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로 문제가 유엔군과 공산진영에서 타결되자 이승만은 분노한다.중립국으로 구성된 설득회를 열어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들을 한번 더 심문하겠다는 것이다.이승만은 한국 입장이 전혀 반영안된 이 합의를 파토내기로 한다.반공포로들을 조직적으로 탈출시키게 된다.유엔측은 난리가 난다.이승만은 자기가 지시한 일이라고 시인하게 된다.공산진영도 이승만이 멋대로 행동한다며 문제 삼게 된다.이승만은 한발 더나아가 한국군 독자적으로 북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게 된다.






미국은 이승만의 독자 행동에 회유아니면 정권 축출 두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게 된다.결국 회유로 돌아서게 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게 된다.이 조약으로 이승만 마음대로 한국군을 움직여 북진하는 것을 막게 된다.














중국은 휴전은 하되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기를 원했다.금성 돌출부를 제거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마오저뚱은 이승만이 반공포로를 멋대로 석방하자 지시를 내려 한국군 사단을 집중공격하라는 명을 내리게 된다.1953년 7월 정전협상 시작한 이래로 최대규모 공세를 펼치게 된다.한국군은 미리 구축해놓은 동굴 요새로 피신하게 된다.진내사격을 실시하고 반격에 들어가게 된다.중국군은 계속 공세를 하게 된다.6사단과 8사단은 선방했으나 거듭되는 피해에 철수를 하게 된다.한국군은 지연 방어를 펼치면서 전선이 무너지는 것은 막게 된다.중국군 공세가 뜸해지자 7월 16일 한국군 2군단은 반격을 펼치게 된다.하지만 유엔 사령부는 정전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며 진격을 멈추라 명령하게 된다.한국군은 15000여명 중국군은 66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이 전투를 마지막으로 군사분계선이 확정된다.












1953년 7월 27일 양측은 정전협정에 서명하게 된다. 남일과 해리스가 판문점에서 사인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양측 사령관들은 판문점에 오지 않고 각자의 사령부에서 서명하게 된다.








정전협정 당시 미국과 한국은 갈등상황이였다.한국의 대표는 휴전회담에 빠지게 된다.최덕신소장 마저 협상단에서 이탈하게 된다.한마디로 보이콧을 한 것이다.클라크 유엔 사령관은 그럼 문산 조인식이라도 와라해서 한국군 대표가 이자리에는 참석하게 된다.판문점에는 한국인 기자 6명만이 가게 된다. 그중 2명만 내부안에 들어가 정전조인식을 참관하게 된다. 미국과 유엔측 기자는 무려 100여명이나 오게 된다. 안에 들어갔던 최병우 기자는 당시의 살벌한 조인식 장면을 기사화한다.한국의 운명은 결국 남의 손에 의해 결정되게 된다.









정전회담후 한반도 평화를 위한 회의를 하기로 한다.진척이 없었다.1953년 10월 26일 데드라인 하루 전에 판문점에서 양측이 만나나 회담은 결렬된다.미정부는 제네바 회담에서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기로 한다.1954년 4월 27일 부터 6월 15일 까지 회담이 개최된다.여기서 인도차이나 관련 문제도 안건에 상정된다.하지만 여기서도 결렬되고 공던지듯 유엔총회로 넘어가게 된다.한반도 통일은 점점 멀어지게 된다.결국 한국은 한국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안보 조약을 맺으며 분단된 상황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