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는 냉전에 들어가게 된다.미국은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 확산을 경계하고 있었다.하지만 소련의 원자폭탄 실험 성공으로 미국이 가지는 핵무기 우위는 사라지고 미국은 위기를 느끼게 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은 38선 전역을 기습 남침하게 된다.미국은 2차대전 당시 SANACC 라는 것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든바가 있었다. 그후 냉전 시대 오면서 이 것보다 확대된 NSC 를 만들게 된다.북한군이 남침하자 원칙적으로 이 회의가 소집되어야 했으나 이 때는 일요일이어서 대통령을 비롯 상당수가 부재중이였다.애치슨 국무장관은 트루먼에게 이를 보고하고 에치슨은 이 문제를 UN에서 논의하기로 한다.UN은 신속히 82호 결의안을 통과시킨다.북한군이 즉각 38선 이북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한다.당시 주미 대사였던 장면도 UN 회의에 우리나라 대표로 참석한다.그 자리에서 장면은 위기에 빠진 한국을 도와달라고 주장한다.82호에는 UN 한국위원회에 북한군이 결의안을 잘 이행하는지 중립된 입장으로 관찰하라는 역할도 부여하게 된다.한국위원회는 주로 호주군이 맡았다.




1950년 6월 25~26일 상황은 급박했다. 의정부 축선이 무너지고 춘천도 위기에 빠지게 된다.포천이 무너지자 한국은 육군사관학교 생도까지 투입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한국은 후방 병력을 전방으로 배치하며 조금이라도 북한의 남하를 저지하려 든다.당시 국군은 무기가 형편없었다.전차는 없었고 무기도 일본군이 쓰다 버린 38소총이 태반이였다.여기에 북한은 전차로 밀어붙이면서 의정부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UN은 82호를 무시하고 계속 남하하는 북한군에게 경고를 보내면서 한국을 구하기 위해 UN이 한국군이 북한군을 격퇴할 수 있게 실질적 자원을 지원해주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게 된다.UN이 처음 집단 안보를 통해 지원에 나서는 첫 국가가 된다.문제는 소련이였다.상임이사국인 소련이 반대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소련은 결의안이 통과되는 동안에 불참하게 된다.소련은 복잡한 계산을 하고 있었다.당시 상임이사국은 지금의 중국이 아닌 대만이였다.소련은 중국을 상임이사국에 넣고 대만을 빼자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었다.이를 관철하기 까지 시위를 한 것이였다.이 결정을 나중에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코트발트가 문제를 삼게 된다.하지만 스탈린은 미국이 동아시아에 신경을 쓰면 유럽에서 소련이 활동하기 편해진다는 논리를 피게 된다.이것이 사실이면 소련이 미국을 고의적으로 끌어들인게 되지만 아직 여기에는 갑론을박이 있다.1950년 8월에는 소련이 UN에 복귀를 또 한다.













미국은 북한을 범법국가로 규정한다.미국민도 이를 지지하게 된다.대신 소련을 자극하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게 된다.먼저 항공지원을 결정하게 된다.미국은 6월 29일 38선을 넘어 웅진반도를 폭격하게 된다.한강철도를 파괴하여 북한군 남하를 어느정도 저지하게 된다.북한은 226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운용할 능력은 딸렸다.조종사도 전투기 수보다 적었고 그에 따르는 정비병도 부족했다.IL-10은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을 괴롭혔던 IL-2 개량형이였으나 북한군을 만나 별 활약을 하지 못하게 된다.미공군이 북한 공군을 가지고 놀다 시피하게 된다. B-26은 북한군을 내내 괴롭히게 된다.야간 폭격까지 가능해 밤낮으로 북한군을 두들기게 된다.하지만 한계가 있었다.이 공군기들이 아직은 일본에서 날아오고 있어서 작전에 제약을 받게 된다.







1950년 6월 29일 레이테섬에 상륙작전 성공시켰던 맥아더 장군이 수원 비행장에 도착한다.그는 전황을 살피게 된고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된다.다음날 맥아더의 보고가 대통령에게 들어가고 미정부는 군사개입을 결정한다.그 결정이 떨어지고 미국은 즉시 7함대를 대만해협에 급파해 중국이 딴 마음을 먹지 않게 단도리를 친다.UN은 7월7일 전쟁 수행 권한을 미국에 넘긴다.2차대전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아 모든 나라가 전쟁을 수행할 여력이 없었다.사실상 본토 공격을 받지 않은 미국만이 할 수 있었다.












맥아더는 상륙작전을 조용히 구상하고 있었다.현재의 전선을 방어하면서 미해병대를 투입해서 남하를 막고 인천으로 상륙작전을 벌여 북하군을 포위 섬멸할 계획을 세운다.블루하트 작전을 계획한 것이다.그 작전일을 7월22일 하기로 한다.하지만 낙관론이였다.초대 합참의장인 브래들리는 상륙작전은 구시대 산물이라며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미해병대도 약화되어 있었다.45만이였던 병력은 5만명으로 감축되어 있었다.유럽에 위기도 한 몫하게 된다.소련이 베를린을 봉쇄하며 서베를린도 내놓으라고 시위를 한다.미영국은 서베를린을 구하기 위해 수송작전을 펼치고 북대서양 조약 기구를 만들게 된다.강한 전력의 군대는 유럽에 집결하고 극동아시아 지역에는 전투력이 처지는 부대가 배치되게 된다.1948년 11월 도쿄 전범 재판도 종료되고 미국은 일본의 경제 부흥에 집중하게 된다.M4 전차도 일본국민 시선이 안좋다며 정비도 생략하게 된다.미 극동군은 전력이 대폭 축소되어 있었다.거의 치안만 담당하는 수준이였다.










이 상황에서 급박한 전선 상황에 스미스 특수 부대가 한국으로 투입된다.수송기 타고 기차 타고 오산에 도착하게 된다.대전차 바주카포도 가지고 있었고 북한군 전력을 얕보게 된다.하지만 보병과 전차 합동을 북한군이 잘했다.북한의 파죽지세 진격을 막을 수 없었다.6시간 동안 북한군을 묶어두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미군은 점점 병력을 한국으로 보내게 된다.평택 안성 라인을 지켜야 했다.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투입되는 미군마다 패하게 된다.결국 평택 안성 라인은 무너지게 된다.여기를 버티면서 인천으로 상륙하여 북한군을 초기에 섬멸하겠다는 블루하트 작전은 7월10일 취소된다.설상가상으로 1950년 7월 16일에는 금강방어선이 무너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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