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닌이라는 구심점으로 소련은 공산화하는데 성공한다.하지만 레닌은 중풍에 걸리게 된다.언어 능력이 상실되어서 의사 소통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자기가 죽었을 때 사후를 고민하게 되고 글을 남기게 된다.레닌은 트로츠키와 레닌 그외 4명을 후계자로 거론하게 된다.레닌은 글에 이 6명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기록한다.모두까기를 시전하게 된다.레닌이 바란것은 이 6명이 협력해서 단점은 줄이고 장점을 극대화해서 소련을 이끌어가는 것이였다.레닌이 창업주라면 그 자식들은 레닌이 보기에 한참 모자란 놈들이였다.









스탈린은 당시 서기장이였다.비서 역할로 당의 자금과 인사를 쥐고 있었다.이러다 보니 레닌 사후 권력의 무게 추가 스탈린으로 옮겨가게 된다.그대로 이 직책이 지도자 직함이 된 것이다.레닌은 특히 스탈린을 불러 인종차별 발언까지 서슴치 않는다.스탈린은 그루지아 사람이였는데 레닌은 이를 문제삼아 스탈린을 멸시하게 된다.스탈린은 허허실실하며 웃어 넘기며 레닌에게 대들지 않았다고 한다.1924년 1월 21일 레닌이 사망한다.스탈린은 앞장서서 레닌의 시신을 운구하는 대열 앞에 서게 된다.레닌은 유언으로 자기가 죽으면 엄마 옆에 묻어달라고 하나 스탈린은 이를 거부한다.공산주의 사상에서 신은 없다.하지만 이를 일반 민중이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려웠다.뭔가 종교를 대신할 실체가 필요했다.레닌의 시신을 방부처리하고 일반 대중들에게 레닌의 사상을 믿고 받아들이면 잘 살 수 있다는 교리를 만들어 낸다.스탈린 역시 레닌을 존경하고 있었다.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레닌이 힘들게 싸아온 소련을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에 빠졌다고 전해진다.











스탈린의 강력한 경쟁자는 트로츠키였다.적백내전을 승리로 이끈 트로치키의 지도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스탈린은 어떻게 하면 트로츠키를 밀어낼까 고민한다.스탈린은 1913년에 트로츠키가 조지아 지역 볼셰비키에 보낸 편지를 입수하게 된다.이 편지에는 레닌에 대한 험담이 포함되어 있었다.건 수를 잡은 스탈린은 트로츠키를 추출한다.하지만 이 편지만으로 트로츠키가 몰락한 것은 아니다.트로츠키는 혼자 잘난 사람이였다.다른 사람과 논쟁을 하면 이길때까지 상대를 밟고 자존심도 뭉개는 사람이였다.긴 시간 여러 사람이 합의한 내용도 트로츠키가 불쑥 나와서 난 반대일쎄 하면서 파토를 놓는 일도 다반사였다.트로츠키는 장갑열차안에서 [나는 일부러 사람과 거리를 둔다]라고 말하기도 한다.그게 자신을 사람들이 우러러 보게 하는 방법 즉 카리스마를 발휘한다고 생각한 것이다.스탈린은 이와 반대였다.스탈린은 사람들과 잘 어울렸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경계심을 풀게 하는 묘한 재주가 있었다.주장자체도 스탈린이 비교우위였다.트로츠키는 나라밖까지 혁명을 수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고 스탈린은 우리부터 내실을 다지자고 주장한다.젊은 세대 당원들은 스탈린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스탈린은 레닌의 뒤를 이어 소련을 통치하게 된다.








레닌은 사회주의를 설계하면서 경제 시스템도 구상한다.큰 틀은 기간산업과 은행만 국유화하고 나머지 산업은 그냥 시장경제에 맡기는 것이였다.레닌이 만일 박정희시대를 본다면 이게 바로 사회주의다라고 주장할 법한 것이였다.레닌은 적백내전이 발생하자 상황상 중소기업까지 국유화 해버린다.당시 자본주의 사회들은 국가가 일절 간섭을 안하는게 대세였던 시절이였다.루스벨트가 국가 주도 경제 성장을 하겠다고 하자 이거 빨갱이 아니냐며 의심받는 시기였다.레닌은 내전이 끝나자 원래 자기가 생각했던데로 경제를 돌리고 신경제정책을 추진 소련 경제를 되살린다.문제는 스탈린 집권 초기에 발생한다.곡물가격도 상승되고 경제도 삐걱댄다.다른 나라들은 경제가 연일 승승장구하고 있었다.스탈린은 이래가지고는 다른 나라 영원히 못따라잡는다라고 생각한다.과감한 국유화와 집단화를 구상하게 된다.레닌의 신경제정책에서 용인한 부농들의 재산도 몰수 집단화 농장을 만들게 된다.










스탈린의 지지기반인 청년 당원들은 레닌의 신경제정책(네프)를 빨리 끝내고 강력한 공업화를 원했다.이런 당심을 잘 읽은 것이 스탈린이였다.스탈린은 농민의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공업화에 필요한 돈을 농민을 짜내서 충당하는 것이다.재산을 가진 농민들은 다 뺏기고 집단 농장에 들어가라 하니 거세게 저항한다.스탈린은 강제로 밀어붙이게 된다.농민들은 조빠지게 일해봤자 공업화에 희생물이 된다며 일을 열심히 안하게 된다.그 결과 농업 생산량은 급감하게 된다.특히 우크라이나는 곡물 수탈에 큰 희생을 치루게 된다.우크라이나는 유럽 최고 곡창지대인데 소련 정부가 그냥 가져가버리니 도처에 아사자가 발생하게 된다.







농민들은 도시민들에게 곡물을 뺏기며 다 죽어가고 있었고 공업화는 가속화 된다.스탈린은 농업국가에서 국가 체질 자체를 공업국가로 변모시키려 들게 된다.1935년 미국,독일 다음 으로 소련이 산업화 지수 3위를 달성한다.공업화가 빠르게 진행되자 농민들도 도시로 몰려들게 된다.놀랍게도 이들 모두에게 일자리가 제공되면서 소련은 유례없는 호황을 맞게 된다.자본주의 사회는 반대로 경제공황이 발생하며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된다.소련은 이 위기에도 매년 10%씩 고속성장을 하게 된다.적백내전과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차와 기계화 부대를 만들기위해 중공업도 육성한다.이런 공업화로 훗날 발생할 독일과의 전쟁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된다.







소련은 막상 군대를 기계화해야되는데 기술이 좀 딸렸다.앞으로 벌어질 전쟁에 병력을 갈아넣는 식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하지만 공산화된 소련은 왕따 신세였다.옆에 독일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독일 역시 베르사유 조약으로 유럽에 왕따였다.독일은 베르사유조약으로 무기 생산이 제약되자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소련과 독일의 이익은 서로를 갈구하고 있었다.소련은 장소와 부지를 제공해주고 독일은 여기서 신무기를 만들고 테스트를 하게 된다.베르사유 조약으로 장교들이 해외로 못나가는데 여행객으로 위장 몰래 군사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독일은 장소 제공 댓가로 소련 기술자들을 훈련시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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