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노는 야마토급 3번 전함으로 건조를 추진했다가 항공모함으로 개조된다.
미드웨이 해전으로 항모를 잃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모든 기술을 여기에 쏟아 붓는다.
시나노는 1944년 10월 8일 진수되고 1944년 11월 19일 취역된다.
진수란 함정이 만들어 지고 최초로 바다에 띄워진 것이다.
취역은 함정이 테스트를 마치고 정식으로 임무를 부여받아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함정이 진수에서 취역까지 작게는 1년 많게는 3년도 걸린다.
시나노는 그 기간이 너무 짧았다.
미 B-29가 도쿄만 일대를 폭격한다.
일본 해군은 위기를 느끼고 시나노를 요코스카 해군 조선소에서 구레 해군기지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구례 해군기지 기술자가 숙련도가 높다는 것도 결정하는데 이유가 되었다.
1944년 11월28일 출항하고 이 때 요코스카 주변을 정찰하던 USS 아처피시에게 발각된다.
본래 이 잠수함은 라이프 가드를 하려 했다.
B-29공습이 취소되어 주변을 배회하며 놀고 있었다.
시나노는 호위 구축함 3척을 대동했다.
미잠수함을 발견했으나 뒤에 어떤 함정들이 있을지 몰라 전속력으로 도망간다.
시나노는 지그재그로 회피 기동을 하고 아처피시는 속도가 느렸다.
아처피시는 시나노가 갈 곳을 예측하고 길을 막고 대기하기로 한다.
1944년 11월 29일 새벽 3시 17분 어뢰를 시간차 공격한다.
이 중 4발이 명중하게 된다.
이 4발이 맞은 곳은 장갑판과 벌지가 만나는 이음매였다.
리벳으로 연결된 부위였는데 이 쪽은 구조적으로 약한 곳이였다.
보일러실까지 침수되기 시작한다.
격벽이 방수가 되면 다행이였는데 부실공사다 보니 격벽이 방수가 되지 않는다.
처음에 시나노는 재속도를 유지하며 계속 이동했다.
그러나 점점 속도가 느려지더니 1944년 11월 29일 오전 10시 57분 침몰한다.
일본 군령부는 시나노를 6개월 앞당겨 완공하도록 지시한다.
이러다 보니 부실시공을 하게 된다.
함선은 침몰을 막기 위해 격벽을 설치하는데 만들고 나서 방수 테스트를 안한다.
위에서 갈궈대는데 당할 재간이 없다.
구레로 이동 당시 보일러도 12개 중 8개만 완성되어 최대 출력도 낼 수 없었다.
호위 구축함마저 레이테 해전 참전으로 피로도가 쌓인 함정들이였다.
소나마저 고장이였다.
유증기 폭발로 장갑항모 다이호를 잃은 기억때문에 있다.
이를 막고자 가솔린 탱크에 콘크리트를 치고 벌지에도 콘크리트를 친다.
배는 더 무거워 진다.
가라앉는 속도가 가속화 된다.
출항시간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
호위 전투기따라 붙을 수 있는 낮에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호위 구축함 함장들은 해안에 바싹 붙어 천천히 가자는 의견도 있었다.
시나노 함장인 아베 토시오 는 밤에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것을 결정한다.
아베 토시오는 시나노 침몰전 항모를 포기하고 전원 퇴함 명령을 내린다.
항모기술자들을 먼저 내리게 한다.
그는 항모기술자들에게 연설한다.
[일본의 기술 수준이 이 모양이다.
미국의 기술이 저렇게 앞서 있다.
먼저 살아나가서 다시는 이렇게 부실한 배를 만들지 말아라.
기술발전에 매진해 이 치욕을 갚으라]라고 말한다.
그는 시나노 항모와 운명을 같이한다.
적국이지만 감탄이 나온다.
이런 장교가 일본에 많지 않은 것은 미국으로서 다행이다.
이 말 때문일까? 후에 일본은 제조업 강국으로 거듭난다.
1944년 12월 28일 [s사건 조사위원회] 가 구성되어 시나노 격침을 조사한다.
미카와 군이치 해군 총장이 위원장으로 나서고 조사 결과 일본 수뇌부의 책임이 된다.
목아지가 짤릴 수는 없으므로 부실공사로 결론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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