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부의 콜차크 백군이 위기에 몰리자 남부 백군은 움직이기 시작한다.이 남부 백군이 실질적 반혁명세력이였다.병력 규모도 15만정도였다.여기 남부 백군의 지휘관은 데니킨이였다.남부에서 알렉세예프와 코르닐로프가 죽으면서 이 두군대를 합병 데니킨은 몸집을 불린 상태였다.코사크와 우크라이나에서도 병력을 규합하면서 세력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선택은 2가지였다.카잔으로 기어 올라가거나 자원지대인 돈바스를 확보하는 것이였다.




코사크는 말을 잘타는 전투 민족이였다.이들은 제정 러시아 시절 기병대 입대 조건으로 자치권을 얻어 일종의 특권을 행사하고 있었다.갑자기 러시아에 혁명이 일어나면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주장하니 코사크는 과거에 누리던 거를 다 내려놓아야 할 판이였다.이러다 보니 이들은 자연스레 백군에 합류하게 된다.백군의 장교와 뛰어난 코사크 기병군이 뭉치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동부 백군이 무너지고 파죽지세로 남부백군은 수도 모스크바를 향해 진군하게 된다.





처음 기세는 좋았지만 백군 조직안에서는 여러 불길한 조짐이 일어나게 된다.데니킨은 평민 출신인데 그 밑에 브란겔은 귀족이였다.전략전술을 짤때 브란겔은 평민주제에 데니킨은 부모 찬스 쓴 주제에 이러면서 사사건건 부딪히게 된다.코사크족도 이탈 조짐을 보인다.코사크는 남부지역이 홈그라운드인데 모스크바 간다고 하니 우리가 굳이 가야 하나 이런 의문이 들고 백군도 코사크에게 자치권을 주는 것에 대해 확답을 주지 않고 있었다.녹군도 갑자기 남부백군 뒤를 치면서 빈집 털이하게 된다.백군은 모스크바로 진격하면서 보급선이 길어지는데 이 때 농민들을 수탈한 것이다.











백군이 이런 내부 위험요소를 가지고 진격하는 동안 레닌과 트로츠키는 전력 강화에 힘쓰게 된다.코사크 기병의 활약을 보고 기병대를 창설하게 된다.이 부대가 1기병군단이다.부됸니,보로실로프,주코프까지 화려한 역대 군단장 라인이다.이 군단은 2차대전 중 독일과의 전투에서 대활약하게 되는 부대가 된다.적군은 차라친에서 백군의 진격을 막기위해 나서게 된다.차리친은 러시아의 교통요지였다.치라친은 도시이름이 많이 바뀌게 된다.원래는 차리차 강에서 유래되었다가 스탈린그라드가 된다.그리고 스탈린 격하 운동에 따라 볼고그라드가 된다.여기가 뚫리면 동쪽의 백군과 남부 백군이 연결되어 수세에 몰릴 수 있었다.만일 뚫렸다면 러시아의 공산화를 장담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적군은 여기를 사수하기 위해 병력을 파견하게 된다.









1918년 7월 보로실로프가 차리친을 사수하기 위한 지휘관으로 파견된다.그리고 스탈린이 등장한다.원래 스탈린은 식량 수탈을 목적으로 파견된 공무원이였으나 여기가 급하니 정치위원이 되어 보로실로프와 묶이면서 의기투합하게 된다.이 둘은 권력욕이 상당히 강했다.서로를 알아본 둘은 끈끈해진다.적군은 장갑열차를 투입 철길을 왔다갔다 하면서 백군을 격파하게 된다.코사크는 야지 기병전에 능했지만 요새를 공략하는 것은 다른 문제 였다.적군은 여기를 사수하게 되고 동부백군과 남부백군의 합류를 막게 된다.훗날 이곳은 스탈린그라드가 된다.스탈린이 최고 지도자가 되자 자기를 스타로 만든 차리친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도시 이름에 자기 이름을 붙인다.





차리진 전투 후폭풍은 거셌다.사령관이 브라켈로 교체 된다.크림반도에서 나와 모스크바로 가야 했지만 그 기세는 완전히 꺽이게 된다.남부백군이 무너지자 코사크는 비극적 운명을 맞게 된다.볼셰비키는 이들을 온갖 방법으로 탄압하게 된다.상당수는 박해를 피해 떠나게 된다.훗날 나치가 이곳으로 들어오자 코사크는 나치에 협력하며 소련에 복수하게 된다.이런 코사크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다룬 소설이 나오게 되는데 그게 바로 [고요한 돈강]이다.이 소설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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