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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AD_1200_1499

백년 전쟁 1부

by senamu 2024.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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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 샤를 4세가 1328년 사망한다. 문제는 그에게는 후사가 없었다. 친척 중에 왕손을 찾아야 했다. 

샤를 4세의 누나가 잉글랜드 왕과 결혼해 낳은 에드워드 3세 잉글랜드왕과 샤를 4세의 사촌인 프랑스 발루아 백작이 유력한 왕위 계승자로 떠오른다. 당연히 잉글랜드왕이 프랑스왕이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프랑스 귀족들은 발루아 백작 필리프 6세를 왕으로 추대한다. 잉글랜드왕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이 적합한 왕위계승자라며 이를 간다.

사실 30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에 있던 노르망디 공작(윌리엄 1세)가 영국 왕(해럴드 2세)를 죽이고 노르만 왕조를 창건했다. 프랑스 사람이 가서 왕이 되었으니 이때부터 잉글랜드 왕은 프랑스 왕의 신하가 되버린다.

이 때 부터 잉글랜드왕과 프랑스왕은 프랑스 내 영토를 두고 옥신각신하게 된다.

당시는 요즈음과 같은 국가 개념이 아니였다. 보니까 국가가 왕의 재산 같은 개념인 것 같다.

에드워드 3세는 배앓이 꼴리지만 필리프 6세에게  고개를 숙인다. 프랑스 내 보르도 지역을 보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와인 생산을 잘해서 전 유럽에 팔아 막대한 부를 안겨주는 땅이였다.

그러던 중 프랑스 플랑드르 지역에서 봉기가 일어난다. 여기는 모직물 생산지였다. 또 이 모직물은 영국에서 수입한 양모로 만들었다. 양모 팔던 영국 상인도 연루되어 체포된다. 이 소식을 들은 에드워드 3세는 항의 표시로 양모 수출을 중단한다.

이러니까 필리프 6세는 감히 왕의 신하가 이러면서 잉글랜드가 가지고 있던 보르도 지역 땅을 내놓으라고 한다.

가장 큰 잉글랜드 세수원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1337년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이 프랑스 왕위 계승자라며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한다. 1339년 잉글랜드는 프랑스에 상륙한다.

군사력이 프랑스 만큼 강하지 못해 게릴라 식으로 약탈전을 감행한다.

이 소식을 들은 필리프 6세는 병력을 모으고 잉글랜드군을 치러 간다.

1346년 잉글랜드군과 프랑스군이 크레시에 만난다.

이미 잉글랜드군이 20미터 정도의 고지에 진을 치고 있던 상황이였다. 필리프 6세는 공격하려다가 방어가 세다는 것을 깨닫고 기사로 구성된 프랑스군에게 잠시 진군을 멈추라고 한다. 두꺼운 갑옷 때문인지 서로 공을 차지하려고 그랬던지 이 명령이 뒤 쪽까지 잘 전달되지 않았고 앞은 멈추었으나 뒤가 멈추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앞도 떠밀려 잉글랜드 진지로 공격을 나가게 된다. 잉글랜드의 장궁으로 쏜 화살이 비오듯 쏟아 진다. 프랑스는 이 때 제노바 용병도 고용했다. 이들도 잉글랜드 장궁에 맞써는 석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비가 오고 석궁이 작동되지 않는다. 수적 우위에 있던 프랑스군은 참패하고 뒤이어 칼레까지 내준다.영국으로써는 이 기세를 몰고 싶었겠지만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한다. 이 후 7년 동안 이 전염병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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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나니 전쟁을 수행할 지도자도 바뀌게 된다. 에드워드 3세는 흑태자를 앞세워 프랑스를 치려하고 프랑스는 필리프6세가 죽고 장 2세가 왕이 된다. 흑태자는 검은 갑옷을 입고 전장을 누볐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아무튼 흑태자는 프랑스 남부로 가 또 게랄라식으로 약탈을 한다.

1356년 장 2세와 흑태자가 푸아티에에서 충돌하게 된다. 이번에도 또 잉글랜드군이 고지를 선점하고 있었다.

장 2세는 아버지 때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기사들을 말에 내리게 해서 돌격시킨다. 운이 없는 것인지 지형파악을 잘못한 것인지 가다가 늪에 빠지고 잉글랜드 장궁에 또 몰살당한다. 장 2세는 장갑을 건네 잉글랜드에 항복하고 스스로 포로가 된다. 흑태자는 포로가 된 장 2세를 극진히 대접한다. 허나 조약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프랑스의 패배로 1360년 브레티니 조약이 체결된다. 프랑스 땅 1/3이 잉글랜드 땅이 되고 이제 더이상 잉글랜드왕은 프랑스 신하가 아니다라는 내용이였다.

대신 떡도 준다. 잉글랜드 왕은 프랑스 왕위를 포기한다는 것이다.그럼 장 2세는 포로에서 풀려났을까? 아니다 그건 또 별도였다. 막대한 몸값을 잉글랜드는 요구한다. 거의 프랑스1년 예산 2배 규모였다. 장 2세는 돈 일부를 주고 보험으로 아들들을 남기고 본인은 귀국한다. 몸 값을 어떻게든 메꾸려 했으나 여의치 않고 다시 스스로 포로가 된다. 뭔 이런일인가 싶지만 이 사람은 기사도에 매우 충실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장 2세가 기사도만 외치다 사망하고 샤를 5세가 즉위한다. 그는 잉글랜드에게 빼앗긴 영토를 다시 되찾는다.

허나 샤를 5세가 죽고 그의 아들 샤를 6세가 즉위한다. 그는 자신의 몸이 유리라며 만지면 깨진다고 사람들을 멀리한다.

왕이 제정신을 못차리니 부르고뉴 세력이 활개를 친다. 부르고뉴는 9세기 부터 1477년까지 프랑스 동부에 존재한 유력 가문이였다.  묘하게 부르고뉴 수장이 암살되고 부루고뉴는 배후로 프랑스 왕실을 지목한다. 그러자 잉글랜드와 동맹을 맺는다.

동맹도 맺었겠다 왕도 미쳤겠다 이 기회를 잉글랜드 왕이 놓칠리 없었다. 헨리5세는 적극적으로 프랑스를 공략하여 프랑스 수도까지 먹어버린다. 1420년 트루아 조약을 맺어 프랑스 왕위 상속권을 확보한다.

샤를 6세가 미쳤음에도 슬하에 공주와 왕자가 있었다. 유리몸이라며 어찌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문제는 샤를 6세의 딸이 헨리5세와 결혼했다는 것이다. 트루아 조약에 의거 헨리5새는 자신의 아들을 프랑스왕에 앉히려 한다. 샤를6세 아들인 샤를7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샤를7세는 잉글랜드와 전쟁을 결심하고 다시 한 번 왕위계승전이 벌어진다.

잉글랜드 입장에서는 이제 요충지인 오클레앙을 정벌해서 남은 프랑스로 가는 길을 열려고 한다.

이 때 이 전투의 판도를 바꿀 인물이 나타난다 바로 잔다르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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