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2년에 평범한 프랑스 농민의 딸로 잔다르크가 태어난다. 그녀는 교육도 못받고 교회만 열심히 다니는 독실한 신자였다.
어느날 갑자기 환영이 나타나 위기의 프랑스구하라라는 말을 한다. 그녀는 이런 현상이 계속되자 수비대장에게 찾아가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한다. 수비대장은 미친년이라며 그녀를 내쫒는다. 허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수비대장은 어떤 년이 왕과 알현하고 싶다고 떠든다며 왕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왕은 흥미를 느껴 잔다르크를 자신의 성으로 부른다.
이 때 잔다르크는 머리를 짜르고 갑옷으로 무장한 채로 왕에게 갔다고 한다.샤를 7세는 그녀의 능력을 시험하고 싶어 평민으로 변장한채 군중 속에 숨어 있었다. 잔다르크는 단 번에 왕을 알아본다.
왕은 놀라며 확인 차원으로 푸아티에로 보낸다. 지식인이 잔다르크를 검증해 보라는 것이다. 처녀성을 검사한다. 당시 처녀성 검사는 악마와 교접을 한 것이 아니냐를 보는 것이였다. 잔다르크는 통과하고 청문회마저 패스한다.
샤를 7세는 잔다르크를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오클레앙으로 보낸다.
잔다르크가 가자마자 프랑스군은 잉글랜드군을 물리친다. 이어진 전투에게 계속 승전보가 전해진다.
이 때 잉글랜드가 보급 문제로 철수했다는 설도 있지만 사람들은 잔다르크 덕분으로 승리했다며 그녀를 성녀로 추앙한다.
유럽 여러 나라로 이런 영웅담은 부풀려 퍼진다.
1429년 샤를7세는 기세를 몰아 랭스 지역으로 프랑스군과 잔다르크와 함께 진군한다..
랭스 지역의 성당은 프랑스왕의 대관식이 열리는 상징적인 장소였다. 이를 수복하는 것은 급선무였다.
가는 길에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 모두다 소문을 듣고 잔다르크를 맞이하기 바빴다. 편지도 써가며 주민들도 호소하기도 했다. 랭스에서 샤를7세는 잔다르크를 수호자로 앞세워 대관식을 치룬다.
잔다르크는 적진을 뚫고 왕을 수호한 성녀로 더욱더 명성이 높아지게 된다.
왕이 되자 샤를 7세는 서서히 딴 마음을 품는다. 전쟁에 지친 것이다.
왕은 부루고뉴와 협상을 한다. 또 잔다르크가 자신보다 대중의 지지를 얻는 것을 못마땅해 하게 된다.
잔다르크는 이전과 같은 군인의 지원을 못받게 된다.
잉글랜드 입장에서는 성녀인 잔다르크가 곱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1430년 5월 잔다르크는 부루고뉴파에게 콩피에뉴 성에서 포로로 잡힌다.
잉글랜드는 부르고뉴에게 몸값을 지불하고 이단 재판을 한다.
잔다르크가 성녀가 아니어야 자신들이 악마의 군대가 아닌 것이다.
쇠사슬을 묶고 재 뿌린 밥을 준다. 이단 심문관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어려운 질문을 쏟아낸다. 잔다르크는 당당히 맞선다.
잔다르크는 처녀였으므로 마녀라는 죄목을 씌우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다른 죄목들을 만들어 낸다.
그 중 남장한 죄도 컸다. 당시 인식에서는 여자가 남장을 할 수 없었다.
결국 1431년 5월 30일 루앙의 광장에서 잔다르크는 산 채로 화형에 처해진다.
그녀의 나이 19살이였다.
혹시 시신이 프랑스의 구심점이 될까봐 3번이나 태운다.
샤를 7세는 그제서야 각성했는지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여 잉글랜드 세력을 몰아낸다.
이 백년전쟁이 끝나고 3년 후 샤를 7세는 잔다르크의 이단 재판은 무효라고 선언한다.
이거를 가만히 두면 자신의 대관식에서 수호자를 자처했던 잔다르크가 악마가 되어서 자신이 악마의 왕이 되기 때문이다.
불리한 전황을 바꾸는데 이용하고 좀 대중에게 인기끄니까 죽게 방치한 후 사후에 자신의 이익에 맞추어 복권한 것이다.
잔다르크는 짧은 생을 살다갔으나 후세들에 의해 여러번 살아난다.
나라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등장하여 위기를 타파하는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우리나라의 장지연 선생이 잔다르크 일생을 애국부인전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출간하기도 한다.
이 책을 유관순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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