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년 8월 중순 아직 중국은 참전하지 않고 있었다.그러던 중 북한 주재 중국 대사 무관인 차이청원이 심상치 않은 보고를 한다.미국이 적극적 반격을 준비하고 있고 상륙작전을 통해 전황을 뒤집으려 한다며 그 상륙점은 인천이라는 내용이였다.마오쩌둥은 간부들을 긴급 소집하고 대책을 논의한다.남쪽에서 대만 치려는 군을 압록강으로 이동시킨다.하지만 시기가 언제인가는 알지 못한다.6.25전쟁 발발 전 중국은 참전을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지도층간에 갑론을박이 있었다.마오저둥은 중국이 건국된지 1년 남짓 밖에 안되었고 지금 당장 미국에 맞서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중국은 저우언라이를 보내 소련의 의사를 타진해 본다.당시 중국은 공군력이 없어서 이게 절실했다.공군력 주면 파병을 고려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나 소련은 씹는다.그러다가 전황이 불리해 지니 중국은 참전을 결정하고 1950년 10월 13일 소련에게 참전의사를 표시한다.소련은 조종사들을 중국군으로 위장 시켜서 간접 참전한다.미국도 이를 알고 있으나 이걸 인정하면 3차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공식적으로 소련 참전을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미국은 본격적 상륙작전 준비에 들어간다.하지만 일본 내에 스파이들이 많아 이 정보는 그냥 공개되어 버린다.미국은 대대적 간첩 색출 작전을 벌여 이들을 잡아들인다.미국은 인천 상륙하는 것을 감출 수 없으니 그냥 오픈해 버린다.대신 시기를 속인다.10월이나 11월 쯤에 할 거라는 역정보를 흘리게 된다.트루먼이 최종 승인한게 9월8일 이니 나름 합리적이였다.하지만 맥아더는 그 이전 부터 인천 상륙을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국은 북한을 정신없게 하기 위해서 9월 5일 부터 여기저기 폭격을 가하게 된다.함포사격과 공중 폭격이 여기저기서 이루어 지다 보니 인천이 아닌 것 아니냐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차대전 시기 독일이 프랑스를 먹자 처칠은 특수부대 창설을 명하고 장기전을 준비하게 된다.이 부대가 영국 코만도였다.독일군의 해안방어 거점을 주로 타격하며 성과를 거두고 부대 규모도 성장하게 된다.미국은 그 활약에 감명 받아 자기들도 부대를 만든다.그 부대가 레인저 부대이다.영국 코만도 교관을 초빙해 훈련을 하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투입된다.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나온 부대가 레인저이기도하다.하지만 2차대전이 끝나고 레인저 부대는 대거 해체 된다.극동에 레인저 부대가 없었는데 이를 다시 만들고 그 부대가 레이더 중대이다.1950년 9월 12일 레이더 중대는 화이트 샌드 베이 프리킷함을 타고 군산에 상륙 북한군을 교란하게 된다.








군산말고 또 하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상륙작전이 있다.바로 장사 상륙 작전이다.공부해야 될 어린 학생들 800여명이 이 작전에 투입된다.출발부터 난항이였다.1950년 9월 14일 부산에서 독립유격대는 문산함을 타고 출발하고 15일 장사 앞바다 까지 오나 태풍을 만나게 된다.배가 좌초될 위기에 빠지자 일단 배에서 나와야 했다.거의 헤엄을 치다시피 상륙하게 된다.보급품 상당수도 물에 유실된다.그 상태에서 북한군과 조우하게 된다.거의 사투를 벌여 거점인 200고지를 점령하게 된다.상륙부대 상황을 알리기 위해 소형 연락선을 띄우고 거기에 부상병도 태워 보낸다.하지만 이 배는 전복되고 9명이 사망하게 된다.이들이 200고지에서 버텨준덕에 북한군 5사단의 압박이 다소 약화되게 된다.해군은 즉각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구조선을 보낸다.1950년 9월 19일 철수 작전이 시작되고 이들을 구조하러간 함이 조치원함이였다.북한은 더더욱 공세를 강화하고 여기에 미해군은 지원 사격을 해 이들을 엄호하게 된다.끝끝내 30여명은 남아서 저항하다 북한의 포로가 된다.이들은 역사속에 묻힐 뻔하다가 생존하신 분들의 증언으로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맥아더도 이들의 희생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