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8~7세기 지금의 이란 남부에서 페르시아가 시작된다. 서서히 세력을 키우더니 기원전 550년경 키로스 2세라는 왕이 나타나 페르시아 영토를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서아시아를 통합 패권을 장악한다.여기에 다레이오스 1세(기원전 522 ~ 486년 재위)가 나타나 페르시아 영토를 최대로 만들어 버린다.이 왕에 대해 이란은 성군으로 그리스에서는 폭군으로 가르친다고 한다. 다레이오스는 자신의 명을 잘 전달하고 제국의 영토를 관리하기 위해 왕의 길을 건설한다.통신시스템을 구축되고 나라는 점점 부강해진다.이 나라의 경제상은 출토된 유물이 증명한다.금이 풍족해 금화가 널리 유통되었고 그릇도 온통 금천지였다.황금 순도가 95%정도일 정도로 과학기술도 발달했다.
반면 이웃한 그리스는 1000여개의 도시국가(폴리스)로 분할되어서 살고 있었다. 이들은 거대한 페르시아에 맞써기 보다는 조공을 받치며 군사적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499년경 사건이 터진다. 밀레토스를 다스리던 참주가 닉소스섬을 먹고자 다레이오스 왕의 동생에게 도움을 청한다.다레이오스 왕의 동생은 군함 200척을 주면서 지원을 하게 된다.하지만 막대한 지원에도 원정은 실패하게 된다.다레이오스 왕 동생은 화가 치밀어 오르고 이에 두려운 밀레토스 참주는 그리스의 식민 도시 국가들에게 쪼르르 달려가 나 좀 살려달라고 한다. 여기에 화답한 도시국가가 에레트리아와 아테네였다.반란은 초기에 사르디스를 정복하며 성공하는 듯 했지만 페르시아군에게 반란은 진압된다.
반란을 진압한 페르시아는 그리스를 이대로 두면 안되겠다며 북쪽으로 지상군을 해상으로 함대를 보낸다.하지만 반란군 본거지인 아테네와 에레트리아는 구경도 못하고 풍랑을 만나 함대가 박살난다.비록 실패는 했으나 그 위세는 상당해서 페르시아는 우리의 힘을 보여주었으니 그리스에 사절단을 보내 협상을 시도한다.페르시아의 요구는 물과 흙을 달라는 것이다.한마디로 항복하라는 것이다.여기에 쫄은 많은 그리스 도시 국가가 투항한다. 하지만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딴지를 건다.아테네는 페르시아 사절단을 맞이하면서 이들의 처분을 시민 투표에 붙여 사형 시켜 버린다.다레이오스는 이 소식을 듣고 다시한번 함대를 일으켜 아테네로 간다.
일단 에레트리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아테네를 향해 진군한다.BC 490년 두 군대는 마라톤 평원에서 마주치게 된다.이 전투에서 뛰어난 장군이 있었으니 그가 밀티아테스 였다.두 군대는 무장에도 많은 차이가 있었다.평원에서 기동성을 중시하는 페르시아군은 경보병 위주 산악 지형이 많은 그리스는 중무장한 보병이 주력이였다.병력 규모는 페르시아군이 2배 이상이였다.페르시아군은 화살로 아테네군을 공격하나 중무장한 아테네 보병을 뚫을 수 없었다.여기에 군사 배치도 차이가 있었다.양익 포위전술이 여기서 등장한다. 가운데를 얇게 해 상대가 약한 가운데로 밀고 들어오면 상대적으로 두터운 좌우 날개가 좌우를 제압하면서 중앙군을 포위하는 전략을 쓰게 된다.이 전투로 페르시아는 대패한다. 거의 전멸 수준이였고 아테네군의 피해는 미미했다.이 마라톤 전투 패배로 이란은 마라톤 경기에 참여 안한다는 소문이 있었다.더군다나 1974년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 마라톤 경기를 제외하면서 의혹이 증폭된다.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단지 선수가 없어서 참여안한 것 뿐이다.아무튼 이 대패로 다레이오스는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간다.복수를 넘어 그리스 전체를 먹기로 결심한다.복수를 준비하던 다레이오스는 65세로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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