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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태평양 전쟁

도쿄 대공습 1

by senamu 2024.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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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1월 태평양 전쟁 발발 전에 미군은 B-17을 이용 일본 본토 공습 계획이 처음 논의된다. 

1942년 미육군항공대 작전 분석위원회가 설립되고 1943년부터는 소이탄 사용을 권고한다.
미국은 일본 본토 폭격을 위해 일본 지형을 본 뜬 모형을 헐리우드에 만들고 폭격 시뮬레이션을 한다.
1945년 2월 4일 고베를 공습하고 2월 25일에는 도쿄를 공습한다. 

성과는 미미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고고도 공습이였다.
1945년 2월 정밀폭격이 자꾸 실패하자 헨리 아놀드는 커티스 르메이에게 소이탄 사용하여 지역 포격할 것을 권고한다. 

육군항공대 20공군 참모장인 로리스 노스태드도 소이탄 폭격을 하라고 은근히 말한다.
르메이는 결단을 내린다. 

저고도로 폭격하기로 한다. 

저고도로 비행하면 엔진이 과부하되지 않고 연료가 덜 소모된다. 

그 연료만큼 폭탄을 더 실을 수 있었다.
B-29에 탑재된 기관총도 제거한다. 

기관총이 제거되니까 사수도 필요없고 탄약도 실을 필요가 없었다.

 B-29 폭장량이 더 늘어나게 된다. 

하부에 기관총은 남겨놓는데 이는 적의 서치라이트를 부수기 위한 용도였다.
폭탄량은 늘어났으나 기관총이 제거되 적의 항공기나 대공포에 취약하게 되었다. 

조종사들이 우려하자 르메이는 일본의 대공 방어망은 그리 세지 않다고 부하들을 안심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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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3월 9일 17시 35분 괌기지에서 B-29 가 이륙을 시작한다. 

마리아나 제도인 괌,사이판,티니안에서 차례대로 B-29가 출격한다.

 총 334대가 출격한다. 

먼저 뜬 항공기는 대형을 이루기 까지 선회하면서 기다리고 대형이 갖추어지자 일본으로 향한다.
1945년 3월 10일 자정 무렵 선도기2대가 무사히 일본 도쿄로 도착한다. 

선도기가 도쿄 시내를 X자 폭격을 한다. 

이 표식을 보고 나머지 폭격기가 일제히 폭탄을 떨어뜨린다. 

폭탄도 균일하게 떨어뜨리기 위해 인터벌로미터를 사용한다.
미군의 폭격 목표는 스미다강 인근의 가난한 노동자 주택지구였다. 

도쿄중심부는 석조 건물이 많았고 스미다강 인근은 목조 건물이 많았다. 

도쿄는 1923년 관동대지진 때문에 목조가옥이 대부분 소실되었고 그 후로 중심부는 석조 건물을 많았다.
소이탄을 약 33만발 정도를 투하했고  대부분이 목조건물이라 불길은 여기저기 일어났다.
거의 10만명에 달하는 일본인이 이 날 하루동안 사망한다. 

이재민만 100만명이 발생한다. 

고토토이바시의 비극이 있는데 불이 여기저기 번지자 동쪽지역 사람들은 서쪽으로 서쪽사람들은 동쪽으로 가려다가 고토토이바시 다리에서 사람들이 서로 엉키게 된다. 

사람들은 화염에 휩싸였고 뜨거운 불길을 피해 강으로 빠진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열기에 강물도 이미 끓고 있어서 삶아 죽여 졌다.
도쿄 대공습 당시 B-29승무원은 이 때 살타는 냄새와 목조 건물 타는 냄새가 너무 강했다고 한다.

그 냄새를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한다고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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