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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태평양 전쟁88

핵분열과 우젠슝 우라늄-235 와 우라늄-238은 원자핵이 92개이고 플루토늄-239는 양성자가 94개이다.이들 이름은 천왕성(Uranus), 해왕성(Neptune), 명왕성(Pluto) 처럼 태양계 행성이름을 따왔다.여기서 숫자 235,238,239 값은 원자핵 갯수 + 중성자수를 합한 값이다.이 우라늄과 플루토늄은 원자폭탄의 재료가 된다.핵물질의 원자핵에 중성자 한 개가 들어와서 때리면 불안정해지면서 원자가 쪼개진다. 이게 핵분열이고 여기서 중성자가 2~3개가 튀어나온다.원래 원자핵은 강력한 핵력으로 꽉 붙들고 있는데 중성자가 이를 깨면서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되게 된다.튀어나온 중성자가 옆에 있는 원자핵을 또 때리게 된다. 이 때는 2~3개 가 원자 하나씩 또 때리니까 원래 에너지의 2~3배가 되고 여기에 나온 에너.. 2024. 5. 6.
원자폭탄 표적 위원회 1942년 맨해튼 프로젝트로 원자 폭탄을 개발을 시작하고 1944년 12월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부대를 만든다.제509복합비행전대로 이 부대는 유타주 웬도버 비행장에서 모의 폭탄으로 투하 훈련을 계속한다.맨해튼 프로젝트 감독기구 군사정책위원회의 윌리엄 R 퍼넬과 토마스 파렐은 1945년 르메이를 찾아가 신무기를 언급하며 티니안에 따로 비행장을 준비시킨다.1945년 5월 훈련을 마친 509복합비행전대는 티니안으로 이동한다.1945년 4월 25일 헨리 스팀슨(미전쟁부장관) 과 레슬리 그로브스(맨하튼 프로젝트 책임자)는 트루먼에게 맨하튼 프로젝트를 대통령에게 첫 보고한다.대통령에게 숨길 정도로 맨하튼 프로젝트는 극비였다.1945년 4월 27일 표적위원회를 설립하고 일본 어디에 원자폭탄을 사용할지를 논의한다.. 2024. 5. 4.
유럽 종전과 몰락 작전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자살하고 5월 8일에는 정식으로 독일이 항복한다.일본 정부는 독일 패망 소식에도 독일과 일본은 다른 전쟁을 해왔다며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한다. 1945년 5월 13일 전 총리 고이소가 일왕에게 상주문을 올려 빠른 항복을 건의하나 거부당한다.소련은 독일이 항복하자 만주 지역으로 대규모 군대를 이동시킨다.일본 총리 스즈키는 기도 고이치 내대신에게 일왕에게 전쟁 종결할 수 있도록 설득시키라고 압력을 가한다.하지만 세계 돌아가는 상황을 무시하는 것인지 외면하고 싶은 것인지 일본은 계속 버틴다.1944년 8월 팔레즈 포켓 전투에서 독일군은 연합군에게 포위 섬멸 당한다. 유럽전선이 마무리된다고 판단한 미군은 1944년 9월 부터 유럽 전선 병력을 태평양 전선으로 이동시킬 계획을 세운.. 2024. 5. 4.
카이로,테헤란,얄타 회담 1943년 11월 22일 ~ 26일에 걸쳐 카이로에서 중국 장제스, 미국 루즈벨트, 영국 처칠이 만나서 회담을 갖는다.미국이 미얀마 전선 해결을 위해 회담을 제의한 것이다. 미얀마 전선에서 중국군과 영국 해군이 힘 좀 써달라는 것이다.조선의 독립도 논의된다. 카이로 선언에서 노예 상태의 조선을 신탁통치 후 독립시킨다는 내용이 담긴다.여기서 동남아국에 대한 독립은 논의 되지 않는다. 이들 국가는 승전국의 식민지 였기 때문이다. 민족자결주의는 승전국 식민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덕분에 1차대전 승전국이였던 일본도 조선을 빼기지 않았다.종전 후 유럽 열강은 다시 동남아를 식민지화하려하나 모두 실패한다.카이로 회담에 이어 1943년 11월 28일 이란 테헤란에서 회담이 열린다.이 회담에는 장제스가 빠지고 스탈린.. 2024. 5. 4.
오키나와 승리와 그 후 미군이 오키나와 상륙전 일본은 이미 오키나와인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오키나와 학생들도 군으로 동원되었다.군에 동원된 학생들과 민간인들이 동굴에서 일본군과 함께 죽는다. 그 중 대표적 사건 2개가 있다.치비치리 동굴 사건이 일어난다.미군이 오키나와 상륙 후 다음날 오키나와 주민 140여명이 치비치리 동굴로 피신한다. 이 무리 중에 중국전선을 경험한 군인과 종군간호사가 있었다. 이들은 난징대학살을 경험한 자들이였다. 미군도 일본군이 중국인에게 했던 것처럼 잔인할 것이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한다. 이 들의 이야기를 들은 한 소녀가 자기 엄마에게 죽여달라고 한다. 이것이 번져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집단사가 발생한다. 89명 정도가 사망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12세 이하는 41명이나 되.. 2024. 5. 1.
적 포진지 찾기 현대에는 적 포병 사격 원점을 강한 레이다로 탐지한다. 그러다보니 매끄러운 155mm 포탄은 잘 안잡히고 날개가 넙적하게 달려있는 81mm 포탄은 잘 잡힌다.대포병레이다는 1970~80년대 실용화되었으나 그 당시에는 크기가 크고 전력 소모가 엄청났다. 열도 많이 나서 멈추는 강제로 쉬어야 했다. 그 사이 적이 포를 쏘면 무용지물이였다.예전에는 레이다가 돌아가면서 전 공간을 커버했으나 AESA 레이다는 커버면적이 넓어 고정 상태로 전파를 탐지한다. 반도체 기술 발달로 전력 소모도 적고 쉬지도 않는다.2차대전이전에는 이런 대포병레이다가 존재하지 않았다. 포격원점을 찾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시도된다.밤에 포를 발사하면 섬광이 보이게 된다. 이를 전방에 나가 있는 관측병이 방위각을 보고한다. 본부는 여러 지점에.. 2024. 5. 1.
야마토 전함도 가미카제 연합함대참모 가미 시게노리 는 자칭 해군작전의 신이라 불리는 사람이다. 그는 해상에서도 가미카제 하는 해상특공을 주장한다.일왕은 1945년 기쿠스이 작전에 대한 보고를 받고 항공부대가 이런 공격을 하는 동안 해상부대는 무엇을 하는지 해군참모에게 묻는다. 해군 관계자 입장에서는 식은 땀을 흘리지 않을 수 가 없었다. 가미 시게노리는 이 말을 해상특공을 결행하라는 의미로 받든다. 일본연합함대장 도요다 소에무 도 동의를 한다.제2함대 사령관인 이토 세이이치는 말도 안되는 해상특공을 거부하나 나중에 일왕의 깊은 뜻을 받아들여 수긍한다.작전은 야마토를 오키나와에서 자침 시켜서 고정포로 활용한다는 것이다.이런 작전은 전에도 그 예가 있었다.1차대전에 패한 독일은 함대를 연합군에게 내줄 위기에 처한다. 독일 함대 사.. 2024. 5. 1.
기쿠스이 작전 가마쿠라 막부는 최초의 막부로 1180년에서 1333년 까지 거의 200년을 이어져 온다. 고다이고 덴노(일왕)는 가마쿠라 막부를 타도하고 친정을 하기 위해 다이묘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 때 일왕을 도운 사람이 구스노키 마시시게 무장 이였다. 그는 대활약하여 가마쿠라 막부를 무너뜨리고 왕의 친정 체제인 겐무 신정을 이루어 낸다. 이 사람의 무용담은 전설로 많이 남아있다. 그러던 중 일왕에 반기를 든 막부군에게 패하고 자결한다. 메이지 유신 후 재평가 되며 다이난 공으로 칭송된다. 다이난 공은 일왕에 무한 충성하는 인물로 추앙 받는다. 그는 살아있을 때 일왕에게 국화를 하사받고 자신의 가문인 기쿠스이 문장으로 사용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국화는 일왕의 상징 문장이 된다.일본은 이 충성스런 가문의 이름을 .. 2024. 5. 1.
오키나와 지상전 2부 미군은 1945년 5월 11일 해병6사단을 투입한다. 4개 사단으로 오키나와 심장 슈리성으로 진격한다.일본은 여전히 저항했고 슈가로프 능선같은 경우는 10번이나 주인이 바뀌는 혈전이 치루어 진다. 결국 1945년 5월 22일 미군은 슈리성 인근 능선을 장악하여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다. 여기서 공세를 더 이어가면 좋으련만 하늘이 외면한다.오키나와는 이 시점에 장마가 시작된다. 차량 기동이 힘들어지고 보급에 문제가 생기자 미군은 진격을 멈춘다.태평양 해역군 사령관 니미츠는 해군이 가미카제로 피해를 보고있다며 사이먼 B 버크너를 압박해서 빠른 진격을 주문한다. 그러나 버크너는 신중하게 움직였다. 이오지마의 아픔이 있었고 병력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이번에는 미해병대 사령관 알렉산더 A 벤더그리프트가 해병.. 2024. 4. 26.
오키나와 지상전 1부 미해병 6사단은 요미탄 비행장을 점령하고 후에 이시카와 지협을 통과한 후 북으로 진격한다. 미해병 1사단은 동쪽으로 이동 오키나와 허리를 가른다.미해병 6사단은 1945년 4월 18일 오키나와 북쪽을 손쉽게 장악한다. 문제는 일본군의 병력이 오키나와 남부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이다.미육군7사단은 가데나 비행장 점령 후 동쪽으로 진격 후 남하한다. 미육군96사단은 7사단을 보호하며 남하를 시작한다.96사단은 가카즈 능선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펼친다. 4월8일~4월14일 까지 미육군 사상자가 3000여명에 이르게 된다.오키나와에는 수많은 동굴 진지가 있어서 포격에도 잘 견뎌냈다. 더군다나 일본군은 이전과는 다르게 다양한 중화기를 보유하고 있어서 저항이 세게된다.지형도 미군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오키나.. 2024.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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