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년 7월 7일 UN은 82,83호에 이은 84호 결의안을 통과시킨다.북한이 82,83호의 경고에도 계속 남하하자 84호를 통해 군사적 대응을 결의하게 된다.유엔군은 미국이 주도하게 되고 수뇌부를 구성하게 된다.미수뇌부 중 먼저 살펴 보아야 할 인물은 마셜이다. 마셜은 2차대전 중에 미육군 참모 총장이였다.1949년 8월 미국은 해군부와 전쟁부를 합쳐서 국방부를 만들게 된다.이 초기 세팅에 마셜이 기여하게 된다.국무장관일 때는 마셜 플랜을 세워 잿더미가 된 서유럽을 일으키려는 계획을 실행한다.1950년 9월 국방부 장관이 된다.







태평양 전쟁과 유럽 전선을 누비던 장군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기갑부대 아버지 패튼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게 된다.아이젠 아워는 육군 참모 총장에서 컬럼비아 대학 총장으로 자리를 옮긴다.1951년에는 NATO 사령관으로 복귀하게 된다.게티스버그에 농장을 구입하면서 노후도 확실히 해둔다.태평양 전쟁에서 활약한 장성들은 제대를 하게 되고 종신 원수가 된다.미 공군 설립에 기여한 아놀드 햅 장군은 지병이 악화되어 숨을 거둔다.
















UN은 UN군 사령관으로 맥아더를 지명하게 된다.한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1950년 7월14일 국군 통수권을 맥아더에게 넘기고 4일 후 맥아더는 이를 수락한다.원칙은 맥아더는 UN 의 컨트롤을 받아야 했으나 맥아더는 남의 지휘나 받는 체질이 아니였다.맥아더 위에는 오마 브래들리 합창의장이 있었다.브래들리는 2차대전 유럽전선에 미지상군 12집단군을 통솔하여 성공적으로 군을 이끌었던 사람이었다.육군 참모 총장으로는 콜린스가 있었다.콜린스는 태평양 전선과 유럽 전선 모두에서 맹활약한다.태평양 전선에는 25보병사단을 이끌며 번개 조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브래들리는 그를 유럽 전선에 불러들이게 된다.최연소 군단장이 되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에 일조를 하게 된다.명목상 브래들리와 콜린스가 계통으로 따지면 맥아더 보다 위였으나 짠밥으로 따지면 햇병아리였다.맥아더는 이미 1930년~35년 까지 13대 미육군 참모총장을 역임한 대선배였다.해군은 대수술을 당하게 된다.핵무기가 만들어지자 돈 많이 드는 해군을 유지해야 하나 회의적인 시각이 들게 된다.노획한 배를 놓고 핵폭탄 해체 쇼를 벌이게 된다.게다가 공군이 독립하면서 해군 입지는 더 줄어들게 된다.해군 장성들은 이럴 수는 없다며 목소리를 내게 된다.결국 해군은 대대적인 인사조치가 벌어지게 된다.니미츠의 태평양 함대에서 참모로 활약했던 포레스트 셔면이 해군 참모총장이 된다.셔먼 역시 맥아더에게는 애송이였다.






일본에 주둔해 있던 미 8군이 대구로 오게 된다.8군 사령관이 워커였다. 워커는 1948년 9월 8군 사령관으로 부임하게 된다.2차대전 때는 패튼 밑에서 20군단장으로 활약했다.평가는 불독처럼 용맹하며 공세적이고 상관의 말을 묵묵히 수행하는 군인이였다.워커는 8군 사령관으로 있으면서 나사 빠진 8군을 그나마 군 구실을 할 수 있게끔 빌드업을 하게 된다.맥아더는 워커와는 사이가 껄끄러웠다.맥아더가 유럽 전선 장군을 선호하지 않았고 워커를 고집 불통이라며 깍아내리고 있었다.워커는 서둘러 8군 사령부를 대구로 옮기고 북한군 남하를 저지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역전다방 > 6.25 전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제 7 합동 기동 부대 (0) | 2025.11.05 |
|---|---|
| 10군단 탄생 (1) | 2025.11.04 |
| 군산,장사 상륙 작전 (0) | 2025.10.29 |
| 크로마이트 계획 (0) | 2025.10.27 |
| 블루하트 작전 (0) | 2025.10.26 |