전차 르노 FT 를 가지고도 발전을 못시킨다.프랑스는 1차대전 후에 적 참호를 돌파하기 위해 보병을 보조하기 위해 전차를 보병과 연계하는 방법을 채택한다.프랑스는 화력과 방어력 우수했으나 뭉쳐서 기갑전을 하는게 아니라 다 조각내서 보병에 배속시킨 것이다.독일 전차와는 다르게 업무 분장이 안되서 조준하고 포탑 돌리고 장전하고 이걸 한 놈이 다한다.프랑스는 기본적으로 방어 위주였다.포병과 보병으로 앞에서 버티다가 돌파구가 생기면 거기에 화력을 집중 섬멸한다는 패탱의 교리에 매몰되어 있었다.전차간 통신도 안된다.기본적으로 깃발가지고 의사소통을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샤롤 드골은 좀 달랐다.대규모 기갑전을 예상하고 전차를 모아서 운용해야 한다는 급진적 생각을 가졌으나 대세에 밀리게 된다.




















소련은 전차 수준이 높았다.양과 질 모두를 다잡았다.특히 현가장치(서스펜션)이 혁신적이였다.당시 전차들은 판스프링으로 충격을 흡수한데 비해서 소련 전차는 바퀴의 암이 충격을 흡수하게 된다.이걸 미국인 크리스틴이 발명했는데 미국에서는 외면 받게 된다.스탈린이 무기에 좀 관심이 있어서 뭐좀 없나 하고 들여다 보다 이걸 보게 된다.이 서스펜션의 판권을 사게 된다.이러다 보니 궤도가 끊어져도 바퀴자체로 달릴 수있는 전차인 BT 시리즈가 탄생하게 된다.이걸 토대로 T-26전차가 나오게 된다.만들고 정비가 쉬워 대량 생산된다.그리고 전선돌파용인 T-28도 나오는데 망작이 된다.포탑이 여러개여서 개대를 했으나 사각도 많고 장갑도 얇아 효용이 없었다.하지만 이 망작으로 독일에게 기만전술을 쓰는 효과가 난다.독일이 소련 전차에 대해 우습게 본것이다.게다가 스페인 내전과 핀란드 겨울전쟁에서 보여준 소련 전차 성능에 독일은 소련 전차를 한 수 아래로 보는 대형 실수를 하게 된다.하지만 뒤로 소련은 T-34와 KV 전차를 준비하고 있었다.전술도 준비한다.투하쳅스크는 광할한 소련땅에서 대규모 기갑전이 벌어질 것을 예상한다.전차 부대를 3겹으로 준비하고 1겹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두들기고 약한 쪽이 관측되면 2파와 3파가 재빨리 적 중심으로 기동하여 적을 섬멸한다는 교리를 준비한다.하지만 이런 규모로 운영하려면 뒤에 보급 트럭이나 이런게 받쳐주어야 했다.대규모 작전 시뮬레이션은 잘 되지 않게 된다.더군다나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군지휘관까지 붕괴되어 기갑전은 이론에 머물게 된다.







미국은 전차 후진국이였다.보유하던 전차도 모두 폐기 처분한다.1936년이 되서야 차세대 전차를 만든다.M2 경전차 시리즈를 선보이게 된다.미국도 전차를 보병 부속품으로 여기고 있었다.비행기도 아닌데 장갑에 리벳을 쓴다.이게 접합하고 가공이 쉽다고 한다.이러다 보니 방어력이 취약했다.미군은 설마 1차대전같은 전쟁이 또 일어나겠나하고 방심하고 있었다.그래도 몇몇 선진적 지휘관이 있어 기갑학교를 세우게 된다.미국의 장점이 있었다.막강한 민간산업이 있었다.자동차 공업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였다.전쟁에 나간다고 하자 엔진니어들이 대거 군수 산업에 투입되어 민수에서 검증된 엔진이 그대로 전차 엔진으로 들어가게 된다.1940년대에 들어서 미국은 강력한 전차를 선보인다.버스 엔진 2개를 전차에 넣어서 고출력 엔진 전차를 만든다.다른 국가들이 엔진 출력에 애를 먹고 있는 시기에도 미국은 이 문제가 없었다.그만큼 미국의 산업 능력은 타의 추정을 불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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