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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태평양 전쟁

필리핀이냐 대만이냐

by senamu 2024.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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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6월 중순 미합동참모본부(JCS)에서 헨리 아놀드,어니스트 킹,위리엄 리히, 조지 마셜이 모여 다음 목표를 대만으로 정한다.
요새화된 필리핀보다는 남방자원수송로 길목에 있는 대만을 치는게 전쟁을 빨리 끝내는 길이라는 것에 합의한다.
맥아더는 이같은 사실을 듣고 먼저 필리핀을 공격해야 한다며 펄펄 뛴다.
대만의 평후제도,진먼섬,마쭈열도는 지금도 해상교통에 요지로 중국과 대만은 여기를 두고 갈등을 벌이고 있다.

 

 

1944년 11월 미국에는 대선이 있었다.

루즈벨트는 4연임하기위해 전략회의를 개최하기로 하고 하와이로 가기로 한다.
VIP이동은 보안사항으로 이 사실을 니미츠에게 알린다. 

루즈벨트 명으로 니미츠는 조심스레 맥아더를 부르나 거절한다. 

어니스트 킹과 조지 마셜까지 나서서 오라고 하자 맥아더도 눈치 까고 하와이로 간다.
1944년 7월 22일 루즈벨트를 태운 중순양함 볼티모어가 샌디에이고를 출발하고 7월26일 진주만에 도착한다.
맥아더는 이 때 지각하고 자신은 싸우다 왔다며 나름의 변명을 한다.
7월28일 전략회의가 개최된다. 

대만이냐 필리핀이냐 루트를 결정하는 회의였다.
니미츠는 육군이 필리핀 민다나오에 거점을 만든 후 필리핀내 일본군 비행장을 공습 제공권 장악 후 해군이 대만을 공격하는 전략을 루즈벨트에게 보고한다.
맥아더는 특유의 자신감으로 주머니에 한 손을 넣은 채로 필리핀 공격은 필리핀에 대한 도덕적 의무라고 한다.


루즈벨트는 루손섬 공격이 피해가 크지 않을까라고 맥아더에게 질문한다. 

맥아더는 [멍청한 정면공격은 오직 평범한 지휘관이 한다] 라는 말로 그간 상륙작전에서 많은 희생을 낸 해군과 해병대를 돌려 깐다.
필리핀은 7000여명의 미군 포로가 있었고 게릴라들은 바탄반도에서 일본에 저항하고 있었다. 

게다가 맥아더는 전에 필리핀 사령관을 했다가 일본군 공격에 물러난 적이 있기 때문에 더욱더 필리핀을 공격하고 싶어했다.
루즈벨트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고 건강이상설이 재기된 상황이였다. 

이 하와이회의로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려했고 맥아더는 그 당시 대중적 인기가 있었다.
루즈벨트는 결국 맥아더의 손을 들어주고 필리핀 공격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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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9월 12일 ~ 16일에 제2차 퀘벡회담이 개최된다. 

일명 옥타곤 회담이라 불린다.
영국의 처칠은 유럽 전선 지원에 대해 미국에 얘기했다. 

유럽 우선 주의를 내세운다.
미국의 루즈벨트는 태평양 전쟁 종전 계획을 설명한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후 독일의 저항이 거세 더디게 진군이 이루어 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미군 M4 셔먼 전차가 167대가 파괴되었고 그 해 8월 파리 탈환 때는 557대가 피해를 보았다. 

예상보다 전차 손실이 엄청났고 전차병도 많이 전사했다. 

나중에는 5명이 타야 하는 전차를 행정병까지 써가며 4명씩만 탄다.
미국은 이 점을 영국에 지적한다.

미국의 갈굼에 영국은 서둘러 1944년 9월 17일 ~ 25일 까지 제1공수사단으로 마켓가든작전을 벌인다.

결과는 대참패였다.

 

 

필리핀을 치기위해 먼저 레이테섬에 거점을 마련하기로 한다.
레이테섬은 필리핀의 중앙인데다가 넓은 평지와 해안선을 가지고 있었다. 

비행장을 만들기 좋았고 상륙도 용이했다.
레이테섬에 상륙하기 위해 먼저 사랑기니만을 공격하고 그다음 레이테섬 상륙한 후 여기를 거점으로 삼아 최종적으로 루손섬에 상륙하여 필리핀을 먹는다는 것이다.
d-day는 1944년 12월 20일로 결정되고 니미츠와 맥아더는 합동작전을 펼치기로 한다.

함정 700여척 육군 5개 사단이 동원되는 작전이였다. 

1944년 9월 8일 미합동참모본부는 이를 승인한다.
2차 퀘벡회담으로 이 계획은 앞당겨 진다. 

레이테섬 상륙을 10월20일로 정한다. 그리고 루손섬 상륙이 12월20일로 정해진다.
단계도 생략된다. 

곧장 레이테만으로 육해군이 밀고 들어가기로 한다. 

윌리엄 홀시는 일본군 전력이 약하고 미국은 전력이 엄청 강해서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맥아더는 좋아한다. 해군의 빵빵한 지원과 일본에게 재건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 미군의 항공기 생산대수는 일본의 4배 정도였고 성능도 능가하게 된다.


작전을 원할하게 하기위해 1944년 9월 15일 필리핀 주변 상륙작전을 개시한다.

윌리엄 홀시의 3함대와 토마스 C 킨케이드의 7함대가 오키나와 및 난세이제도,대만에 있는 일본군 항공 기지를 청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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