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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6.25 전쟁

군사 분계선

by senamu 2025.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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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0월 말 한강하구 부터 문산 그리고 연천까지 이어지는 전선에서는 고지전이 계속 벌어지게 된다.1951년 12월 28일 백학산과 대덕산 인근 두매리 전투가 벌어진다.국군 1사단은 용문산 전투에서 패한 63군의 공격을 받아치게 된다.1952년 중국군은 진지를 동굴화하면서 방어 태세를 갖추고 점점 도발을 강화하게 된다.임진강 유역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 벌어지게 된다.52년 3월 하순 중부전선을 안정시킨 한미 해병대는 임진강으로 배치된다.중국군은 이들이 점령한 고지를 빼앗기 위해 전투를 벌이나 역습을 맞고 패퇴한다.

1951년 7월 정전회담 초기 공산진영은 이 전쟁은 비겼다며 전쟁 전 상태인 38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정하자고 주장한다.유엔측은 뭔소리냐며 현재 접촉선을 경계선으로 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한국의 여론도 뭔소리냐며 반대한다.한국은 북진통일을 주장하는 여론이 형성된다.유엔군은 더 나아가 캔자스-와이오밍선을 더 올려 개성까지 먹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유엔군이 해군과 공군력의 우위가 있으므로 그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공산진영은 어차피 싸움은 지상에서 끝난다며 이를 거부하게 된다.팽팽한 기싸움 끝에 워싱턴이 물러난다.개성을 내주게 된다.하지만 전투는 계속된다.아직 협정에 한단계만 넘어섰을 뿐이였다.이 때부터 양측의 잽날리기는 정점을 찍게 된다.

서해쪽은 미군이 꽉 잡고 있었다.이미 6.25전쟁전부터 이 지역은 요새화 되고 있었다.황해도에는 반공 정신으로 무장한 피란민이 많았다.이들이 서해도서로 넘어와 유격훈련을 받게 된다.미정보기관도 이들 유격대를 직접 육성하며 측면 지원을 하게 된다.북한은 한 때 이 지역에 관심을 가졌다.하지만 영향력이 약한 곳이였다.이런 이유로 북한은 웅진반도를 넘겨 줄테니 38선 이북의 동부전선땅을 맞교환하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북한이 생각했을 때 동부전선의 요충지를 선점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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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은 1.4후퇴 후 적극적으로 황해도의 피난민을 받아들이게 된다.이 때 이들을 데려온 사람이 현시학 함장이였다.현시학은 흥남철수 당시 미10군단에게 피난민좀 데려가 달라는 청을 한 현봉학 통역사의 동생이였다.황해도 출신의 유격대는 북쪽으로 넘어가 게릴라전도 벌이게 된다.이들의 활약으로 공산진영측은 회담에 딴지를 걸기도 한다.유엔측은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저항한거라 주장하게 된다.

공산진영은 동쪽 땅을 탐내고 있었다.유엔군이 점령한 곳에 김일성의 별장이 있었다.미군은 개성을 주면 황해도 섬을 일부 주마 하며 회유한다.하지만 공산진영도 개성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절대 안내주게 된다.유엔측은 서해 5도를 절대 양보못한다며 버티게 된다.특히 백령도는 5섬중 가장 중요했다. 미군은 1951년 6월 부터 백령도를 요새화하며 땅에 말뚝을 박게 된다.공산진영은 짱구를 굴리게 된다.지금 군사력으로 서해 5도를 밀 수 있냐는 의문이 들게 된다.공산진영은 여기를 내주고 조건을 하나 단다.이들 5개 섬을 선으로 잊지 말라고 한 것이다.그냥 점이라는 것이다.하지만 이들을 잊지않으면 보급은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가 된다.결국 최종 합의 때 해상경계선은 논의에서 제외된다.유엔 사령관 클라크는 자체적으로 NLL 을 만들고 한국군과 유엔군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만들게 된다.나중에 북한은 해군력을 키워 여기를 건드릴 수 있게 된다.1973년 이 후 의도적으로 이 선을 무력화하기 위해 도발을 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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