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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6.25 전쟁

서울 사수와 공중전

by senamu 2025.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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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중국군은 전전선에 걸쳐 춘계공세를 펼쳤다.동부전선도 치열했다.하지만 여기는 소양강에서 전선이 형성되며 소강상태에 들어간다.중국군은 서울을 한번 더 노려보기로 한다.중국군은 조금씩 밀고 들어오고 미군이 점점 밀리자 리지웨이는 한강 이남까지 철수해서 방어진을 꾸리려 한다.하지만 밴플리트가 가로막는다.서울 내주면 다시 탈환하기 어렵다 판단하게 된다.밴플리트는 결사 항전을 다짐하고 노네임선을 만들고 이 위까지 중국군을 밀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미군은 중국군이 내려올만한 길에 철조망도 깔고 지뢰도 깐다.포병 배치도 적절히 하게 된다.광화문 한 가운데에도 포를 배치 적을 격멸할 준비를 하게 된다.미군은 가용한 모든 자원을 동원 서울 북부를 포격하게 된다.중국군은 너무 아까웠다.고지가 바로 앞인데 손절칠 수 가 없었다.손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중국군 8만여명이 전사하고 5만명이 부상으로 전선을 이탈하게 된다.이게 단 이틀만에 벌어진 일이였다.불암산에 가보면 바위들에 파편 자국이 있는데 이게 서울 북방 전투의 흔적인지 아니면 6.25 초기 육사 생도들이 벌인 전투의 자국인지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펑더화이는 이전과 다르게 미군이 주도면밀하게 철수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혹시 함정아닌가 하며 의심도 하게 된다.게다가 인천 상륙 작전같은 상륙전이 또 벌어지면 여러 수를 고민하다가 공세를 멈추게 된다.

밴플리트는 화력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기존에 105mm 곡사포는 하루에 30발 정도만 사격했는데 이를 늘려 300발로 해버린다.유엔군은 이때 105mm 586문,155mm 248문을 가졌는데 이 포들이 300발씩 쏘면 생산량이 소모량을 따르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해 버린다.포신도 문제였다.너무 많이 쏘면 터질 수도 있었다.이만한 화력은 그러니까 거의 필살기였던 셈이였다.

소련은 6.25가 터지자 모스크바에 항공사단을 중국지원을 하기 위해 이동시킨다.이 부대는 수도를 지키는 부대로 다수의 파일럿이 2차대전을 경험한 베테랑으로 구성된 부대였다.소련의 최신예 기종인 MIG-15기로 무장하고 있었다.MIG-15기에 엔진을 강화시켜 공중전 준비를 착실히 하게 된다.303,324 항공사단은 1951년 내내 하늘을 날아다니며 공중전을 벌이게 된다.1952년이 되서야 이들이 활동을 멈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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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항공기 5대 격추하면 에이스인데 소련 항공사단 324에는 이런 공군이 무려 17명이나 배출된다.324 항공사단장 이반 코제두브은 독소전쟁 당시 독일 항공기 64기나 격추한 기록이 있었다.324 항공 사단 최에이스는 페펠라예프 대령이였다.f-86킬러였다.14대나 격추한다.303사단도 못지 않았다.303사단 수트야킨 소령은 22대의 항공기를 격추하게 된다.이건 물론 소련측 주장이였다.소련은 교전중에 적 비행기가 연기가 나면 격추됬다고 부풀려 보고한 것이다.이 중 살아서 돌아간 항공기도 있는 것이였다.

1951년 5월 20일 소련 미그기와 미국 f-86이 미그엘리(신의주와 강계 지역)에서 사상최대 공중전을 벌이게 된다.미군은 2개 편대 16대였고 편대장은 자바라였다.f-86은 항속거리를 늘리기 위해 보조 연료통을 달고 갔는데 교전 중에는 이걸 떨어뜨리고 싸워야 한다.하지만 한쪽은 무사히 떨어지나 우측 연료통은 안떨어져 균형을 잃게 된다.미그기는 50여대로 배 이상이였다.당연히 자바라 전투기가 움직임이 이상하니 타겟이 되나 신기에 가까운 조종술을 선보이게 된다.기록에 의하면 미군이 미그기 4대를 격추시켰다하고 소련은 오히려 미그 1대 격추당하고 f-86 3대가 격추당했다는 주장을 한다.

소련은 전투기만 제공한 것이 아니였다.대공포도 지원해 준다.만주에 87과 92 대공포 사단을 투입하게 된다.만주 접경 지대에서 미군 폭격기의 폭격을 막아준 것이다.이 지원으로 중국군은 한반도로 무사히 들어오게 된다.미공군은 대공포의 활약으로 거점폭격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중국군은 일부 방공포는 한반도로 들여와 유엔군의 폭격에 대비하기도 한다.

북한 공군은 한반도에서 활약한다.Po-2 복엽기로 유엔군을 괴롭힌다.이 복엽기는 원래는 연습용으로 쓰는 비행기인데 마치 전투기처럼 운영한 것이다.소리가 매우 요란해 날아다니는 세탁기로 불린다.밤에 적 기지로 날아다녀서 온갖 쓰레기와 폭탄을 투척하고 도망가 밤에 군인들을 잠못자게 하는 항공기로 악명을 떨친다.2차대전 당시 소련은 이 복엽기로 재미를 본다.여군 조종사로 구성된 Po-2 야간 비행대대는 밤마다 연합군 진영으로 가 밤잠을 설치게 만든다.연합군은 이들을 밤의 마녀라 부르게 된다.북한군은 이 Po-2를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느리게 비행하면서 1950년 11월 28일 평양 비행장에 있던 무스탕 11대를 파손시키는 전과를 올리더니 1951년 6월 7일에는 수원비행장에 나타나 f-86 한대를 완파시키고 8대를 파손시키게 된다.

구닥다리 복엽기가 미군 최신 전투기에 피해를 입히지 미군은 야간 전용 공격기 f-94b 스타 파이어를 동원하기로 한다.문제는 빠른 속도였다.저속 저공 비행하는 복엽기 잡으려다가 성과도 못올리고 추락하고 승무원 2명이 전사하는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미해군은 프로펠러기인 f-4u콜세어를 지원하게 된다.1951년 6월말과 7월초 f-4u는 Po-2 를 잡는 전과를 올리게 된다.하지만 Po2 는 틈만나면 미군 비행장이나 유류창고등 보급품을 노리고 달려들게 된다.미공군은 Po-2의 전과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특히 북한 최초 여조종사 태선희의 활약은 빛났다.나중에 여군에서 이례적으로 소장까지 진급하게 된다.

중국군은 서울 때리기는 무리라 판단하게 된다.눈은 동쪽으로 돌리게 된다.여기는 산악지형이라 미군의 포격이나 전차공격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지역이였다.대규모 중국군을 동부전선으로 돌리게 된다.여기를 지키고 있는 한국군 사단을 포위 섬멸하겠다는 계획을 짜게 된다.하지만 그러려면 부대가 동부로 이동한다는 것을 미군에게 들키면 안되었다.일부러 서울을 공격하여 잽을 주고 몰래 병력을 동부전선으로 이동시킨다.서울 북방 전투가 끝난터라 밴플리트는 이 신호를 다시 한번 중국군이 공세를 취한다며 속게 된다.1951년 5월에 이상함을 감지한다.하지만 이 중국군의 움직임이 함정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일부러 미군을 동부로 유도하고 그틈에 서울로 들어오는 작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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